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연구 (28) - 사도 바울의 간증 (행 26: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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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647회 작성일 22-10-12 12:13본문
사도행전 연구 (28) - 사도 바울의 간증 (행 26:1-32).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행 26:15-16).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유대인의 핍박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오히려 로마 군인이 사도 바울의 생명을 지켜주게 되었고, 로마의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에서 2년간 헤롯궁에 잡혀 있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가이사랴에서 사도 바울은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 그리고 변사 더둘로를 만난게 됩니다. 그들의 고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함으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행 24:5-6).
그들은 유대인의 최고 지도자들이었지만 거짓으로 고소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염병과 같아서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을 소요케 하고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었기에 시골 뜨기의 괴수라는 비꼬는 말로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더럽게 했다고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규례를 지키며 정결 의식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에 죄악이 가득했기에 예수님을 거짓으로 모함하여 십자가에 죽인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바울도 거짓으로 모함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벨릭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와서 사도 바울을 심문하게 됩니다. 이때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에서 사도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베스도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사도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고자 했습니다.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행 25:9). 그러자, 사도 바울은 자신은 불의를 행하거나 죄를 범한적이 없음을 주장하며 가이사에게 호소합니다. “..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행 25:11-12). 가이사는 가이사인 로마 황제에게 가서 자신의 혐의에 대하여 재판을 받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로마 시민으로서 사도 바울은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 받을 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수일 후에 헤롯의 손자인 아그립바왕과 그의 누이 동생인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인사하러 가이사랴에 왔다가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야고보를 죽인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 2세였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친로마 정책을 하면서 약 50년간 왕으로 이스라엘의 일부 지역을 다스리게 됩니다. 버니게는 아그립바 왕의 여동생으로서 아그립바 왕과 함께 로마 총독에게 문안하러 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전하는 간증을 통하여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사도 바울은 믿기 전에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죄인이었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래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행 26:4-5).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의 믿음을 간증합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종교의 가장 엄한 파인 바리새파에 속하여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래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행 26:4-5). 사도 바울은 당대의 최고 학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웠습니다. 원래 다소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어릴 적에 예루살렘에 유학을 하며 가말리엘의 학파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회심하기 전에는 공회의 회원으로서 유대 사회에서 지도력을 일찍부터 발휘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간증합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에 행하여야 될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행 26:9-12).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전에는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 성도를 옥에 가두고 스데반의 죽음에 참여했으며, 성도들을 형벌하며 강제로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에 대하여 분노하여 다른 나라에 가서 핍박하는 일에 압장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죄인 중의 괴수’ 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신에 대하여 디모데전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3-15).
사도 바울은 이와같이 훼방자여 핍박자가 된 것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 중에 우두머리로서 큰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 은혜로 구원을 받아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인의 신분으로 어둠 가운데 있었습니다. 영적인 소경으로 방황하였고, 죄악 가운데 살며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 사도 바울은 핍박하던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행 26:15-16).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인생의 변화가 시작되는 싯점입니다. 사람들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세상의 아름다운 곳을 경험하고자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수 있는 것은 복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뜻하지 않는 사고를 만나 더 큰 어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삶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은 그의 삶의 변화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서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예루살렘에 데리고 오려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과 일행들은 하늘에서 비추는 밝은 빛을 보게 되며 땅에 엎드리게 됩니다. 이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26:14-15). 사도 바울은 예수님은 단지 나사렛에서 나서 사람들을 미혹하다가 그의 죄로 십자가에서 죽은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배웠던 믿음은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열심이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일주일에 이틀을 금식하고 구제를 하며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믿는 자들이 증거한 대로 죽으신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빛이 비추며 자신에게 음성으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가 고생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가시채는 소를 끄는 자가 소를 길들이기 위하여 사용하는 뽀죡한 막대기입니다. 소가 힘들어 뒷발질하면 소몰이는 가시채로 찌르면 소는 오히려 고통을 당했던 것입니다. 소가 가시채를 뒤발질하는 것이 고생이듯이, 사울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임을 의미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로 내가 네게 나타는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행 26:15-16).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고, 사울을 장차 종과 증인으로 삼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부르셔서 구원하셨고 앞으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행 26:17-18).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보내셔서 사람들의 영적인 눈을 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영적인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간 사람들은 죄사함을 얻어 거룩한 성도들과 함께 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을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받는 핍박의 이유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간절히 기다렸던 소망을 인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제도 여기 서서 신문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 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는 것이니이다.” (행 26:6-7).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메시야의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소망했던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화여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행 26:22-23).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생명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를 증거하는 사명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입니다.
3. 사도 바울과 같이 사명자는 고난의 길을 걸어갑니다.
“바울이 이가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행 26:24).
사도 바울은 회심한 이후로 힘들고 상처많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예루살렘에 구제를 가지고 찾아왔지만 더 큰 시련을 만났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이년이나 가이사랴에서 소중한 시간을 빼앗긴채로 죄수의 신분으로 지냈습니다.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 왕 앞에서 전한 복음과 간증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총독은 사도 바울에게 미쳤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은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행 26:28) 라고 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당시에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였지마,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고 믿어야 했습니다.
인생을 풀과 같아 사라지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사 40:8) 라고 했습니다. 풀과 꽃은 인생의 화려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어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영원토록 살아계시며 온 세계를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는 영적인 어두운 세력인 사단의 공격으로 고난과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이 세상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세상과 사단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이 값진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자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자의 길을 걸어갈 때에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6-8).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의 삶을 드린 그리스도와 같이 희생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관제입니다. 주님께 드린 삶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켜서 주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행 26:15-16).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유대인의 핍박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오히려 로마 군인이 사도 바울의 생명을 지켜주게 되었고, 로마의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에서 2년간 헤롯궁에 잡혀 있는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가이사랴에서 사도 바울은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 그리고 변사 더둘로를 만난게 됩니다. 그들의 고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함으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행 24:5-6).
그들은 유대인의 최고 지도자들이었지만 거짓으로 고소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염병과 같아서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을 소요케 하고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었기에 시골 뜨기의 괴수라는 비꼬는 말로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더럽게 했다고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규례를 지키며 정결 의식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에 죄악이 가득했기에 예수님을 거짓으로 모함하여 십자가에 죽인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바울도 거짓으로 모함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벨릭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와서 사도 바울을 심문하게 됩니다. 이때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에서 사도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베스도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사도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고자 했습니다.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행 25:9). 그러자, 사도 바울은 자신은 불의를 행하거나 죄를 범한적이 없음을 주장하며 가이사에게 호소합니다. “..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행 25:11-12). 가이사는 가이사인 로마 황제에게 가서 자신의 혐의에 대하여 재판을 받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로마 시민으로서 사도 바울은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 받을 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수일 후에 헤롯의 손자인 아그립바왕과 그의 누이 동생인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인사하러 가이사랴에 왔다가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야고보를 죽인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인 2세였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친로마 정책을 하면서 약 50년간 왕으로 이스라엘의 일부 지역을 다스리게 됩니다. 버니게는 아그립바 왕의 여동생으로서 아그립바 왕과 함께 로마 총독에게 문안하러 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전하는 간증을 통하여 사도 바울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사도 바울은 믿기 전에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죄인이었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래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행 26:4-5).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의 믿음을 간증합니다. 사도 바울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종교의 가장 엄한 파인 바리새파에 속하여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래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행 26:4-5). 사도 바울은 당대의 최고 학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배웠습니다. 원래 다소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어릴 적에 예루살렘에 유학을 하며 가말리엘의 학파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회심하기 전에는 공회의 회원으로서 유대 사회에서 지도력을 일찍부터 발휘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간증합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에 행하여야 될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행 26:9-12).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 전에는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 성도를 옥에 가두고 스데반의 죽음에 참여했으며, 성도들을 형벌하며 강제로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에 대하여 분노하여 다른 나라에 가서 핍박하는 일에 압장섰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죄인 중의 괴수’ 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신에 대하여 디모데전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3-15).
사도 바울은 이와같이 훼방자여 핍박자가 된 것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 중에 우두머리로서 큰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 은혜로 구원을 받아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인의 신분으로 어둠 가운데 있었습니다. 영적인 소경으로 방황하였고, 죄악 가운데 살며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믿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 사도 바울은 핍박하던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행 26:15-16).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인생의 변화가 시작되는 싯점입니다. 사람들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세상의 아름다운 곳을 경험하고자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수 있는 것은 복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뜻하지 않는 사고를 만나 더 큰 어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삶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은 그의 삶의 변화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서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예루살렘에 데리고 오려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과 일행들은 하늘에서 비추는 밝은 빛을 보게 되며 땅에 엎드리게 됩니다. 이때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26:14-15). 사도 바울은 예수님은 단지 나사렛에서 나서 사람들을 미혹하다가 그의 죄로 십자가에서 죽은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배웠던 믿음은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열심이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일주일에 이틀을 금식하고 구제를 하며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믿는 자들이 증거한 대로 죽으신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빛이 비추며 자신에게 음성으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가 고생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가시채는 소를 끄는 자가 소를 길들이기 위하여 사용하는 뽀죡한 막대기입니다. 소가 힘들어 뒷발질하면 소몰이는 가시채로 찌르면 소는 오히려 고통을 당했던 것입니다. 소가 가시채를 뒤발질하는 것이 고생이듯이, 사울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임을 의미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로 내가 네게 나타는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행 26:15-16). 주님은 사도 바울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고, 사울을 장차 종과 증인으로 삼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부르셔서 구원하셨고 앞으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로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행 26:17-18).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보내셔서 사람들의 영적인 눈을 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영적인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간 사람들은 죄사함을 얻어 거룩한 성도들과 함께 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을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받는 핍박의 이유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간절히 기다렸던 소망을 인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제도 여기 서서 신문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 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는 것이니이다.” (행 26:6-7).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메시야의 약속입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소망했던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화여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행 26:22-23).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생명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를 증거하는 사명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는 사도 바울의 모습입니다.
3. 사도 바울과 같이 사명자는 고난의 길을 걸어갑니다.
“바울이 이가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행 26:24).
사도 바울은 회심한 이후로 힘들고 상처많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예루살렘에 구제를 가지고 찾아왔지만 더 큰 시련을 만났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이년이나 가이사랴에서 소중한 시간을 빼앗긴채로 죄수의 신분으로 지냈습니다.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 왕 앞에서 전한 복음과 간증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총독은 사도 바울에게 미쳤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은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행 26:28) 라고 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당시에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였지마,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릎을 꿇고 믿어야 했습니다.
인생을 풀과 같아 사라지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사 40:8) 라고 했습니다. 풀과 꽃은 인생의 화려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어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영원토록 살아계시며 온 세계를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는 영적인 어두운 세력인 사단의 공격으로 고난과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이 세상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세상과 사단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이 값진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자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자의 길을 걸어갈 때에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6-8).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의 삶을 드린 그리스도와 같이 희생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관제입니다. 주님께 드린 삶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켜서 주님이 주시는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