코이노니아 시리즈 (6) - 가정을 세우는 코이노니아 (골 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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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24회 작성일 26-02-14 21:26본문
코이노니아 시리즈 (6) - 가정을 세우는 코이노니아 (골 3:12-17)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 3:12).
우리는 교회를 함께 세우는 코이노니아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설 명절이 있기에 가족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갖습니다. 이러한 때에 맞추어 가정을 세우는 코이노니아에 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가족이라는 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혈연이라는 피를 통하여 끈끈한 정을 세워지는 곳이 가정입니다. 이러한 소중한 가정을 잘 지키고 세워가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책임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코이노니아는 단지 친목이 아니라 생명과 믿음, 그리고 삶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연합입니다. 즉 참된 연합으로 세워지는 가족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의 가족은 어떤지를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집에 살아가지만 마음이 서로 멀어지고 있는지, 대화가 잘 되고 있는지 아니면 대화가 단절되어 마음의 벽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진정으로 회복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코이노니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코이노니아는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하듯이, 가족이 모두가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정에서 기도와 말씀, 그리고 사랑이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식탁의 코이노니아로 마음을 열고 대화로 하나가 되었듯이, 가정의 코이노니아도 함께 식사하며 대화하는 시간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코이노니아의 본질인 사랑의 교제입니다.
그리고 가족이 서로 나누는 것은 코이노니아를 세웁니다. 설 명절에 자녀들은 부모님께 존경을 드리면, 부모님은 세뱃돈을 주면서 나눔의 시간을 갖습니다. 때로는 가족까지 선물을 미리 구입하여 마음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세우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동역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참여하기에,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말씀과 기도로 예배의 시간을 갖는 것도 코이노니아를 세우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러한 가족의 코이노니아를 세우기 위한 성경의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 3:12)
우리가 세워가야 하는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세우시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시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라고 했습니다. 택하신 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별하셔서 선택하신 자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자는 하나님께 구별된 자이며, 사랑하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받아들였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육신의 소욕과 자아가 자리잡고 있어서 날마다 영적인 싸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거룩한 자녀임을 날마다 확신해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생명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성품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 3:12)라고 했습니다. 이제 정체성에서 성품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입어야 할 옷은 바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옛 행위를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골 3:9-10).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옛 사람의 말이나 욕심을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성품인 것입니다.
우리가 옷입는 것은 명령으로 결단을 요구합니다. 갈등이 일어나 나쁜 말이 나오려는 순간에, 우리는 이미 새 옷을 입기로 결단한 자이기에 자신의 나쁜 감정이나 감정이 섞인 말들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가족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즉 온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설 명절만 되면 다들 옷부터 챙깁니다. “부모님 뵈러 가는데 단정하게 입어야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옷은 새로 입고 가는데 마음은 새로 안 입고 갑니다. 겉으로는 단정한데, 속은 피곤하고 예민하고, 자존심을 드러내고, 말은 거칠어 집니다. 그래서 명절 갈등은 종종 “큰 문제”가 아니라 준비 안 된 마음의 옷에서 시작됩니다.
옷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외모이듯이, 우리의 성품도 말투나 표정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가족들과 대화하며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긍휼과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 우리가 입어야 할 새 옷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는 긍휼입니다. 긍휼의 의미는 ‘내장이 움직일 정도의 연민’입니다. 이는 원래 내장이나 창자와 같이 깊은 감정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긍휼의 마음은 상대의 아픔을 내 안으로 들여와 반응하는 것입니다.
가족의 갈등은 종종 이해의 부족에서 시작하곤 합니다. 아이가 힘들어 하면 무엇이 이 아이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지 이해를 하며 도움을 주려는 것이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무뚝뚝하게 반응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기부이 상할 것이 아니라, 오늘 무엇이 배우자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히려 가정이 긍휼의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친절입니다. 친절은 사람을 살리는 선함과 상냥함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향하여 호의적인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절은 힘들어 하는 가족을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한 마다 한 마디가 가족의 어깨를 세워주는 것입니다.
가족안에서 서로가 서로 친절하게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쉼의 공간을 만들어 주게 됩니다. 이러한 공간은 서로를 향하여 여유를 가지고 대하게 함으로 행복한 코이노니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기중심을 내려놓는 낮은 마음입니다. 즉, 자신이 중심이 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겸손이 없으면 항상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옳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틀리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결국 감정이 쌍하여 다툼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의견이 차이가 나서 대립이 일어난다면 자신의 생각을 먼저 내려놓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네 번째는 온유입니다. 온유는 힘을 절제하는 능력입니다. 즉 힘이 있는데도 가족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은 권력이 존재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있고, 부모님과 결혼한 자녀들, 그리고 가족간의 경제력의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때로는 갈등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때 온유가 없다면 힘이 센 자가 약한 자를 누르거나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말이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유는 가족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합니다.
다섯 번째는 오래 참음입니다. 오래 참음은 화를 내기까지 시간이 긴 마음입니다. 오래 참는 것은 참고만 살아라가 아닙니다. 오래 참음은 사람의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랑입니다.
자녀가 성장하는 데는 한 두 번의 훈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부모와 자녀의 세대 차이도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큰 다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서로 인내하며 화를 늦추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가정은 이 땅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스러운 곳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족의 울타리에서 서로를 지키고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족은 서로 친밀함으로 살아가지만, 때로는 가장 거친 말들이 오고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로 살아가지만 가장 무례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곤 합니다.
밖에서는 감정이 상해도 말을 아끼지만, 집에서는 사회적 필터를 끄고 말하면서 쉽게 감정적인 말을 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서 더욱 의도적으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가족에게는 기대가 크기 때문에 때로는 상처가 더 크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서로를 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 가정의 갈등은 사랑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3-14).
가정에서 갈등이 생기면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족 간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골로새서는 관계가 어려움이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용납과 용서입니다.
먼저는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용납이란 의미는 상대가 미성숙함을 보여도 견디며 함께 가는 것입니다. 즉 가족 중에 누군가가 부족함을 보여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가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가족이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에 있는 공동체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직 인격이 완성이 아니라 성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약점을 용납하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피차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관계를 회복하는 은혜입니다. 용서는 자신에게 혐의가 있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동입니다. 용서의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한 사람에게 복수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은혜를 베풀어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용서는 주께서 우리를 용서했듯이 상대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은 대가를 지불하신 선택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 분의 고귀한 희생으로 우리를 용납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용서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상한 마음을 스스로 짊어지고 다른 사람을 마음에서 용납하는 것이 용서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긴 시간을 고난 속에서 보냅니다. 그런데 마침내 형제들을 다시 만났을 때 요셉은 복수할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울면서 형제들을 품고,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고백으로 가족을 회복합니다. 이게 가정 코이노니아의 핵심입니다. 가정은 종종 “누가 옳았는가”의 전쟁터가 되기 쉽지만, 사랑은 “관계를 살리는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용서는 약함이 아닙니다. 용서는 내가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가능한 강함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입니다. 옷을 많이 입어도 띠가 없으면 흐트러집니다. 긍휼과 겸손, 온유와 오래 참음과 같은 모든 성품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 가족의 코이노니아를 이루게 하는 힘이 됩니다.
3.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우리의 가정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해야 합니다. 주장한다는 것은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즉 가정을 다스리는 기준이 평강이어야 합니다. 이는 다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이룰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코이노니아를 이루면 마음의 평강이 찾아오고, 그 평강이 온 가정에 흐르게 됩니다. 우리의 가족은 주 안에서 한 몸으로서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것처럼, 가정에서도 가족이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명절에 가족이 모였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평강을 이룰 수 있는 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안으로 서로에게 복이 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면 가족의 분위기가 행복해 질 것입니다. 명절에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감사 보다는 원망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망이 많아지면 다툼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면 가정은 답답한 공간이 됩니다.
비록 가족안에 연약함이 있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은 가족의 존재에 의미를 더해주는 것입니다.
한 가정이 설마다 싸움이 잦았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결단을 했습니다. “떡국 먹기 전에, 가족이 돌아가며 감사 한 문장씩만 말하자.” 첫 해엔 어색했고, 둘째 해엔 조금 풀렸고, 셋째 해엔 놀랍게도 집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감사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은혜를 발견하게 하고, 가정의 공기를 바꾸는 영적 습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가정에는 말씀이 풍성하게 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우리의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며 교제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말씀을 통하여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고 권명하여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찬양의 은혜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코이노니아의 은혜를 나누는 비결은 우리의 가정이 말씀이 풍성하게 거함으로 온 가족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이번 설 명절에 한 사람만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도 그 가정의 분위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가정의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고, 갈등을 사랑으로 회복하며, 평강과 말씀과 감사로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코이노니아를 위하여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명절을 통하여 더욱 하나되어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 3:12).
우리는 교회를 함께 세우는 코이노니아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설 명절이 있기에 가족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갖습니다. 이러한 때에 맞추어 가정을 세우는 코이노니아에 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가족이라는 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집니다. 혈연이라는 피를 통하여 끈끈한 정을 세워지는 곳이 가정입니다. 이러한 소중한 가정을 잘 지키고 세워가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책임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코이노니아는 단지 친목이 아니라 생명과 믿음, 그리고 삶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연합입니다. 즉 참된 연합으로 세워지는 가족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의 가족은 어떤지를 먼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 집에 살아가지만 마음이 서로 멀어지고 있는지, 대화가 잘 되고 있는지 아니면 대화가 단절되어 마음의 벽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진정으로 회복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코이노니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코이노니아는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하듯이, 가족이 모두가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정에서 기도와 말씀, 그리고 사랑이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식탁의 코이노니아로 마음을 열고 대화로 하나가 되었듯이, 가정의 코이노니아도 함께 식사하며 대화하는 시간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코이노니아의 본질인 사랑의 교제입니다.
그리고 가족이 서로 나누는 것은 코이노니아를 세웁니다. 설 명절에 자녀들은 부모님께 존경을 드리면, 부모님은 세뱃돈을 주면서 나눔의 시간을 갖습니다. 때로는 가족까지 선물을 미리 구입하여 마음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세우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동역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참여하기에,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말씀과 기도로 예배의 시간을 갖는 것도 코이노니아를 세우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러한 가족의 코이노니아를 세우기 위한 성경의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 3:12)
우리가 세워가야 하는 코이노니아는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세우시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시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라고 했습니다. 택하신 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별하셔서 선택하신 자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자는 하나님께 구별된 자이며, 사랑하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받아들였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육신의 소욕과 자아가 자리잡고 있어서 날마다 영적인 싸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거룩한 자녀임을 날마다 확신해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열매가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생명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성품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골 3:12)라고 했습니다. 이제 정체성에서 성품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입어야 할 옷은 바로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옛 행위를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골 3:9-10).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옛 사람의 말이나 욕심을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성품인 것입니다.
우리가 옷입는 것은 명령으로 결단을 요구합니다. 갈등이 일어나 나쁜 말이 나오려는 순간에, 우리는 이미 새 옷을 입기로 결단한 자이기에 자신의 나쁜 감정이나 감정이 섞인 말들을 절제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가족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즉 온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설 명절만 되면 다들 옷부터 챙깁니다. “부모님 뵈러 가는데 단정하게 입어야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옷은 새로 입고 가는데 마음은 새로 안 입고 갑니다. 겉으로는 단정한데, 속은 피곤하고 예민하고, 자존심을 드러내고, 말은 거칠어 집니다. 그래서 명절 갈등은 종종 “큰 문제”가 아니라 준비 안 된 마음의 옷에서 시작됩니다.
옷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외모이듯이, 우리의 성품도 말투나 표정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가족들과 대화하며 공동체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긍휼과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 우리가 입어야 할 새 옷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는 긍휼입니다. 긍휼의 의미는 ‘내장이 움직일 정도의 연민’입니다. 이는 원래 내장이나 창자와 같이 깊은 감정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긍휼의 마음은 상대의 아픔을 내 안으로 들여와 반응하는 것입니다.
가족의 갈등은 종종 이해의 부족에서 시작하곤 합니다. 아이가 힘들어 하면 무엇이 이 아이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지 이해를 하며 도움을 주려는 것이 긍휼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무뚝뚝하게 반응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기부이 상할 것이 아니라, 오늘 무엇이 배우자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히려 가정이 긍휼의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회복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친절입니다. 친절은 사람을 살리는 선함과 상냥함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향하여 호의적인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절은 힘들어 하는 가족을 회복시키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한 마다 한 마디가 가족의 어깨를 세워주는 것입니다.
가족안에서 서로가 서로 친절하게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쉼의 공간을 만들어 주게 됩니다. 이러한 공간은 서로를 향하여 여유를 가지고 대하게 함으로 행복한 코이노니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겸손입니다. 겸손은 자기중심을 내려놓는 낮은 마음입니다. 즉, 자신이 중심이 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겸손이 없으면 항상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이 옳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틀리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것이 결국 감정이 쌍하여 다툼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의견이 차이가 나서 대립이 일어난다면 자신의 생각을 먼저 내려놓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네 번째는 온유입니다. 온유는 힘을 절제하는 능력입니다. 즉 힘이 있는데도 가족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은 권력이 존재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있고, 부모님과 결혼한 자녀들, 그리고 가족간의 경제력의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때로는 갈등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때 온유가 없다면 힘이 센 자가 약한 자를 누르거나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말이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유는 가족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합니다.
다섯 번째는 오래 참음입니다. 오래 참음은 화를 내기까지 시간이 긴 마음입니다. 오래 참는 것은 참고만 살아라가 아닙니다. 오래 참음은 사람의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랑입니다.
자녀가 성장하는 데는 한 두 번의 훈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부모와 자녀의 세대 차이도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큰 다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서로 인내하며 화를 늦추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가정은 이 땅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화스러운 곳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족의 울타리에서 서로를 지키고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족은 서로 친밀함으로 살아가지만, 때로는 가장 거친 말들이 오고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가장 친밀한 관계로 살아가지만 가장 무례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곤 합니다.
밖에서는 감정이 상해도 말을 아끼지만, 집에서는 사회적 필터를 끄고 말하면서 쉽게 감정적인 말을 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서 더욱 의도적으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가족에게는 기대가 크기 때문에 때로는 상처가 더 크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서로를 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 가정의 갈등은 사랑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3-14).
가정에서 갈등이 생기면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족 간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골로새서는 관계가 어려움이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용납과 용서입니다.
먼저는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용납이란 의미는 상대가 미성숙함을 보여도 견디며 함께 가는 것입니다. 즉 가족 중에 누군가가 부족함을 보여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가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가족이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에 있는 공동체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직 인격이 완성이 아니라 성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약점을 용납하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피차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관계를 회복하는 은혜입니다. 용서는 자신에게 혐의가 있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동입니다. 용서의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잘못한 사람에게 복수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은혜를 베풀어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용서는 주께서 우리를 용서했듯이 상대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은 대가를 지불하신 선택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 분의 고귀한 희생으로 우리를 용납하셨습니다. 즉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용서였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상한 마음을 스스로 짊어지고 다른 사람을 마음에서 용납하는 것이 용서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긴 시간을 고난 속에서 보냅니다. 그런데 마침내 형제들을 다시 만났을 때 요셉은 복수할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울면서 형제들을 품고,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고백으로 가족을 회복합니다. 이게 가정 코이노니아의 핵심입니다. 가정은 종종 “누가 옳았는가”의 전쟁터가 되기 쉽지만, 사랑은 “관계를 살리는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용서는 약함이 아닙니다. 용서는 내가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가능한 강함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입니다. 옷을 많이 입어도 띠가 없으면 흐트러집니다. 긍휼과 겸손, 온유와 오래 참음과 같은 모든 성품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 가족의 코이노니아를 이루게 하는 힘이 됩니다.
3.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우리의 가정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해야 합니다. 주장한다는 것은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즉 가정을 다스리는 기준이 평강이어야 합니다. 이는 다툼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이룰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코이노니아를 이루면 마음의 평강이 찾아오고, 그 평강이 온 가정에 흐르게 됩니다. 우리의 가족은 주 안에서 한 몸으로서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것처럼, 가정에서도 가족이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인정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명절에 가족이 모였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평강을 이룰 수 있는 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안으로 서로에게 복이 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면 가족의 분위기가 행복해 질 것입니다. 명절에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감사 보다는 원망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망이 많아지면 다툼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면 가정은 답답한 공간이 됩니다.
비록 가족안에 연약함이 있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은 가족의 존재에 의미를 더해주는 것입니다.
한 가정이 설마다 싸움이 잦았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결단을 했습니다. “떡국 먹기 전에, 가족이 돌아가며 감사 한 문장씩만 말하자.” 첫 해엔 어색했고, 둘째 해엔 조금 풀렸고, 셋째 해엔 놀랍게도 집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감사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은혜를 발견하게 하고, 가정의 공기를 바꾸는 영적 습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가정에는 말씀이 풍성하게 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우리의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성경을 읽으며 교제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말씀을 통하여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고 권명하여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찬양의 은혜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코이노니아의 은혜를 나누는 비결은 우리의 가정이 말씀이 풍성하게 거함으로 온 가족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이번 설 명절에 한 사람만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도 그 가정의 분위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가정의 코이노니아는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고, 갈등을 사랑으로 회복하며, 평강과 말씀과 감사로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코이노니아를 위하여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명절을 통하여 더욱 하나되어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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