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연구 (26) - 바울의 밀레도 고별설교 (행 20: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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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113회 작성일 22-10-12 12:11본문
사도행전 연구 (26) - 바울의 밀레도 고별설교 (행 20:17-35).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 마게도냐로 가게 됩니다. 마게도냐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을 통하여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그리고 베뢰아 지역에 교회를 세운 곳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헬라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은 아가야 지역으로서 아덴과 고린도 지역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헬라의 고린도에 삼 개월을 있다가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곳에 3 개월을 머물면서 로마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곳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려고 했지만 유대이들이 해하려 하는 것을 알고 마게도냐로 다시 걸어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에 동행햇던 사람들은 소바더와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그리고 더베 사람 가이오 및 디모데와 두기고와 드로비모였습니다 (행 20:4). 그들은 배를 타고 드로아에서 사도 바울을 기다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드로아에 이르게 됩니다.
무교절은 유대인의 절기였습니다. 유월절이 유대교 달력으로 1월 (니산월) 14일에 지켜졌고, 그 다음날부터 7일간 즉 1월 15-21일 까지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이 절기 동안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었고 출애굽 전날 밤 무교병을 먹으며 출애굽을 준비한 데서 기원합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무교절이 마치날 후부터 50일이 되는 날), 장막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성도들을 만난게 됩니다. 이 곳에 안식 후 첫 날에 떡을 떼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때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ㄹ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즉, 예배를 드리다가 새벽까지 말씀을 전하니까 무척이나 피곤하여 졸았던 것입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며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행 20:9). 이때 바울이 그에게 엎드려 몸을 안자 그의 생명이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일으키시는 큰 능력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엘리사가 수넴 여인이 아들이 죽자 그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게 되고, 베드로가 욥바의 다비다가 죽자 기도하여 살립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유두고를 살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유두고가 살아나자 교회가 큰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드로아에서 앗소로 가고, 그 후에 미둘레네와 기오, 그리고 밀레도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기 위하여 에베소를 들르지 않고, 오히려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하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전한 말씀은 믿는 성도들에게 주는 설교이며 그의 고별 설교였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별 설교를 통하여 얻게 되는 영적인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섬기는 자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행 20:18).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 장로들을 오게 해서 메세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메시지는 자신이 그들 가운데 어떻게 행했는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겸손과 눈물과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행 20:19).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먼저 주님과 같이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겸손과 눈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겸손이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종의 모습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눈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또한 유대인의 방해로 인하여 찾아온 시험을 참아야 했지만 주님을 섬기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31절의 말씀을 통하여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31)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삼년간 사역을 하면서 밤과 낮으로 말씀을 가르치며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습니다. 훈계하다의 헬라어 ‘누데테오’는 ‘부적절한 행동 방식을 못하게 하거나 피하게 하도록 충고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함과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행동하는지를 살펴보며, 잘못된 것은 지속적으로 교훈하며 권면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양의 목자로서 복음을 전함과 동시에 한 영혼이 말씀을 바르게 적용하며 살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사역자의 겸손과 눈물을 요구합니다. 또한 여러 모양의 시험을 참아야 하며 그러한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거부하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서 겸손으로 섬기셨고 불순종하는 유대인들과 방황하는 불쌍한 사람들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궤계로 인한 핍박과 시련을 참으셨습니다. 주님의 모든 희생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복음 전도가 삶의 목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사도 바울의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행 20:20-21). 사도 바울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회개와 믿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가 전한 복음으로 에베소에 큰 부흥이 일어났고 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여 우상을 떠남으로 아데미 신전과 관련된 우상의 사업이 흔들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자들은 자신들의 책을 불태우며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에 돌아가게 될 것이고, 다시 로마로 가고자 했습니다. 에베소서 19장에서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행 19:21) 라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사도 바울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은 주님이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복음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조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음을 전했기에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에스겔서의 파숫군의 사명이 적의 침입을 알리는 것을 비유하며 언급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 피가 자신에게 찾지만, 복음을 전했음에도 그들이 거부했다면 그 피는 그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로서 우리 사역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영혼들을 구원하고 말씀으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마라톤 선수의 목표는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이듯이 우리의 목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3. 우리는 교회의 양들을 말씀으로 굳게 세워야 합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 20:28).
사도 바울은 밀레도의 장로들을 향하여 자신과 양 무리를 잘 돌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목회자들을 향하여 자신을 잘 돌보며 온 양 무리를 잘 돌보라고 했습니다.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의 의미는 ‘양 떼에게 관심을 보여라’ 는 것입니다. 목자의 사명은 양떼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영과 혼과 육도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들을 교회의 감독자로 삼아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통하여 목회자의 사명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 20:28).
감독자는 헬라어로 ἐπίσκοπος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감독자(overseer) 로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행하고 있는지를 감독하는 책임을 맡은 자를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은 장로와 감독, 목사를 같은 직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나이의 연장자로서의 존경을 받는 것을 의미하고, 감독은 교회의 사역과 행정을 감독하는 자이며, 목사는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며 돌보는 자로서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 20:28) 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는 두 가지의 헬라어의 의미가 있습니다. ‘치다’ 는 ‘먹이다, 다스리다’ 입니다. 주님은 목회자가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의 양무리를 잘 인도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주님의 의도는 양 무리를 말씀으로 먹여서 영적으로 풍성하게 하며, 말씀으로 지도하며 다스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삼년이나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각 사람을 든든히 세우고 하나님의 기업을 얻게 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2).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 교회를 든든히 세웠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먹은 양들이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맡기신 교회를 잘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 안에서 성숙한 믿음의 동역자를 세워서 사역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사역자와 집사, 그리고 목자와 다양한 은사자들을 통해서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양 떼들을 미혹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행 20:29-30). 흉악한 이리는 거짓 교사나 선지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거짓된 말을 하여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탄의 길로 인도하려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의 예언과 같이 요한계시록은 에베소 교회에 거짓된 교사들이 들어왔음을 설명합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 2:2, 6). 에베소 교회는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즉, 양들을 노략질하는 거짓된 무리들을 시험하여 용납하지 않은 것입니다.
목자의 다른 사명은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며 인도할 뿐만 아니라, 거짓된 이단이 틈타지 않도록 거짓된 교리와 가르침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역을 하면서 은이나 금을 탐하지 않고 범사에 모본을 보였습니다. 그의 삶과 사역은 에베소 교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에베소 교회는 주위에 영향력을 끼치는 능력의 교회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부르신 사역자의 삶과 복음 전도자의 삶, 그리고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며 인도하는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 마게도냐로 가게 됩니다. 마게도냐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을 통하여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그리고 베뢰아 지역에 교회를 세운 곳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헬라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은 아가야 지역으로서 아덴과 고린도 지역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헬라의 고린도에 삼 개월을 있다가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곳에 3 개월을 머물면서 로마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곳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로 가려고 했지만 유대이들이 해하려 하는 것을 알고 마게도냐로 다시 걸어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에 동행햇던 사람들은 소바더와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그리고 더베 사람 가이오 및 디모데와 두기고와 드로비모였습니다 (행 20:4). 그들은 배를 타고 드로아에서 사도 바울을 기다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드로아에 이르게 됩니다.
무교절은 유대인의 절기였습니다. 유월절이 유대교 달력으로 1월 (니산월) 14일에 지켜졌고, 그 다음날부터 7일간 즉 1월 15-21일 까지 지키는 절기였습니다. 이 절기 동안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었고 출애굽 전날 밤 무교병을 먹으며 출애굽을 준비한 데서 기원합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무교절이 마치날 후부터 50일이 되는 날), 장막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만에 드로아에 있는 성도들을 만난게 됩니다. 이 곳에 안식 후 첫 날에 떡을 떼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때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ㄹ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즉, 예배를 드리다가 새벽까지 말씀을 전하니까 무척이나 피곤하여 졸았던 것입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며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행 20:9). 이때 바울이 그에게 엎드려 몸을 안자 그의 생명이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일으키시는 큰 능력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엘리사가 수넴 여인이 아들이 죽자 그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게 되고, 베드로가 욥바의 다비다가 죽자 기도하여 살립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유두고를 살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유두고가 살아나자 교회가 큰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드로아에서 앗소로 가고, 그 후에 미둘레네와 기오, 그리고 밀레도에 이르게 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기 위하여 에베소를 들르지 않고, 오히려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하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전한 말씀은 믿는 성도들에게 주는 설교이며 그의 고별 설교였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별 설교를 통하여 얻게 되는 영적인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섬기는 자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행 20:18).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 장로들을 오게 해서 메세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메시지는 자신이 그들 가운데 어떻게 행했는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겸손과 눈물과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행 20:19).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에베소에서 3년 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먼저 주님과 같이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겸손과 눈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겸손이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종의 모습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눈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또한 유대인의 방해로 인하여 찾아온 시험을 참아야 했지만 주님을 섬기는 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31절의 말씀을 통하여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31)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삼년간 사역을 하면서 밤과 낮으로 말씀을 가르치며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습니다. 훈계하다의 헬라어 ‘누데테오’는 ‘부적절한 행동 방식을 못하게 하거나 피하게 하도록 충고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함과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행동하는지를 살펴보며, 잘못된 것은 지속적으로 교훈하며 권면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양의 목자로서 복음을 전함과 동시에 한 영혼이 말씀을 바르게 적용하며 살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사역자의 겸손과 눈물을 요구합니다. 또한 여러 모양의 시험을 참아야 하며 그러한 과정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거부하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서 겸손으로 섬기셨고 불순종하는 유대인들과 방황하는 불쌍한 사람들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궤계로 인한 핍박과 시련을 참으셨습니다. 주님의 모든 희생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위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복음 전도가 삶의 목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사도 바울의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행 20:20-21). 사도 바울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회개와 믿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가 전한 복음으로 에베소에 큰 부흥이 일어났고 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여 우상을 떠남으로 아데미 신전과 관련된 우상의 사업이 흔들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자들은 자신들의 책을 불태우며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에 돌아가게 될 것이고, 다시 로마로 가고자 했습니다. 에베소서 19장에서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행 19:21) 라고 했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사도 바울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은 주님이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복음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조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음을 전했기에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에스겔서의 파숫군의 사명이 적의 침입을 알리는 것을 비유하며 언급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 피가 자신에게 찾지만, 복음을 전했음에도 그들이 거부했다면 그 피는 그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로서 우리 사역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영혼들을 구원하고 말씀으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마라톤 선수의 목표는 결승점을 통과하는 것이듯이 우리의 목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3. 우리는 교회의 양들을 말씀으로 굳게 세워야 합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 20:28).
사도 바울은 밀레도의 장로들을 향하여 자신과 양 무리를 잘 돌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목회자들을 향하여 자신을 잘 돌보며 온 양 무리를 잘 돌보라고 했습니다.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의 의미는 ‘양 떼에게 관심을 보여라’ 는 것입니다. 목자의 사명은 양떼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영과 혼과 육도 잘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들을 교회의 감독자로 삼아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통하여 목회자의 사명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 20:28).
감독자는 헬라어로 ἐπίσκοπος 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감독자(overseer) 로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행하고 있는지를 감독하는 책임을 맡은 자를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은 장로와 감독, 목사를 같은 직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나이의 연장자로서의 존경을 받는 것을 의미하고, 감독은 교회의 사역과 행정을 감독하는 자이며, 목사는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며 돌보는 자로서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 20:28) 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는 두 가지의 헬라어의 의미가 있습니다. ‘치다’ 는 ‘먹이다, 다스리다’ 입니다. 주님은 목회자가 주님이 피로 사신 교회의 양무리를 잘 인도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주님의 의도는 양 무리를 말씀으로 먹여서 영적으로 풍성하게 하며, 말씀으로 지도하며 다스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삼년이나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각 사람을 든든히 세우고 하나님의 기업을 얻게 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2).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 교회를 든든히 세웠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먹은 양들이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맡기신 교회를 잘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 안에서 성숙한 믿음의 동역자를 세워서 사역을 위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사역자와 집사, 그리고 목자와 다양한 은사자들을 통해서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양 떼들을 미혹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행 20:29-30). 흉악한 이리는 거짓 교사나 선지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거짓된 말을 하여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탄의 길로 인도하려는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의 예언과 같이 요한계시록은 에베소 교회에 거짓된 교사들이 들어왔음을 설명합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 2:2, 6). 에베소 교회는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습니다. 즉, 양들을 노략질하는 거짓된 무리들을 시험하여 용납하지 않은 것입니다.
목자의 다른 사명은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며 인도할 뿐만 아니라, 거짓된 이단이 틈타지 않도록 거짓된 교리와 가르침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역을 하면서 은이나 금을 탐하지 않고 범사에 모본을 보였습니다. 그의 삶과 사역은 에베소 교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에베소 교회는 주위에 영향력을 끼치는 능력의 교회로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부르신 사역자의 삶과 복음 전도자의 삶, 그리고 양들을 말씀으로 먹이며 인도하는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