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시편 9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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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412회 작성일 24-04-10 11:48본문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시편 91편)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 91:1)
시편 91편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는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91편은 20세기 이후에 ‘참호의 시’ 즉 trench psalm 이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대포라든지 기관총같은 대량 살상 무기가 등장하자 프랑스군은 참호를 파고 오랫동안 독일군과 대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 병사들은 철조망에 걸려 죽임당하고 독가스에 노출당했습니다. 게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지뢰 그리고 저격병에 의한 조준사격으로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위험한 상황에서 프랑스 군인들이 위로를 받기 위해 낭송했던 시편이 91편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병사들이 위로를 받기 위해서 시편 91 편을 낭독했던 이유는, 시편 91편은 우리에게 강력한 피난처로서의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시련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91편을 통해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무엇인가요?
1.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함께 하십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 91:1)
지존자의 의미는 ‘가장 높은’ 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이 숭고하고 탁월하신 분인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악한 음모나 대적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으시는 가장 높으시며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의 지성소에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임재 가운데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 아래에서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능자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새가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듯이 하나님의 손길이 그의 백성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함으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확신으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시편 기자와 같은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시 91:2). 우리의 삶에서 위험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피난처를 찾게 됩니다. 이때 우리의 피난처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새들은 수풀로 찾아 숨고, 여우는 굴 속으로 숨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숨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 사역을 마친 디엘 무디가 1892년에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타게 됩니다. 출항한지 사흘쯤 지나 배가 고장을 일으켜 멈춰 서고 말았다고 합니다. 배 안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선원들과 승객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가라앉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근에 구조선이 있는지 조차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불안한 이틀을 보낸 후에 무디는 집회를 열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승객 전원이 불안한 마음에 예배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무디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 91:1) 라는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일기를 기록했습니다. “내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기도 중에 평안이 찾아왔고, 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런 고백을 주셨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무디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배가 구조가 되었습니다.
무디에게 확신을 준 시편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으로 그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 곧 ‘그분의 날개 아래’ 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그 분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은 삶의 풍랑을 헤치며 달려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의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으로 도우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시 91:9).
하나님은 우리를 그 분의 그늘 아래 거하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를 시편 기자는 사냥군의 올무와 극한 질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 91:3). 사냥꾼의 올무는 새를 잡기 위해서 사냥꾼이 설치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악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협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로부터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극한 염병에서도 건지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비유로 자신의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는 이미지로 우리를 지키심을 보여주십니다.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 91:3). 하나님은 그 분의 진실함이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의 진실함은 그 분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우리의 삶을 지키는 것이 그 분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그 분의 보호아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다면 세상이 주는 재앙이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 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시 91:5-7).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분의 보호하심을 의지하는 자는 모든 재앙이 그에게 미치지 못할 것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위기 속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글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행기 안에서 돌아다니는 꼬마 한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여섯 살 정도 된 여자 아이인데 아빠는 미국 사람이고 엄마는 한국 사람인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 여자 아이는 활달하게 돌아다니며 춤을 추기도 하면서 기내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엄마의 품으로 뛰어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우리의 삶에서 고통이 찾아오면 가야 할 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만날 때 달려갈 수 있는 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달려갈 수 있는 품은 바로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밤에 놀라는 일이나 낮에 날아가는 화살과 같은 위협과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에 저의 가장 큰 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위로자가 되시고 반석이 되셔서 저를 지켜주심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저에게 어려움을 가져다 주지만, 주님은 저의 피난처가 되셔서 큰 힘이 되시며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주님의 피난처 되심을 찬양합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9-10).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지존자이신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이는 하나님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는 시편 기자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는 마치 시편 84편에서 고백하는 시와 맥을 같이 합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10-12).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전에서 거하는 문지기로 있는 것을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은 그 분을 경외하는 자에게 해와 방패가 되시며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부어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화가 우리에게 미치기 전에 사자들을 명하사 우리의 길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시 91:1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존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멸시치 않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저가 내가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가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 91:15).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심으로 환난때에 건지심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며 응답하시나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심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시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라.” (시 91:14). 하나님은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을 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계명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분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예배하며 그 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존귀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을 피난처로 고백하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인 것입니다.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삶에서도 주님을 철저하게 의존함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며, 하나님께서는 환난 날에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건지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육상종목 3관왕에 오른 ‘월마 루돌프’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4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서 걸을 수 없게 되었지만 부모님은 월마를 위해서 기도밖에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은 어떻게 되든 좋으니 월마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3년 만에 월마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걸을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낀 월마는 자신은 걸을 수 없다며 자포자기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월마가 소아마비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다면 일어서는 것뿐만 아니라 뛸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월마에게 믿음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평생 걸을 수 없으니 다시 한 번만 해보자고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월마는 어머니의 확신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신도 걷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4년이 지난 후 비록 절뚝거렸지만 걸어서 등교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다시 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어느덧 고등학교가 되었을 때 그녀는 전교에서 가장 빠른 육상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의심치 않았고 그런 끝없는 시도가 올림픽 3관왕을 이루었습니다. 그녀가 올림픽 결승전의 출발선에 섰을 때 마음속으로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월마, 한 번 더 뛰어봐, 넌 할 수 있어.” 월마와 그녀의 어머니는 기도로 자신의 어려움을 위해서 간구했고, 믿음의 기도는 그녀의 살에서 큰 기적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하도록 하는 기적의 원동력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존하는 자에게 장수의 축복과 더불어 구원의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며 여러 모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누리며 감사하는 귀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 91:1)
시편 91편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는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91편은 20세기 이후에 ‘참호의 시’ 즉 trench psalm 이라고 불리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대포라든지 기관총같은 대량 살상 무기가 등장하자 프랑스군은 참호를 파고 오랫동안 독일군과 대치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프랑스 병사들은 철조망에 걸려 죽임당하고 독가스에 노출당했습니다. 게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지뢰 그리고 저격병에 의한 조준사격으로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위험한 상황에서 프랑스 군인들이 위로를 받기 위해 낭송했던 시편이 91편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병사들이 위로를 받기 위해서 시편 91 편을 낭독했던 이유는, 시편 91편은 우리에게 강력한 피난처로서의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찾아오는 수많은 시련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91편을 통해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무엇인가요?
1.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함께 하십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 91:1)
지존자의 의미는 ‘가장 높은’ 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이 숭고하고 탁월하신 분인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악한 음모나 대적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으시는 가장 높으시며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의 지성소에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임재 가운데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 아래에서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능자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는 것으로, 새가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듯이 하나님의 손길이 그의 백성을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함으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확신으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시편 기자와 같은 고백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시 91:2). 우리의 삶에서 위험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피난처를 찾게 됩니다. 이때 우리의 피난처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새들은 수풀로 찾아 숨고, 여우는 굴 속으로 숨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기에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숨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 사역을 마친 디엘 무디가 1892년에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타게 됩니다. 출항한지 사흘쯤 지나 배가 고장을 일으켜 멈춰 서고 말았다고 합니다. 배 안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선원들과 승객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가라앉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근에 구조선이 있는지 조차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불안한 이틀을 보낸 후에 무디는 집회를 열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승객 전원이 불안한 마음에 예배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무디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 91:1) 라는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일기를 기록했습니다. “내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기도 중에 평안이 찾아왔고, 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런 고백을 주셨다.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무디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배가 구조가 되었습니다.
무디에게 확신을 준 시편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으로 그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 곧 ‘그분의 날개 아래’ 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그 분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은 삶의 풍랑을 헤치며 달려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의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으로 도우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시 91:9).
하나님은 우리를 그 분의 그늘 아래 거하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를 시편 기자는 사냥군의 올무와 극한 질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 91:3). 사냥꾼의 올무는 새를 잡기 위해서 사냥꾼이 설치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악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협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로부터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극한 염병에서도 건지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비유로 자신의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는 이미지로 우리를 지키심을 보여주십니다.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 91:3). 하나님은 그 분의 진실함이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분의 진실함은 그 분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우리의 삶을 지키는 것이 그 분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그 분의 보호아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다면 세상이 주는 재앙이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 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시 91:5-7).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분의 보호하심을 의지하는 자는 모든 재앙이 그에게 미치지 못할 것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위기 속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글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행기 안에서 돌아다니는 꼬마 한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여섯 살 정도 된 여자 아이인데 아빠는 미국 사람이고 엄마는 한국 사람인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 여자 아이는 활달하게 돌아다니며 춤을 추기도 하면서 기내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엄마의 품으로 뛰어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우리의 삶에서 고통이 찾아오면 가야 할 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만날 때 달려갈 수 있는 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달려갈 수 있는 품은 바로 우리의 목자 되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밤에 놀라는 일이나 낮에 날아가는 화살과 같은 위협과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에 저의 가장 큰 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위로자가 되시고 반석이 되셔서 저를 지켜주심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저에게 어려움을 가져다 주지만, 주님은 저의 피난처가 되셔서 큰 힘이 되시며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주님의 피난처 되심을 찬양합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9-10).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지존자이신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이는 하나님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는 시편 기자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는 마치 시편 84편에서 고백하는 시와 맥을 같이 합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10-12).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전에서 거하는 문지기로 있는 것을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은 그 분을 경외하는 자에게 해와 방패가 되시며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부어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화가 우리에게 미치기 전에 사자들을 명하사 우리의 길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시 91:14).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존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멸시치 않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저가 내가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가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 91:15).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심으로 환난때에 건지심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며 응답하시나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심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시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라.” (시 91:14). 하나님은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을 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첫 번째 계명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분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예배하며 그 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존귀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을 피난처로 고백하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인 것입니다.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삶에서도 주님을 철저하게 의존함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며, 하나님께서는 환난 날에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건지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육상종목 3관왕에 오른 ‘월마 루돌프’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4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서 걸을 수 없게 되었지만 부모님은 월마를 위해서 기도밖에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은 어떻게 되든 좋으니 월마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3년 만에 월마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걸을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낀 월마는 자신은 걸을 수 없다며 자포자기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월마가 소아마비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다면 일어서는 것뿐만 아니라 뛸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월마에게 믿음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평생 걸을 수 없으니 다시 한 번만 해보자고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월마는 어머니의 확신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신도 걷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4년이 지난 후 비록 절뚝거렸지만 걸어서 등교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다시 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어느덧 고등학교가 되었을 때 그녀는 전교에서 가장 빠른 육상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의심치 않았고 그런 끝없는 시도가 올림픽 3관왕을 이루었습니다. 그녀가 올림픽 결승전의 출발선에 섰을 때 마음속으로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월마, 한 번 더 뛰어봐, 넌 할 수 있어.” 월마와 그녀의 어머니는 기도로 자신의 어려움을 위해서 간구했고, 믿음의 기도는 그녀의 살에서 큰 기적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하도록 하는 기적의 원동력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존하는 자에게 장수의 축복과 더불어 구원의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며 여러 모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누리며 감사하는 귀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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