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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타협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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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213회 작성일 23-08-1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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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타협하지 말라 (열상 9: 1-9)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가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열상 9: 9)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치명적인 유혹은 타협입니다.  타협은 지뢰와 같습니다.  지뢰는 눈으로 식별이 되지 않지만 위험한 독과 같습니다.  지뢰는 위장되어 있어서, 방심하게 되면 지뢰를 밟게 됩니다.  지뢰를 밟는 순간 큰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수년 전에 한 시민이 서해안의 해안에 놀러 갔다가, 떠내려 온 지뢰를 밟아 다리가 절단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순간 지뢰를 밟는 순간 신체의 일부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생명까지 잃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찾아오는 지뢰와 같은 것이 타협의 유혹인 것입니다.  타협이라고 하는 것은 신념과 믿음을 세상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타협하게 된다면, 우리는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정, 인생, 기쁨과 평안 등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솔로몬의 생애를 보게 됩니다.  그는 다윗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축복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 열왕보다 큰지라 천하가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 얼굴을 보기 원하여.” (열상 10: 23-24).  솔로몬은 왕은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어떤 왕보다도 큰 왕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로 그에게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열상 9: 1-9).  하나는 순종의 길과 다른 하나는 타협의 길이었습니다.  솔로몬이 다윗과 같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우상을 숭배하고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열왕기 상 11장 1-11 절은 솔로몬이 자신의 신념과 믿음을 버리고 이방여인을 사랑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같이 좇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열상 11: 6-8).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에서 감사하지 못하고,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성경은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같이 좇지 아니하고.” (열상 11: 6)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타협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타협함으로 자신의 일생과 후손에 큰 불행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의 이후로 왕국은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본받아 여러 왕들은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고 이방 나라의 여인들과 결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로 나라는 멸망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의 시작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바로 솔로몬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타협하였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더 많은 부를 원했기에 타협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더 많은 여인을 얻기 위하여 타협하였고, 그는 더 강대한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타협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가장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고, 신앙 간증과 영적 가문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타협은 우리의 신앙뿐만 아니라, 가정의 축복까지도 앗아가는 독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이나 교리적인 타협이 이루어지게 될 때에, 우리는 이것인 타락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모임에 갔을 때에, 그 모임에는 술과 향략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모임에서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술을 권하고, 노래를 부르도록 유혹을 할 것입니다.  이 첫 단계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중학교 3 학년 때에 토요일에 친구들이 파티가 있음을 알리며 저를 초청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토요일 저녁에는 교회에서 학생부 예배가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에 친구들의 모임에 불참하고, 교회의 학생부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만일 제가 예배를 포기하고 친구들과 타협을 하였다면, 그 후로 어떤 길로 갔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날 저녁에 친구들은 술파티를 즐겼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유혹은 크게 시작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향하여 ‘찬구여,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에서 마음껏 즐기자.’ 라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물질과 명예, 그리고, 쾌락을 보여 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할 것입니다.  “네가 한 번만 눈을 감으면, 이와 같은 것이 너의 것이 될 것이다.”  “네가 한 번만 주일에 일을 하면, 네가 한 번만 뇌물을 주게 되면,  네가 한 번만 술을 마시면, 네가 한 번만 외도하면. 등.”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로 세상을 이겨 나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라고 하는 것의 이유는, 이것이 우리를 무너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 자신을 지켜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타협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과 타협하고 타락하게 만들까요?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이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거절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타협에 유혹을 받는 이유는 인정받고 싶은 강한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사업이나 직장의 업무를 통하여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모습으로 인정받으려고 하는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으로 하여금 아말렉의 모든 소유와 남녀와 소아와 모든 가축을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과 기름진 것과 아각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라고 합니다.  사울이 책망을 받자 이렇게 변명합니다.  “...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삼상 15: 24).  그는 백성을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백성들의 거절이 두려웠고, 자신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사울왕을 왕으로 삼은 것은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축복하셨고 세우셨기에, 사울왕은 하나님을 선택하고 철저하게 순종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백성과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타협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과 하나님을 모두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비방하고 핍박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갈등의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타협의 유혹을 받는 것은 갈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직장의 회식에서 믿음이 있기에 술과 타협하지 않을 때에 직장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한다면, 다음날 더 좋은 분위기와 공감대를 가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메시지가 있기에 함께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진리가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정에서 우리의 믿음으로 인하여 부모님과의 갈등, 배우자와의 갈등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저녁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저녁 시간을 비워야 합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직장 상사와의 갈등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이러한 갈등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실 때에,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인들로부터 수많은 핍박을 당하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달려가신 것입니다.

  셋째, 재정의 궁급함입니다.

  우리가 재정적인 유혹을 받거나 압박을 받게 되면 쉽게 세상과 타협하게 됩니다.  우리가 재정적인 유혹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이 주신 믿음과 신념을 타협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좋은 조건이 있다할지라도 퇴폐적인 사업으로 영리를 얻으면 안 되는 것이며, 자신의 직위를 가지고 뇌물을 주거나 받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일날에는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하는 날로서 성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물질의 궁핍함이 찾아오면, 믿음과 예배를 타협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수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에서는 당장 배가 고팠습니다.  그는 사냥을 하고 돌아왔으나, 그에게 음식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야곱이 팥죽을 주면서 장자권을 바꾸자고 합니다.  그때 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창 25: 32).  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장자권을 먹을 음식과 타협을 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 12: 1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지키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타협의 결과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념을 세상에서 타협했을 때에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은 큰 결과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결과는 씻을 수 없는 큰 절망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의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타협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복음을 은혜에서 행위로 바꾼 것입니다.  카톨릭이 시작되면서 그들은 정치와 교회가 연합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정치적인 힘을 빌어서 하나님의 법을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침례에서 세례로 의식을 바꾸기 시작하였고, 심지어는 아기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저들에게 구원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타협은 결국에는 마리아 숭배와 면죄부 판매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리적인 타협은 결국은 구원의 교리를 십자가의 복음에서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잘못된 교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의 심판에 이르는 결과를 낳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말씀을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회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개인의 삶에도 세상과 죄와 타협하게 되면 분명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타협은 죄입니다.  불완전한 순종은 불순종이듯이, 타협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의 믿음과 신념을 지켜나갈 것인가?  세상과 타협하며 하루하루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고후 6: 14, 17).  우리가 하나님과 충만한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삶의 영역에서 온전한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여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고 어두움과 사귐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깊은 교제를 나눌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주시는 은혜가 더욱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쾌락보다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말씀이 더욱 풍성하며 소중함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타협은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타협을 통하여 육신적인 유익을 얻으려고 할 때에, 이것은 단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게 됩니다.  타협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타협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과 신념, 그리고 가치를 희생시키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된 타협이 그 다음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며, 그 다음에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후궁들이 천 명이나 되었지만,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의 왕비들은 왕의 마음을 바꾸어, 그로 하여금 그들의 이방신을 이스라엘로 가져오게 하였고 이스라엘로 큰 죄를 범하게 하였습니다.  죄는 더 큰 죄를 낳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통하여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를 핍박하지만 한 편으로는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이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하는 빛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외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나 교육이 세상을 거룩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의 삶과 메시지가 이 세상을 밝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세상과 타협하게 된다면, 이 세상은 우리에게 어떠한 기대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타협하지 않으면, 세상은 우리가 독선적이고 편협한 사람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고 방탕하게 살아가려고 하면,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타락한 교회와 성도라고 비웃을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어떠한 칭찬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믿음의 기준을 지키며 살아갈 때 언젠가는 우리를 이해하고 더욱 존경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타협을 극복하는 승리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어떻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준을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과 교리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실패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서 타협의 길을 갈 때 능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믿음으로 전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루를 말씀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날마다 말씀으로 하루 하루를 시작하며 말씀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아침마다 묵상의 시간을 통하여 말씀을 묵상한다면, 그날 찾아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며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순간순간 주시는 인도함을 통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때 우리는 더욱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순간순간 생각과 마음속에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갈 때, 우리는 더욱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