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5)- 사사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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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624회 작성일 23-03-08 16:05본문
사사기 (15)- 사사 입다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삿 11:1-2).
이스라엘 자손은 사사 돌라와 야일이 죽은 후에 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삿 10:6). 이스라엘 자손은 돌라와 야일이 사사로 다스리는 45년 동안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떠나 주위 나라의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1.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그들이 섬겼던 우상들은 가나안의 주신인 바알과 아스다롯, 그리고 아람과 시돈의 신들과 동쪽의 모압과 암몬 자손의 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두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든가 우상을 섬기든가의 갈등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떠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블레셋 사람과 암몬 자손의 손에서 그들이 고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방인의 우상을 숭배함으로 이들 나라로부터 억압을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고통에 대하여 사사기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해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니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십팔 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고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삿 10:8-9). 이스라엘 자손은 암몬 자손에 의하여 18년 간 학대를 동하였고, 암몬 자손은 요단을 건너와 유대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자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찾아온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기므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삿 10:10).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원의 은혜를 구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반복되는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며 더 이상 구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들을 구원하셨으나, 이제는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시돈과 아말렉, 그리고 마온 사람들이 압제할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안이 찾아오면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기에 다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으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삿 10:12-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자신들이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그들을 구원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삿 10:14).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강팎하게 하면서 어려움 속에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 10:26-2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다시 죄를 범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징계하시겠다는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거절하시자,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들을 암몬 자손으로부터 건져주시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제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삿 10:1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회개하고 돌아오자 다시 그들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2. 구원자를 찾음
암몬 자손이 길르앗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자손도 미스바에 진을 치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자손은 “...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삿 10:18)라고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을 대표해서 암몬 자손과 싸우러 가는 자가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간의 전쟁은 입다가 사사로 등장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입다에 대하여 사사기는 큰 용사였다고 했습니다.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삿 11:1-2). 길르앗 사람이었던 입다는 큰 용사였지만 그는 기생이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다른 아들들과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길리앗의 아들들이 입다가 아버지의 기업을 잊지 못하게 하려고 집에서 쫓아낸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입다는 형제를 피하여 돕이라는 땅에 거하며 부랑자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삿 11:3). 입다는 거친 환경에서 강하게 성장했던 것입니다.
마침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만나러 돕 땅에 가서 자신들을 위하여 장관이 되어 암몬과 싸우라고 했습니다. 즉 길르앗 사람들은 입다가 전쟁의 총책임자가 되어 암몬을 무찌르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삿 11:6). 입다는 기생이 낳은 아들이었기에 형제들로부터의 차별과 거절로 인하여 집을 떠나 먼 곳에서 잡류들과 지내야 하는 고통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위기를 당했을 때에 그들을 구원할 사사로 입다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상처받고 버림받았던 입다였지만 이제는 이스라엘을 암몬으로부터 구원할 사사로 세워졌습니다.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삿 11:11).
3. 입다의 외교력
입다는 이스라엘의 장관이 된 후에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들이 이스라엘을 치려 온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암몬 자손은 입다의 사자에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자신들의 땅을 취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입다는 이스라엘이 모암과 암몬 자손의 땅을 취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에돔이나 모압 땅을 둘러 행했으나, 아모리 왕인 시혼과 반산 왕 옥이 나와서 싸움을 했기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승리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모리 사람의 온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 그리고 요단까지 얻게 하심으로 지금까지 삼백년 간 거주했다고 했습니다. 입다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좇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하냐.”(삿 11:23). 그리고 암몬을 향하여 암몬의 신인 그모스가 자신들에게 그 땅을 얻게 하면 그들이 얻지 않겠느냐고 하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얻어 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헤스본과 같은 아말렉이 거주하던 땅을 삼백 년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그 땅을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입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를 판결하실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바르지 않았다면 전쟁에서 질 것이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뻐하시면 암몬을 향하여 승리를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선언이었습니다.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삿 11:27).
3. 입다의 실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하여 입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셨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삿 11:29).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한 것은 하나님께서 입다를 사사로 세우시고 그에게 능력을 부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입다가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을 받은 후에 전쟁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어리석은 서원을 하게 됩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 11:30-31). 입다는 하나님 앞에서 서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사로 세우시고 그에게 그의 신을 부으셨기에, 그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얻고자 불필요한 서원을 한 것입니다.
입다는 이렇게 서원합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 11:30-31). 그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자신의 집에서 나와 자신을 영접하는 자를 하님께 번제로 드린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신 제사를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입다는 이스라엘의 사사였지만 길르앗 지역에서 이방인들이 드리는 인신 제사를 모방하여 하나님께 충성스러움을 보일려고 했던 것입니다. 암몬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인 몰렉신에게 아기들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입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암몬 자손과 싸워 이기고, 암몬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의 무남 독녀 딸이 입다를 영접하러 춤추며 나오고 있었습니다.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 독녀라.”(삿 11:34). 그러자 입다는 자기 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괴로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슬프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삿 11:35).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한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입다의 딸은 아버지를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었기에 그 말대로 자신에게 행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입다를 위하여 암몬 자손을 물리치셨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두 달만 허락하여 친구들과 산에 올라가 자신이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는 시간을 갖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두 달만에 돌아오자 입다는 딸을 번제로 드리고, 후에 이스라엘 여자들은 해마다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였습니다.
입다의 어리석은 서원으로 인하여 승리의 기쁨은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슬픔의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서원을 드렸지만, 자신의 서원을 끝까지 지키려는 무모함에 대하여 성경은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길르앗은 암몬이나 모압과 가까운 지역이었기에 입다는 이방인들의 풍속을 따라서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다는 서원을 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섬기는 사사로 세워졌지만, 하나님의 말씀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사였습니다. 그의 영적 무지로 인하여 그의 딸이 죄 없이 죽어야 했고 이스라엘에도 큰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을 바르게 서지 않으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가 있고 하나님 앞에서도 바른 모습으로 섬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스스로 서원을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따르거나 육신을 따르면서 마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 착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행하거나 말하는 것이 주님의 뜻 가운데서 아름답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 길르앗 사람 입다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의 딸로 인하여 큰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때 입다에게 다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에브라임 지파들의 위협이었습니다. 입다는 요단 동쪽에 거하는 길르앗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에브라임은 가나안의 중심에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은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지파였기에 입다가 암몬과 전쟁할 때에 자신들을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하여 불만을 표했습니다. 그들의 불만은 입다의 집을 불살르겠다는 의지로 나타났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삿 12:1).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를 위협한 것은 입다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요단 동편의 길르앗 사람이었고 더 나아가 기생이 낳은 아들이었기에 그의 신분에 대한 경멸감이 들어 있기도 했습니다.
입다는 그들에게 암몬 자손과 싸울 때에 그들을 불렀지만 그들이 전쟁에 동참하지 않다가, 이제 자신이 목숨걸고 싸워 암몬 자손을 물리쳤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왜 에브라임 사람들이 암몬 자손이 아닌, 자신과 싸우려고 하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입다는 길르앗 사람을 모아 에브라임 사람과 싸우기로 작정했습니다. 특히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과 싸우려고 했던 이유는 에브라임 사람의 말이 입다를 자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삿 12:4). 에브라임 사람은 길르앗 사람이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로 이루어졌다고 한 것입니다. 즉 길르앗 사람은 족보도 없는 방랑자와 같은 자들이라고 비방하며 없신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입다와 길르앗 사람은 에브라임을 쳐서 이겼고, 요단 나루터에서는 도망하는 자를 십볼렛이라는 발언으로 구별하여 에브라임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날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입다는 이스라엘 사사로서 육년을 다스렸고 그가 죽자 길르앗 한 성에 장사되었습니다.
5. 사사 입다의 연약함
입다는 강한 용사로서 전쟁에 뛰어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생의 아들이었기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열등한 배경으로 성장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가족을 떠나 불량배들과 어울리며 지내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입다가 비록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워졌지만, 그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불필요한 서원을 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딸을 번제로 드리는 실수와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는 같은 이스라엘 자손에게도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를 당하자 에브라임 사람을 쳐서 사만 이천 명이나 죽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명하신 전쟁이 아니라, 그들간의 갈등으로 인한 육신의 싸움이었습니다. 입다는 어린 시절부터 거절감에 대한 상처가 있었기에 그는 자신을 거절하는 에브라임 사람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내면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에 대한 감사보다도 더욱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가 사로잡고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입다는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전당에 올라간 인물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는 연약함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아우르며 이끌어야 할 사사가 에브라임 지파와 전쟁하는 일은 영적인 지도자로서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입다와 같은 연약함이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는 사랑하는 누군가로부터 거절당한 상처에서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그로 인하여 대인 관계에서 자주 실패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분히 전하지 못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거하기 보다 무엇인가 자신의 힘으로 이루려는 야망으로 올바른 판단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거저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어떠한 행위가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오는 통로가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수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입다는 자신의 서원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 하다가 도리어 사랑하는 딸을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셔서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더욱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삿 11:1-2).
이스라엘 자손은 사사 돌라와 야일이 죽은 후에 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삿 10:6). 이스라엘 자손은 돌라와 야일이 사사로 다스리는 45년 동안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하나님을 떠나 주위 나라의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1.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그들이 섬겼던 우상들은 가나안의 주신인 바알과 아스다롯, 그리고 아람과 시돈의 신들과 동쪽의 모압과 암몬 자손의 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두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든가 우상을 섬기든가의 갈등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떠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블레셋 사람과 암몬 자손의 손에서 그들이 고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방인의 우상을 숭배함으로 이들 나라로부터 억압을 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고통에 대하여 사사기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해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니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십팔 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고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삿 10:8-9). 이스라엘 자손은 암몬 자손에 의하여 18년 간 학대를 동하였고, 암몬 자손은 요단을 건너와 유대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자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찾아온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기므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삿 10:10).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원의 은혜를 구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반복되는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며 더 이상 구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들을 구원하셨으나, 이제는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시돈과 아말렉, 그리고 마온 사람들이 압제할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안이 찾아오면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기에 다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으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삿 10:12-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자신들이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그들을 구원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삿 10:14).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강팎하게 하면서 어려움 속에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 10:26-2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다시 죄를 범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징계하시겠다는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거절하시자,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들을 암몬 자손으로부터 건져주시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제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삿 10:1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회개하고 돌아오자 다시 그들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2. 구원자를 찾음
암몬 자손이 길르앗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자손도 미스바에 진을 치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자손은 “...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삿 10:18)라고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을 대표해서 암몬 자손과 싸우러 가는 자가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간의 전쟁은 입다가 사사로 등장하게 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입다에 대하여 사사기는 큰 용사였다고 했습니다.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삿 11:1-2). 길르앗 사람이었던 입다는 큰 용사였지만 그는 기생이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다른 아들들과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길리앗의 아들들이 입다가 아버지의 기업을 잊지 못하게 하려고 집에서 쫓아낸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입다는 형제를 피하여 돕이라는 땅에 거하며 부랑자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삿 11:3). 입다는 거친 환경에서 강하게 성장했던 것입니다.
마침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만나러 돕 땅에 가서 자신들을 위하여 장관이 되어 암몬과 싸우라고 했습니다. 즉 길르앗 사람들은 입다가 전쟁의 총책임자가 되어 암몬을 무찌르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삿 11:6). 입다는 기생이 낳은 아들이었기에 형제들로부터의 차별과 거절로 인하여 집을 떠나 먼 곳에서 잡류들과 지내야 하는 고통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위기를 당했을 때에 그들을 구원할 사사로 입다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상처받고 버림받았던 입다였지만 이제는 이스라엘을 암몬으로부터 구원할 사사로 세워졌습니다.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삿 11:11).
3. 입다의 외교력
입다는 이스라엘의 장관이 된 후에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들이 이스라엘을 치려 온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암몬 자손은 입다의 사자에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자신들의 땅을 취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입다는 이스라엘이 모암과 암몬 자손의 땅을 취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에돔이나 모압 땅을 둘러 행했으나, 아모리 왕인 시혼과 반산 왕 옥이 나와서 싸움을 했기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승리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모리 사람의 온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 그리고 요단까지 얻게 하심으로 지금까지 삼백년 간 거주했다고 했습니다. 입다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좇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하냐.”(삿 11:23). 그리고 암몬을 향하여 암몬의 신인 그모스가 자신들에게 그 땅을 얻게 하면 그들이 얻지 않겠느냐고 하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얻어 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헤스본과 같은 아말렉이 거주하던 땅을 삼백 년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와서 그 땅을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입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를 판결하실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바르지 않았다면 전쟁에서 질 것이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뻐하시면 암몬을 향하여 승리를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선언이었습니다.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나.”(삿 11:27).
3. 입다의 실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하여 입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셨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삿 11:29).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한 것은 하나님께서 입다를 사사로 세우시고 그에게 능력을 부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입다가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을 받은 후에 전쟁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어리석은 서원을 하게 됩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 11:30-31). 입다는 하나님 앞에서 서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사로 세우시고 그에게 그의 신을 부으셨기에, 그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얻고자 불필요한 서원을 한 것입니다.
입다는 이렇게 서원합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삿 11:30-31). 그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 자신의 집에서 나와 자신을 영접하는 자를 하님께 번제로 드린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신 제사를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입다는 이스라엘의 사사였지만 길르앗 지역에서 이방인들이 드리는 인신 제사를 모방하여 하나님께 충성스러움을 보일려고 했던 것입니다. 암몬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인 몰렉신에게 아기들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입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암몬 자손과 싸워 이기고, 암몬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의 무남 독녀 딸이 입다를 영접하러 춤추며 나오고 있었습니다.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 독녀라.”(삿 11:34). 그러자 입다는 자기 딸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괴로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슬프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삿 11:35).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한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입다의 딸은 아버지를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었기에 그 말대로 자신에게 행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입다를 위하여 암몬 자손을 물리치셨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두 달만 허락하여 친구들과 산에 올라가 자신이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는 시간을 갖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두 달만에 돌아오자 입다는 딸을 번제로 드리고, 후에 이스라엘 여자들은 해마다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였습니다.
입다의 어리석은 서원으로 인하여 승리의 기쁨은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슬픔의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서원을 드렸지만, 자신의 서원을 끝까지 지키려는 무모함에 대하여 성경은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적어도 길르앗은 암몬이나 모압과 가까운 지역이었기에 입다는 이방인들의 풍속을 따라서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다는 서원을 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섬기는 사사로 세워졌지만, 하나님의 말씀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사였습니다. 그의 영적 무지로 인하여 그의 딸이 죄 없이 죽어야 했고 이스라엘에도 큰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을 바르게 서지 않으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가 있고 하나님 앞에서도 바른 모습으로 섬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스스로 서원을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따르거나 육신을 따르면서 마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 착각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행하거나 말하는 것이 주님의 뜻 가운데서 아름답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 길르앗 사람 입다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의 딸로 인하여 큰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때 입다에게 다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에브라임 지파들의 위협이었습니다. 입다는 요단 동쪽에 거하는 길르앗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에브라임은 가나안의 중심에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은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지파였기에 입다가 암몬과 전쟁할 때에 자신들을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하여 불만을 표했습니다. 그들의 불만은 입다의 집을 불살르겠다는 의지로 나타났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삿 12:1).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를 위협한 것은 입다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요단 동편의 길르앗 사람이었고 더 나아가 기생이 낳은 아들이었기에 그의 신분에 대한 경멸감이 들어 있기도 했습니다.
입다는 그들에게 암몬 자손과 싸울 때에 그들을 불렀지만 그들이 전쟁에 동참하지 않다가, 이제 자신이 목숨걸고 싸워 암몬 자손을 물리쳤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왜 에브라임 사람들이 암몬 자손이 아닌, 자신과 싸우려고 하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입다는 길르앗 사람을 모아 에브라임 사람과 싸우기로 작정했습니다. 특히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과 싸우려고 했던 이유는 에브라임 사람의 말이 입다를 자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삿 12:4). 에브라임 사람은 길르앗 사람이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로 이루어졌다고 한 것입니다. 즉 길르앗 사람은 족보도 없는 방랑자와 같은 자들이라고 비방하며 없신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입다와 길르앗 사람은 에브라임을 쳐서 이겼고, 요단 나루터에서는 도망하는 자를 십볼렛이라는 발언으로 구별하여 에브라임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날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입다는 이스라엘 사사로서 육년을 다스렸고 그가 죽자 길르앗 한 성에 장사되었습니다.
5. 사사 입다의 연약함
입다는 강한 용사로서 전쟁에 뛰어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생의 아들이었기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열등한 배경으로 성장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가족을 떠나 불량배들과 어울리며 지내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입다가 비록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워졌지만, 그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불필요한 서원을 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딸을 번제로 드리는 실수와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는 같은 이스라엘 자손에게도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를 당하자 에브라임 사람을 쳐서 사만 이천 명이나 죽이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명하신 전쟁이 아니라, 그들간의 갈등으로 인한 육신의 싸움이었습니다. 입다는 어린 시절부터 거절감에 대한 상처가 있었기에 그는 자신을 거절하는 에브라임 사람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내면은 하나님이 주신 승리에 대한 감사보다도 더욱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가 사로잡고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입다는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전당에 올라간 인물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는 연약함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아우르며 이끌어야 할 사사가 에브라임 지파와 전쟁하는 일은 영적인 지도자로서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입다와 같은 연약함이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는 사랑하는 누군가로부터 거절당한 상처에서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그로 인하여 대인 관계에서 자주 실패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분히 전하지 못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거하기 보다 무엇인가 자신의 힘으로 이루려는 야망으로 올바른 판단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거저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어떠한 행위가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오는 통로가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수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입다는 자신의 서원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려 하다가 도리어 사랑하는 딸을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며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셔서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더욱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