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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6) - 코이노니아를 이루어가는 주님의 몸(고전 11: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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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15회 작성일 25-12-2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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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6) - 코이노니아를 이루어가는 주님의 몸(고전 11:17-3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4-25).

우리는 고린도전서를 배우면서 성숙한 교회의 원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성숙함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어가는 코이노니아에 있다고 했습니다.

코이노니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가게 하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분의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 분의 몸은 몸은 하나지만 지체는 여럿으로 이루어진 교회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 존재는 몸과 혼, 영이라는 세 가지의 영역이 있습니다. 영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혼은 생각과 감정의 부분으로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몸은 육체로서 우리가 관리하지 않으면 망가지게 됩니다.

몸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뼈와 인대가 연결되어 있고, 각 몸의 기관들이 서로 연결되어 몸이 활동하게 합니다. 몸은 서로 조화를 이룰 때에 건강하고 활기차게 움직입니다. 그런데 몸이 서로 돕지를 않고 서로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무시하거나, 심지어 공격하게 되면 몸의 건강이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질서는 코이노니아라는 조화와 연합의 틀 안에서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딸이 생명 공학을 공부하는 책을 보았습니다. 책 제목이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 이었습니다. 생명은 unity 라는 통일성과 diversity 라는 다양성 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은 살아있는 영적인 생명 조직입니다. 이 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통일서, 즉 unity 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각 지체들이 주님이 주신 은사와 열정으로 섬기는 diversity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함축하는 단어가 바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코이노니아라 함은 공통의 것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더 정확한 의미는 연합하고 참여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이러한 코이노니아를 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주의 만찬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절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6-17).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즉 코이노니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연합을 만들어 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 죄 사함받은 성도들이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의 코이노니아에 참여하는 강력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연말에 직장이나 교회에서 부서별 또는 세대별로 식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함께 모여서 식사하는 의미는 마음을 공유함으로 정체성을 표현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특히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시간은 부모님 아래서 한 가족이 마음과 삶을 공유하며 코이노니아를 이루어가는 아름다운 시간들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주의 만찬을 통하여 코이노니아를 이루어가는 원리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 안에서의 코이노니아는 모임이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17-22)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고전 1:17).

코이노니아의 모임은 모일수록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롬 14:17-19)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하며 서로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임의 특징은 의와 평화, 그리고 기쁨이 가득한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성탄 전야제를 하면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각 세대가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축복했습니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고 서로를 격려함으로 세움을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유익이 되는 코이노니아입니다. 주부들은 일년에 몇 차례식 다모아 모임으로 친교하며 교제를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러한 모임에서 중요한 것은 평안과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임은 서로를 유익하게 하고 세우는 기능을 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행하는 주의 만찬을 바라보면서 근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칭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롭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전 11:18-19).

고린도 교회는 분쟁으로 인하여 편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분쟁의 의미는 찢어지고 갈라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일수록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상하게 하는 해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코이노니아를 이루어 한 몸 됨을 이루어가야 했지만, 도리어 분쟁하고 파당을 만들어 나눔으로 몸을 찢어지게 하는 해를 가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소식을 듣고 그들이 모일 때에 편을 가르는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편을 가르는 속에서도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분쟁하고 당을 만들고 있다 할지라도, 그 중에서 약한 자를 감싸며 사랑으로 공동체르 세워가는 사람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몸인 교회에서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의 코이노니아를 지켜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별이었습니다. 주의 만찬을 할 때에 떡과 포도주를 가져다 교회에서 먹는 시간에 문제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이는 시장하고 어떤이는 취함이라.”(고전 11:20-21).

초대 교회의 주의 만찬은 보통 애찬인 공동으로 하는 식사와 함께 이루어 졌습니다. 이때 부요한 성도는 일찍 도착해서 풍성하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노예나 일군인 가난한 성도들은 일을 마치고 늦게 도착하니 먹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이는 시장하고 어떤이는 취하는 일이 일어난 것을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만찬이 아니라 자신의 만찬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로 분쟁이 일어나고 주님의 몸이 찢어지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언급합니다.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고전 11:22). 다른 사람이 오기 전에 미리 음식을 먹는 교만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교회를 업신 여기는 죄라고 규정했습니다. 사회에서의 사회적인 지위권으로 교회에서도 행사하려고 하는 모습에 대하여 교회를 업신여긴다고 했습니다.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은 주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분의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은 교회의 질서를 부정하고, 교회의 연약한 자를 무시하는 태도로 나타났습니다. 교회의 지체들을 향한 교만하고 무시하는 태도가 교회를 업신여기는 것이며, 더 나아가 주님을 업신 여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피와 몸으로 새롭게 창조하신 주님의 몸입니다. 코이노니아로 모두가 참여하고 연합하며 나누는 곳이 되어야 했지만, 그들은 파당을 만들어 부자 성도들이 만찬을 미리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취하기까지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배가 고프면 집에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식탁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에 참여하고 세우는 코이노니아를 이루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는 부지중에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만찬으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서 행하는 나의 태도, 예배를 드리는 태도, 다른 지체나 영적인 리더를 대하는 태도에서 업신여기는 작은 생각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회개하고 겸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이 코이노니아는 모일수록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2. 코이노니아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입니다. (23-26).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4-25).

사도 바울은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기 위하여 주의 만찬의 시작을 바라보게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고전 11:23). 주의 만찬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정하신 교회의 의식입니다.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셨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25)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실 때마다 주님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희생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새로운 몸을 세우신 교회의 공동체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세워갈 몸인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몸된 지체들과의 화목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주의 만찬의 의미는 교회가 주님 안에서 한 몸임을 고백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주님의 찟기신 몸이 나를 구원하셨기에, 나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함부로 업신여기지 않겠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기억할 뿐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향한 소망을 갖게 하는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가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7).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과거에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의 희생을 전하는 것일 뿐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을 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 안에서 코이노니아를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 위하여 주님의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흘리신 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주님의 몸인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주님의 피값으로 세워진 교회이기에 우리는 지체들을 사랑하고 돌아보며 연합하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코이노니아의 시작은 우리가 함께 참여하는 주의 만찬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몸임을 기억하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 돌 수 있는 이유는 십자가 때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코이노니아를 세우기 위하여 주의 몸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27-34).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8-29).

코이노니아를 세우는 기초는 주의 만찬을 합당하게 먹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 11:27)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합당하지 않게 먹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들은 주의 만찬을 주님이 중심이 되지 않고 ‘자기의 만찬’으로 만든 것입니다. 교회의 공적인 의식을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에 사용한 것에 대하여 책망한 것입니다. 그들은 한 몸의 지체를 무시하였고, 가난한 자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분열시킴으로 주님의 몸이 찢겨지는 아픔을 겪게 한 것입니다. 이는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그들이 다른 지체들을 무시하고 상처를 준 것은 주님께 죄를 범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1:28-29)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라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을 시험하고 검증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주의 몸에 합당하게 참여하고 있는가? 나는 주님의 몸된 지체들을 소중하게 여기는가? 나의 말과 행동이 교회에 덕을 세우고 있는가? 나는 주님의 몸을 업신여기는 것이 없는가? 나는 나의 강한 주장으로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모습이 있는가를 진지하게 살펴 본 후에 주의 만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라고 했습니다.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 12:29). 주의 몸을 분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주의 몸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에서 찢기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다른 주의 몸은 주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을 분별하는 것은 주님의 몸이 교회라는 사실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바른 자세는 그리스도의 몸이 바로 교회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교회의 공동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코이노니아는 반드시 교회의 몸을 세우는 코이노니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여하면서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미워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은 공동체를 외면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찢기신 몸으로 세우신 교회를 하나되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의 찢기신 몸으로 세우신 교회를 우리가 다시 찢는 것은 다시 주님을 십자가에서 못을 박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주의 만찬을 통하여 교회를 업신여기는 행동을 하는 결과로 주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 11:30)라고 했습니다. 약한 자는 육체적으로 쇠약해지고, 병든 자는 질병에 걸린리거나, 잠자는 자는 죽음을 맞이한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주의 만찬에서 취하고 함부로 한 자들의 결과로 주님의 징계가 있었음을 언급했습니다.

만일 그들은 자신들을 살피고 주의했다면 이러한 판단을 받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1-32). 우리가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 징계를 받음으로 회개의 길로 걸어갔음을 말합니다.

그 결과로 세상이 죄 정함을 받을 때에 함께 멸망당하지 않으려고 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셨기에 징계를 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아옴으로 인하여 더 큰 멸망의 길에서 벗어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세상의 악에서 보호하시고 회복시키는 사랑의 회초리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제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거룩한 주님의 몸으로 바라보십니다. 주님은 그 분의 몸이 상처나고 찢어지고 병들어 가는 것을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그 분의 몸이 지쳐가든 새 힘을 주시고, 병들어 가면 수술을 해서라도 치유하시고 회복하십니다. 그리하여 그 분의 몸이 하나가 되어 코이노니아를 이루어 가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코이노니아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전 11:33). 사도 바울은 ‘서로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코이노니아의 본질은 기다림이라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기다림은 ‘네가 나에게 중요하다’는 표현입니다. 기다림은 ‘형제 없이는 시작하지 않겟다’는 선언입니다. 기다림은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는 고백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무엇이낙요? 그들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와서 기다리지 않고 먹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은 사회와 같이 교회에서도 가난하거나 종으로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먼저 먹고 다 먹었습니다. 그들은 한 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더 중요하다라는 인식으로 특권 의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는 코이노니아를 위해서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간 자는 뒤에 따라 오는 자를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하는 자는 못하는 자를 배려해서 함께 손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자신의 몸을 세우기 위해, 우리에게 ‘서로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욕구를 교회에서 채우려고 하는 것은 몸을 찢는 것과 같습니다. 배고픈 자는 집에서 음식을 먹고 와야 했습니다. 교회의 식탁은 나의 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의 몸을 세우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세상에서 채우지 못한 욕구를 교회에서 채우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인정이나 명예에 대한 욕구를 교회에서 채우려고 하면 주님의 몸을 찢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코이노니아를 세우기 위하여 주님의 몸인 교회를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입니다. 주의 몸을 분별하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히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살전 5:12-14).

이와 같이 교회의 본질인 코이노니아는 한 몸임을 인식하고 연합과 나눔, 참여와 교제로 아름다운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