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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7) - 사사 삼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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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645회 작성일 22-12-2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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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7) - 사사 삼갈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삿 3:31).

삼갈은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삼갈은 사사기 3장에 갑자기 나타나 한 구절에 언급된 후에 사라집니다. 그러나 삼갈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사사기 기자는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삼갈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1. 사사 삼갈의 시대

사사기는 삼갈이 에훗이 모압으로부터 승리한 후와 에훗의 죽음 사이에서 그가 활동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갈이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주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은 이스라엘이 팔십년 동안 태평했던 시기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훗은 여리고가 있는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즉 요단강 근처의 동쪽이었습니다. 삼갈이 활동했던 지역은 블레셋이 있는 지역으로 지중해 바다가 있는 서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 블레셋 사람이 처음으로 나타난 곳이 사사기 3장 삼갈에 의해서 있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사사기에서 시작되어 다윗의 시대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다윗이 물리쳤던 골리앗은 블레셋 사람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에 정착시기와 비슷하게 가나안에 정착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모압 지역에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왔다고 한다면, 블레셋 사람들은 지중해의 에게해의 지역과 크레타 지역으로부터 배를 타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남쪽 지역에 정착한 후에 다섯 도시에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그 도시들은 가자, 가드, 에크론, 애쉬크론, 애쉬돗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오면서 철기를 다룰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들어와 영향력을 행세했습니다. 그들은 쇠를 녹여서 칼을 만들었기에 군사적으로 이스라엘이나 가나안 사람들보다 우월한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해안 평야 지대에 정착했기에 애굽 사람들처럼 철병거를 만들어 적들을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사사기 1장 19절에 “...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골짜기의 거민들은 블레셋 사람들로서 철병거로 전쟁했기에 강한 민족으로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삼갈의 출신에 대하여는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사 삼갈이 속한 지파나 고향 마을, 그가 싸웠던 장소들이나 그가 다스리거나 살았던 시기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는 그의 부친이 아낫이고 그가 이스라엘을 블레셋에서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블레셋 사람과 싸울 때에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다는 것에 과한 것입니다. 그가 소모는 막대기로 싸웠다는 것은 그가 농사짓는 농부 출신이었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삼갈이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이나 죽일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의 강한 도우심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를 모는 농부를 통해서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2. 삼갈이 주는 교훈

1. 하나님은 약한 자를 사용하셔서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사사 삼갈은 뛰어난 가문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출신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하는 것은 그의 출신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소를 모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삼갈이 외적으로 뛰어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세우셔서 강한 블레셋 군대를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보다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그 분의 뜻을 이루시며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은 겸손히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시고, 세상의 약한 자들을 택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 택하셔서 일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사니나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8-29).

하나님의 역사는 강한 자들이나 뛰어난 자들이나 아니라 약하고 연약하고 멸시받는 자들을 택하셔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공주의 아들로서 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을 때에 그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40년간 자신의 존재 자체도 잃어버리고 가장 낮은 자로서 목자의 삶을 살고 있을 때에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의 자존감이 사라지고 그가 자랑하던 힘이 약해지고 그의 뛰어난 지식등이 희미해지고 있을 때에 그는 자신의 소망 조차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가장 위대한 사명을 맡기시고 그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도 양을 치는 목자로서 아무도 그를 주목하고 있을 않을 때에 하나님은 그를 부르셔서 그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사사 중에서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형제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여 자신의 집에서 떠나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제로부터 배척당한 입다를 부르셔서 암몬 자손을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디엘 무디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신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분의 복음 사역을 통하여 100 만명의 영혼들이 구원받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디엘 무디를 귀하게 쓰신 것입니다. 그런데 디엘 무디의 배경을 보면 그 분은 그렇게 뛰어난 교육을 받거나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디엘 무디는 어릴적부터 친척의 구두 수선집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가 주일학교 교사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이후에 주님을 사랑하며 복음의 열정으로 사역을 하면서 귀하게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그 분은 심지어 설교할 때에 문법도 틀리는 일이 있어 사람들이 지적도 했지만 그분은 성령의 강한 역사하심으로 수 많은 영혼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잭 하일스 목사님은 미국에서 위대한 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우기도 하셨습니다. 특히 이 분은 영혼의 열정으로 주일학교 사역을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또한 목회자 학교를 열어 수많은 목회자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셨습니다. 하일스 목사님은 아버지가 알코 중독자였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아버지가 항상 술을 마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린 시절 아주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하일스 목사님은 무척이나 수줍음을 타서 앞에 나서서 말하기를 꺼려하기도 했습니다. 하일스 목사님이 주의 종으로 헌신하자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게 격려를 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 교회에 미식 축구 선수가 있었는데 그 분이 헌신하자 사람들은 그를 격려하며 기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일스 목사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았기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였고 그 결과로 성령 충만을 받아 담대히 사역하며 미국의 가장 위대한 교회 중의 한 교회를 세우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세상에 자랑하거나 내세울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시는 은혜의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모습은 우리의 겸손이며 우리의 아픔은 우리의 강함이 되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한 귀한 도구로서 쓰임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질그릇이고 주님의 보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보배라고 생각하기에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보배이신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사용하시는 질그릇인 것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 강함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더욱 귀하게 쓰임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는 작은 것으로 큰 역사를 이루십니다.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삿 3:3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그 분의 뜻을 이루십니다. 사사 삼갈에게는 소 모는 막대기가 있었습니다. 소를 모는 농부라면 누구에게나 소 모는 막대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사 삼갈과 함께 하시자 소 모는 막대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을 무너트린 것은 삼갈의 소 모는 막대기가 아니라 삼갈에게 능력을 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삼갈의 헌신과 믿음은 그가 가진 막대기 조차도 하나님의 능력을 귀하게 쓰임받게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원리를 우리는 성경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양을 치는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시자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홍해강이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고, 다시 홍해강이 합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서 애굽에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심지어 지팡이를 들고 기도할 때에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은혜를 입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물맷돌로 골리앗 장군을 무찌르기도 했습니다. 물맷돌은 단지 어린 목동들이 노는 도구이거나 양을 칠 때에 짐승을 쫓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에 나가자 다윗은 사울왕이 주는 갑옷이나 칼보다 자신에게 익숙한 물맷돌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골리앗을 무너트린 것은 실제적으로 물맷돌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자 다윗은 골리앗을 무너트릴 수 있었습니다. 물맷돌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통로인 것입니다.

신약에서 어린 소년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가져오자 주님이 축사하셨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나 수많은 군중들이 음식을 먹고 열두 광주리 가득하게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린 소년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가져왔기에 주님은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익숙한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에게 특별한 은사가 있고 취미가 있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것들이 있기도 합니다. 남들에게는 평범해 보이지만 자신에게는 소중한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복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해 보이는 메시지 이지만 우리에게는 생명의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과 맺어가는 특별한 관계가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작은 고리와 도구에서 하나님은 일하셔서 그 분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삼갈이 소모는 막대기로 큰 승리를 이룬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삼갈은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사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였고 믿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가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자 그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큰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을 구원하며 제자삼는 일입니다. 주님이 주신 크신 은혜를 기억하며 더욱 믿음으로 달려가는 주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