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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11) - 지식이 아닌 사랑으로 세우는 교회(고전 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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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83회 작성일 25-1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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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11) - 지식이 아닌 사랑으로 세우는 교회(고전 8장)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고린도전서 8장은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에 대한 이슈로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와 그 자유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중의 하나는 자유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에서는 누군가의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 도시는 신전 중심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고린도는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전이 모여 있던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그 신전들은 여신인 아프로디테 신전,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 신전, 아폴로 신전, 그리고 로마 황제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지역의 신전들이 소규모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이곳 신전에서 제사를 드렸고 성전 매춘등이 사회적인 문화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는 종교는 문화였으며, 그리고 삶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과거 신라 시대는 호국 불교를 강조했기에 나라 전체가 불교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안에서 우상 숭배와 예술적인 활동들이 이루어 졌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먹는 고기는 대부분이 ‘우상의 제물’이었습니다. 고린도 시장에 유통되는 고기는 신전 제사 후에 남은 제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전은 제사 후 남은 고기를 판매하거나 연회를 열었습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좋은 고기는 신전 제사 후 나온 고기다 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전의 연회장에서 고기를 먹으며 사회적인 교류를 했고, 사업이나 정치적인 연회로 친목을 도모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전의 우상 제물은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인 것을 포함하는 고린도 사람들의 핵심 문화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전의 제물을 먹는 연회는 사회적인 명예와 사업적인 이익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린도 교회에는 두 그룹이 서로 갈등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지식있는 사람은 믿음이 강한 성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우사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줄 아노라.”(고전 8:4). 성경의 지식이 있는 자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기에, 신전 고기는 본질적으로는 아무 것도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신전 식사에 참여해도 죄책감이 없는 그룹이었습니다. 그들은 교리적으로는 맞지만 태도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다른 그룹은 양심이 약한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우상 숭배에 깊이 빠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전에서 먹는 고기를 보면 과거 삶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다시 우상으로 돌아가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이 약했기에, 약한 지식으로 양심이 약해져 믿음이 무너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우상의 제물인 고기를 이슈로 서로 갈등하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자유와 절제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더 나아가 지식이 있는 자가 사랑으로 덕을 세우지 않으면 형제의 믿음을 무너트릴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니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전 8:11)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연약한 형제의 믿음을 배려하지 않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강하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네 지식으로 약한 자가 멸망한다.’ 그 약한 자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소중한 한 영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형제를 위하여 스스로 절제하는 성숙함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식보다는 사랑으로 교회의 덕을 세우는 성숙한 믿음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를 세우기 위하여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고, 그러므로 우상의 고기를 먹는 것 아무 문제가 없다’라는 신학적인 지식을 가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지식을 가지고 교만했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남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교만하게 한다는 것은 ‘부풀리다, 바람이 들어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지식을 자랑함으로 자기의 머리에 바람을 넣어 자기 자신을 부풀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자가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남보다 더 나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높이려는 의도를 갖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인 것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인 것입니다.

덕을 세운다의 의미는 ‘오이코도메오’로서 건물을 세우다 라는 뜻입니다. 이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교회의 지체인 사람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식은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만, 사랑은 다른 사람을 세우며 공동체를 세우는 마음입니다.

지식에 대하여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 8:2)라고 했습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확신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지식에 대하여 너무나 강한 확신을 갖기에 다른 성도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성도들에 대하여 업신 여기는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음식을 가지고 형제를 업신여기거나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책망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롬 14:1-3).

로마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간에 음식으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지식이 있는 자는 믿음이 연약하여 음식을 먹지 않는 자를 업신 여기곤 했던 것입니다. 이는 이방인 성도가 유대인 성도를 업신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의하여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받은 후에도 아직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음식을 먹는 이방인 성도들을 비난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강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최고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그 분의 몸인 교회 안에서 덕을 세우는 것을 소중하게 가르침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 8:2)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지식을 사랑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지체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가 다른 지체에게 상처나 시험을 가져다 준다면, 우리는 그 자유를 절제하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참된 성숙은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을 어떻게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가에 달려있습니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고전 9: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를 사랑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교회를 사랑하고 지체를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서 표현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의 유익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주목하며 바라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바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의 모습을 인정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우상 제물의 논쟁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옳으냐 틀리냐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도리어 지식이 있는 자가 얼마나 공동체에서의 연약한 자를 사랑으로 세우느냐로 연결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지식이 많을수록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주장하기 보다는, 연약한 형제를 세우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그 분의 자녀인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신의 지식과 행동으로 형제를 세우고 있는가? 무너뜨리는 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식과 행동이 교회를 세우는가? 아니면 교회를 무너뜨리는가를 먼저 생각해아 합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를 세우기 위하여 자유를 절제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9).

사도 바울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이슈로 하면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입니다. 신학적인 지식과 사람을 세우는 사랑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상과 음식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줄 아노라.”(고전 8:4). 우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유일한 하나님은 한 분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버지가 한 분이시듯,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도 한 분이ᅟᅵᆸ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6).

이 세상에는 스스로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고 사람들이 만들어 논 신들이 있으나, 그들은 신이 아닙니다. 그냥 사람들이 돌이나 금으로 만든 형상일 뿐이고, 사람들이 섬기는 태양이나 달, 높은 산이나 나무 들은 그냥 피조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직 우리에게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리도 그 분으로 인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은 그냥 사람이 먹는 음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약한 자는 과거의 우상 숭배 경험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고전 8:7). 믿음이 강한 자는 “우상은 가짜이기에 아무런 힘이 없다”는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우상의 음식에 대하여도 자유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한 자들은 과거에 우상 숭배를 하면서 신전에 제물을 바친 후에 먹었던 고기에 대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보면서 그 고기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마치 우상 숭배에 참여한 것 같고, 다시 옛날의 우상 숭배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고전 8:9)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강한 자는 약한 자의 마음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느니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8-9). 사도 바울은 고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고기를 먹는다고 믿음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안 먹는다고 믿음이 나빠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상의 제물은 그냥 고기일 뿐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고기를 먹는 행동이 다른 성도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9)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함이 다른 약한 자들의 믿음을 약하게 하거나 흔들리게 한다면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자유는 자신이 아닌, 주님을 섬기고 성도들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기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누군가가 그 고기를 먹는 행동을 보면 믿음이 흔들릴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고전 8:10-11). 지식이 있는 자가 연약한 자를 배려하지 않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면, 약한 자도 마음이 불편하고 죄책감이 있지만 따라서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기에 우상 숭배를 하던 시절의 감정으로 돌아가면서 믿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전 8:11-12). 지식 있는 자의 부주의한 행동이 약한 형제의 믿음을 무너지게 하는 것은 형제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셔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의 믿음을 무너지게 하는 것은 더 나아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믿음의 지식이 있는 자의 자유하는 행동으로 주 안에 있는 형제가 상처를 받거나 믿음이 흔들리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약한 형제는 주님께서 사랑하셔서 말씀으로 세워가시는 중입니다. 그런데 한 형제의 자유가 그 형제의 믿음을 무너트리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사용할 때는 다른 형제에게 덕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자유가 약한 자의 믿음을 넘어뜨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께 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13)라고 했습니다. 이는 나는 고기를 먹을 자유가 있지만, 그 고기를 먹음으로 형제가 실족하게 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유를 누리는 것보다 자유를 절제하거나 포기함으로 형제를 세우는 것이 더 유익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소자는 믿음이 어리거나 연약한 자입니다. 그들을 향한 상처주는 말이나 업신여기는 행동 등으로 실족하게 하는 것은 주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게서는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마 18: 8, 10)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어린 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형제를 실족케 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를 세우기 위하여 약한 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13).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덕을 세우기 위하여 믿음이 약한 자를 배려함으로 보호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음식이 형제를 실족케 하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 형제를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주님이 주신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취미 생활도 하고, 소셜 미디어, 그리고 친구들과의 모임도 행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하게 될 때에 “나는 괜찬지만, 다른 지체들도 괜찮은가?”라고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다.

내가 이번 주말에 여행을 가는 자유가 있지만, 내가 여행을 감으로 인하여 다른 지체들은 어떻게 나를 바라보게 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이 연약한 자들도 따라서 매주 여행을 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믿음은 형제를 세우기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의 습관적인 말투나 행동이 누군가에게 근심을 주거나 상처를 준다면, 더욱 존중하는 말투와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이가 많고 연륜이 많으니까 교회에서 함부로 행해도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오면, 나의 믿음의 행동과 말투가 다음 세대에게 본이 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하는 지체는 단순히 같은 교회를 다니는 형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믿음의 형제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는 형제를 우리도 귀하게 여기고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믿음을 업신여기거나 판단하지 말고 존중하며 함께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을 가진 자의 믿음은 영향력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연륜이 있거나 직분자이거나 사역을 하는 위치에 있다면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준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따르는 본이 됩니다. 우리의 영향력이 선한 영향력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본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향력이 부정적으로 나타나거나 다른 지체들에게 상처를 주어 실족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자유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형제를 위한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귀한 희생으로 구원하신 형제를 위하여 우리도 자유를 내려놓고 형제의 유익을 구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