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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연구(27) - 바울의 예루살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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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693회 작성일 22-10-1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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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연구(27) - 바울의 예루살렘 여정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행 21:13).

사도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여정을 향합니다.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 눈물의 고별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이 맡기신 양 무리를 말씀으로 든든히 세울 것을 당부합니다.  그리고, 눈물의 작별을 고난 후에 사도 바울은 고스로 로도, 그리고 베니게를 통하여 두로에 상륙합니다.  그리고, 두로에서 칠일간을 머문후에 두로를 거쳐 돌레마이에서 하루를 지내다가 가이사랴에 이르게 됩니다. 

가이사랴는 항구 도시로 헤롯 대왕이 로마의 황제를 위하여 지은 도시입니다.  이곳은 로마의 총독이 거주하고 있었고, 로마의 군대가 주둔하였습니다.  이곳에는 원형 경기장과 공연장 등이 있었고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이 적힌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후에 로마로 압송되기 전에 2년간 가택에서 구금되었던 곳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복음 사역을 하면서 당하는 시련을 통하여 영적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사도 바울은 고난의 장벽에서도 자신의 헌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행 21:13).
 
사도 바울은 가이사랴의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처녀로 예언하는 딸들이 있었습니다.  이때 선지자 아가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사도 바울이 당한 고난을 예언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행 21:11).  그러자, 누가와 여러 제자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행 21:13).  사도 바울의 믿음의 결단을 본 다른 제자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며 주님께 맡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드렸습니다.  에베소의 장로들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사도 바울은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도 관제로 자신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6-7).  관제는 구약의 전제를 의미합니다.  헬라어로 ‘쏟아 붓다’ 라는 뜻입니다.  이는 희생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제사 의식입니다.  즉, 제물을 불태우기 전에 그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는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드리는 희생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주님과 같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렸기에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며,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모은 구제 헌금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은 위험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게 됩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 23:11).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야고보를 만나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간증하자 듣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에게 유대인들에게 오해를 사지 않도록 정결의식을 하라고 했습니다. “...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행 21:20).  유대인 중에 믿는 자들이 수만명이 있는데, 그들은 율법에 열심이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믿고 있지만 구약과 신약의 과도기에서 구약의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정결 의식을 통하여 율법을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 중에는 사도 바울이 모세를 배반하고 할례를 하지 말며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규율이나 절기, 율법을 거부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관습을 지켰고 유월절도 지켰습니다.  단지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의 율법을 강요하는 것을 거부했을 뿐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는 예루살렘 공회가 결정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님을 믿었기에,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다 함을 얻을 자가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을 얻기 위하여 유대인처럼 된 것은 아무쪼록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고전 9:20-23).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오해가 없도록 결례를 행하였습니다.  결례는 민수기 6장 1-21 절의 나실인의 서원을 의미했습니다.  나실인들의 정결은 7일간 지난 후에 머리를 깎고, 8일에는 제사의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즉, 번제물로 일년 된 숫양 하나, 속죄 제물로 이련된 어린 암양 하나, 화목제로 숫양 하나, 그 외에 무교병 한 광주리와 전제물을 드렸습니다.  야고보는 사도 바울에게 이와 같이 서원한 다른 네 사람의 정결 의식을 위한 비용을 지불하기를 권면했습니다. 그 비용은 상당했고 다른 네 사람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큰 대가 지불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난한 서원자를 위하여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것은 매우 경건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행 21:23-24).  사도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의 말대로 결례를 행하게 됩니다.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 된것을 고하니라.” (행 21:26).  사도 바울은 나실인 서원을 하는 결례를  행함으로 자신도 모세의 율법과 조상들의 관습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고 사도 바울을 고소하며 훼방합니다.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행 21:28).  그들은 사도 바울이 율법과 성전을 훼방하였고,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가서 성전을 더럽게 하였다고 정죄하였습니다.  성전에는 바깥뜰까지만 이방인들이 들어올 수 있었고 안뜰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불법으로 침입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사형에 처할 것이라는 경고가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사도 바울을 잡아 바울을 죽이려고 매질을 했습니다.  이때 소동이 난 것을 안 천부장이 군사들을 데리고 와서 사도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리고 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천부장의 보호 아래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간증을 합니다.  자기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교육받아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가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하여 가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행 22:7-8).  주님을 만난 사도 바울은 구원을 얻고 침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ㄷ게 됩니다.  이러한 간증을 할 때에 유대인들이 소동하여 사도 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자, 천부장이 사도 바울을 채찍질하여 심문하려고 했을 때에 자신이 로마인임을 밝히게 됩니다.  “...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행 22:25).  그러자, 천부장은 자신은 돈을 주고 로마시민권을 얻었다고 하자, 사도 바울은 자신은 나면서부터 시민권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천부장은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을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했습니다.  천부장은 사도 바울을 위험에서 두 번이나 구해주게 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인 것입니다. 

천부장은 사도 바울의 결박을 풀고 공회를 모으게 됩니다.  공회는 산헤드린 공회로서 유대인 중에 최고의 지도자 71 명(대제사장인 의장 포함)이 모여 회의를 하는 최고 의결기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공회 앞에서 자신이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음을 고백했습니다.  이때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그 입을 치라 명하자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행 23:3)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곁에 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 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의 냉소와 더불어 대제사장을 책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중보자가 필요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직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으로서 아나니아는 불법을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대제사장을 알지 못했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 받노라.” (행 23:6).  사도 바울의 말로 인하여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사두개인들은 부활이나 천사나 영을 믿지 않았지만, 바리새인들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투는 동안에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영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밥에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 23:11). 

주님은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며 그를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게 될 것임을 확증하셨습니다.  그 후에 사십 명의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사도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는 맹세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을 천부장을 통하여 데려오게 하면 자신들이 매복하였다가 그들을 죽이겠다고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이때 바울의 조카가 그들의 매복을 듣고 바울에게 알려 줍니다.  그러자, 바울이 천부장에게 조카를 통하여 그 소식을 알게 합니다.  이때 백부장은 밤에 보병과 마병 창군을 준비하여 가이사랴로 바울을 보내게 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습니다.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삼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행 23: 22-24).  천부장은 총독 벨릭스에게 사도 바울을 보냄으로서 유대인들로부터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송사하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행 23:26-29). 

벨릭스 총독은 사도 바울을 헤롯 궁에 거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로부터 사도 바울을 지키기 위하여 천부장과 같은 이방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조카가 유대인의 흉계를 듣게 하심으로 사도 바울이 매복으로부터 보호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로마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에 보내심으로 그곳에서 로마로 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시련 가운데서도 자신의 백성을 이와 같이 지키시며 그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주님을 위하여 환난을 당하나 담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에 우리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며 더욱 담대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