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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연구 (2) - 지혜로운 자의 선택 (잠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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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62회 작성일 26-01-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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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연구 (2) - 지혜로운 자의 선택 (잠 1:7-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 많은 선택을 합니다. 우리의 선택이 먹고 사는 선택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선과 악 중에서 택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찾아오기도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악을 행하자’라는 말로 유혹하기 보다는, ‘함께 하자, 너만 빠지면 손해야’라는 말로 찾아옵니다. 지혜로운 자는 슬기롭고 명철한 자입니다. 그리고 명철은 모략을 얻는 다고 했습니다.

이는 인생의 길에서 우리를 해치는 악한 죄의 길에 서지 않고 오직 진리의 길을 따르는 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오는 우리는 가야 할 길이 아닌 것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선택의 중요함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지혜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지혜로운 자는 인생에서 바른 선택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그분의 말씀에 자신을 순종하려는 자세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지혜의 출발점입니다.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태도로 살아갑니다. 반대로 하면 지혜로운 자는 지혜와 훈계를 소중히 여기며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2. 자녀들은 가정에서 지혜를 우선 배워야 합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 1:8).

자녀들이 믿음와 지혜를 배우는 첫 번째 통로는 부모입니다. 즉 가정에서 지혜와 훈계를 들어가며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현장에서 어떠한 삶의 살아가며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지를 가르쳐 주는 곳이 가정이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말씀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영적 책임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사는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훈계를 들어야 하며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어머니의 역할은 일상의 삶에서 지혜를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삶에서 부모가 가르치는 삶의 지혜를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듯이, 지혜는 갑자기 얻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관계, 그리고 반복된 훈련으로 형성되가는 것입니다. 잠언서 22장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삶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자녀들이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의 삶을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배우는 지혜는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며 목의 금사슬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잠 1:9). 아름다운 관과 목의 금사슬은 지위와 신뢰를 상징합니다. 즉 부모로부터 배운 지혜는 그 사람의 인격과 태도에서 품격이 더해지기에 존중을 받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존귀하게 보이게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존귀함을 얻는 것입니다. 잠언 3장은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3:3-4)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지혜에 순종한 삶은 아름다운 왕관과 금 사슬처럼 그 사람의 인생을 존귀하게 장식하는 것입니다.

3. 지혜로운 자는 죄의 유혹을 거절합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찌라도 좇지 말라.“(잠 1:10).

지혜로운 자는 죄가 유혹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악한 자가 너를 꾈찌라도에서 꾀다는 ‘부드럽게 설득하다, 달콤하게 속이다’ 라는 뜻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강압하거나 협박하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고 논리적이며 공감하도록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에 달콤하게 속이는 말로 찾아왔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친절하였고 논리적이었으며 공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네가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는다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죄인들은 에서의 죄는 과녁에서 벗어난다는 말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에서 벗어난 삶을 반복적으로 선택하여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신의 정욕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교만하고 오만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소유를 훔치거나 강도질하며, 자신의 정욕을 위하여 음행을 행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이러한 죄인들이 유혹할 때는 따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따르지 말라의 의미는 강력한 금지 명령입니다. 즉 절대 하지 말라, 한번도 허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죄인이 유혹할 때는 마음에서라도 동의하지 말고 단호히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1)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복 있는 사람으로서 악인의 꾀에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유혹하는 자는 마음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마음에서부터 동의하지 않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잠언은 악한 자가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잠 1:11). 그들은 집단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연대감을 강조합니다. ‘오라 우리가 함께 가자.’ 그들은 숨어 기다리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고 합니다. 그들은 무고한 자를 희생시키는 일에 조금도 양심의 가책이 없는 것입니다.

”음부 같이 그들을 산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게 통으로 삼키자.“(잠 1:12). 음부는 스올로서 구약에서는 죽음의 세계입니다. 죽음이 그들을 산채로 삼키듯이 삼키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을 산 채로 무덤에 넣어 죽이자는 잔인한 표현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모습에서 죄인들의 심각한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죄인들이 순진한 사람들을 죄의 길로 유혹할 때는 이익을 얻는 다는 달콤한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리니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찌라도.“(잠 1:13-14). 그들은 자신들이 빼앗은 것으로 부자가 될 것이라고 유혹 합니다. 온갖 보화를 빼앗아 즉 훔쳐서 자신들의 집에 채울 것이라는 말에 유혹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훔친 물건을 함께 제비를 뽑아 나누고, 전대 하나만 두어 함께 이익을 공유할 것이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유혹은 무엇이 있을까요? 과거 십대들이 몰려 다니며 차량안에 있는 금품등을 훔치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성인들 같은 경우에는 불법 도박장에 출입하거나 인터넷 도박 등의 죄에 빠지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크고 작은 일에 불의의 일에 참여시키고자 할 때, 우리는 항상 마음으로 동의하지 말고 옳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잠 1:15). 잠언 기자는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가치관이나 목표 등을 공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과 마음을 합하여 인생의 방향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발을 금하며 그 길을 밟지 말라는 그들이 가는 길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길은 자주 다니는 길, 굳어진 습관의 길입니다. 죄의 길은 반복되는 습관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을 이기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그 길에 발도 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3. 죄인의 길은 파멸로 끝나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 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잠 1:16).

잠언 기자는 악인의 발은 악으로 달려 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르다고 했습니다. 달려가고 빠르다는 표현은 충동적으로 질주하는 모습입니다. 죄인은 유혹에 끌려가기 보다는, 스스로 악을 향해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일이겠거늘 그들을리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잠 1:17-18). 새는 그물을 치는 것을 보면 위험을 인지하고 도망합니다. 새조차도 위험을 보면 도망하는데, 어리석인 사람은 자신이 슷로 위험에 빠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엎드리고 숨어 기다리며 다른 사람을 해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피를 흘리고 생명을 해하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잠 1:19)라고 했습니다. 탐하는 것은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며 이익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부당한 이익을 탐하는 자는 결국 자기의 생명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죄는 남을 해친다고 생각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기 생명을 해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는 예외라고 생각하지만, 잠언은 ‘모든 자의 길을 다 이러하다’고 가르칩니다. 죄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 생명을 파괴하는 길입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어 자신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기에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이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아합이 낙심하여 침상에 누워버렸습니다. 그러자 이세벨이 거짓 증인을 세워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라고 하며 나봇을 돌로 쳐서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을 아합과 이세벨이 탈취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한 무고한 자를 죽여 포도원을 빼앗은 것에 대하여 성공했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잠언 기자의 설명과 같이 악을 행하는데에 빨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아합에게 ‘개들이 나봇의 피를 흘린 곳에서 네 피도 핥을 것이다’(열상 21:19)라고 경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세벨에 대하여도 ”개들이 이스라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찌라.“(열상 21:23) 라고 경고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악을 행한 자가 없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합은 이방 여인이었던 이세벨에게 유혹되어 함께 악을 행했던 것입니다. 선지자 엘리야의 경고대로 아합과 이세벨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아합은 전쟁 중에 화살을 맞아 피를 씻은 못에서 개들이 피를 핣았고, 이세벨은 창문에서 던져저 개들이 시체를 먹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 했습니다.

탐욕은 항상 정당한 이유를 말하고, 죄는 잠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말은 항상 파멸로 마치게 됩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공동 범죄는 공동 파멸로 끝난 것을 보여줍니다. 이와같이 아합과 이세벨은 남을 해하여 얻는 이익이 결국 자기 생명을 빼앗는다는 잠언 1장 16-19절의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인생은 누구를 경외하느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집니다. 죄를 사모하면 죄의 유혹이 찾아올 것이고, 그러한 유혹 앞에서 믿음과 양심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지혜를 얻어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기준대로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유혹을 분별하게 되고 결국 생명의 길, 말씀의 길로 걸어가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