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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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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366회 작성일 24-08-2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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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바라보자 (히 12:1-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낮으셨느니라.” (히 12:2).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믿음의 눈이며, 다른 하나는 환경과 자신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육신의 눈입니다. 

베드로는 두 가지의 모습을 물 위에서 체험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대.” (마 14: 28).  물 위에서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보며 걸어 주님께로 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베드로는 시선을 주님으로 벗어나 바람을 보고 파도를 보게 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바다에 빠지게 됩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대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담대하여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시선을 주님으로부터 바람과 파도를 보게 되자 그는 물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라고 책망하십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인생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의 삶을 경주할 때가 있지만, 때로는 주위 환경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낙심하며 좌절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는 인생의 삶을 달려가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송의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 보았나이다.” (시 63:2).  다윗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새 힘을 얻었으며, 새 힘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기는 삶을 살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을 바라볼 때에 새로운 힘과 능력을 얻어 승리하는 소중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에 어떠한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요?

1. 예수님은 우리에게 견고한 믿음을 심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우리는 우리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믿음의 경주를 달려왔습니다.  마라톤과 같이 인내하며 하루하루를 달려온 것입니다.  우리의 경주의 종착점은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달려가야 하는 경주입니다. 

우리가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향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이는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주이시며,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항해하는 선원이 선장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에, 행해가 강한 폭풍을 만나고 먼 대양에서 목마름과 외로움을 이기며 지속적으로 항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사들이 장군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에, 그 전쟁을 힘있게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게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을 향한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며 믿음으로 전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을 향한 믿음이 인생의 동기가 된다면, 우리는 힘써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달려갈 수 있을 것입니다.

  1)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 10:10).

우리의 주님을 향한 믿음은 그 분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부활하신 대속의 죽음을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단번에 재물로 드리셨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의 시작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시작됩니다.  바울이 믿음의 경주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하면서입니다.  그는 전에 예수님을 모욕하고 믿는 자들을 업신여기고 핍박하였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깨달으면서 삶이 변화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도 바울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도 바울의 구원자가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영적 생활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변화받아 새로운 사람이 된 이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후에 믿음의 경주를 힘껏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기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믿음의 경주를 달려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9-11).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하여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 분의 겸손과 낮아짐의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의 희생으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하신 것입니다.

주(Lord) 의 뜻은 절대적인 최고의 권위자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가족을 다스리는 아버지를 의미하며, 노예에 대하여는 다스리는 주인을 의미하며, 군대에서는 최고 권위자인 사령관을 의미합니다.  로마제국에서는 황제에 대한 호칭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최고의 권위자이시며, 주인이시고, 사령관이며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 모든 순종으로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분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다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6-17).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이유는, 그 분이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5).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실수 있는 이유는, 그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성공적인 비결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영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King of Kings)이요 만주의 주(Lord of Lords)라 하였더라.” (계 19:16).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왕이시며, 주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되시며 다스리시는 분이 주님이신 것입니다.   

모든 운동선수는 코치가 있습니다.  그들은 코치의 지시대로 따르며 경기에 임하게 됩니다.  모든 군인들에게는 장군이 있어서, 그들의 명령에 다르게 됩니다.  모든 학생들은 선생이 있어서 그들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명되시며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주는 멀고 험한 길입니다.  도처에 사탄의 유혹과 세상의 시련이 우리 앞을 막고 있습니다.  이러한 길에서 우리가 지속적인 경주를 하는 비결은 주인되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그분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5).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경주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혼자 경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주님은 하늘로 승천하셔서, 지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중보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살아서 우리의 힘들고 어려움 점을 이해하시며 기도로 돕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4).  예수님께서는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우리를 돕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였기에, 골리앗을 향하여 믿음으로 도전하며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갈렙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였기에, 믿음으로 산을 정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주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기에,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달려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상황이 너무나 절망적일지라도, 우리를 도우시며 함께 하시는 주님을 향한 믿음에서 굳건하여 날마다 전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주님을 바라봄으로 인하여 견고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바라봄으로 인하여 주님이 가르쳐주시는 인생의 목적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시며, 십자가를 지시면서 찾아왔던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면 십자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치와 고통을 참으셨을까요?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 분의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되었으며, 그 분의 말씀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고, 그 분의 말씀으로 문둥병자가 나으며, 그 분의 말씀으로 풍랑이 잠잠해지는 기적들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면 천사들이 동원되어 로마 군대를 무너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는가요?  우리는 두 가지의 이유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 17:4).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함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 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 십자가를 넘었을 때에 찾아오는 즐거움을 생각하셨습니다.  그 즐거움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에서도 십자가의 무거운 짐을 지기도 합니다.  주님을 섬기면서 무거운 짐을 지면서 주님을 따를 때에,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발견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고 이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7).  우리도 인생에서 환난과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미얀마의 선교사였던 아도니람 저드슨은 1813년에 랑군에 도착했습니다.  그 후 7년 만에 첫 회심자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를 미얀마어로 옮기는 데는 20년이 걸렸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극심한 십자가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생전에 두 번 아내를 잃었고 여섯 아이를 잃었습니다.  영국과 미얀마 전쟁 기간에는 스파이로 의심받아 2년간이나 쇠사슬과 오물을 견디며 감옥에서 보내었습니다.  그는 37 년간의 선교 사역을 하면서 미국의 집에는 단 한 번 왔다고 합니다.  그가 미얀마 땅에 도착했을 때는 자신의 아내와 첫 예배를 드렸지만, 1850년인 37 년 후에는 63 개의 교회에 구원받은 7천여 명의 미얀마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3백만 이상의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드슨은 십자가를 지고 미얀마에 자신의 생애를 드렸습니다.  그의 사역의 헌신으로 수천명이 구원받고 교회가 세워짐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십자가의 시련과 고난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잃은 자를 모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견디며 죽음에서 부활하게 될 때, 잃은 영혼들을 모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축복을 보셨습니다.  이것이 주님께는 큰 기쁨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주를 믿는 자는 구원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이는 주님께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이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 영원한 천국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계 5:9-10).  예수님께서는 보혈로 우리를 사서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 인생의 소중한 가치와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극심한 고난을 견디신 이유는, 영혼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소중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폴리캅이 예수님을 향한 신앙을 고백함으로 로마 군사들에 의하여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화형을 죽음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백함으로 인하여, 폴리캅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간다 할지라도, 항상 주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영혼을 구령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가치임을 믿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우리가 인내로서 경주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 12: 3).

우리의 경주는 믿음의 경주입니다.  단순히 인생에서 부유하고 유명해지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걷는 한 걸음이 믿음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경주에는 수많은 암초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암초들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며 낙심하게 합니다.  우리가 순수한 의도로 주님을 섬기지만,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나게 되면 우리의 열정과 기쁨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 암초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마음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내하시며 참으셨던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죄인들이 예수님을 거역하며 반역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인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 분은 낮아지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사람들은 예수님을 핍박하였으며 조롱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수염을 뽑았으며, 예수님의 옷을 벗기셨고 채찍질을 거침없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 심지어는 제사장으로부터 조롱과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12 제자 중의 한 명이었던 가룟 유다로부터 배신을 당하여 팔려가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인내로서 참으셨습니다.  자기에게 거역하며 반역한 사람들을 벌하지 않으시고, 참으신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인내로서 모든 것을 참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생각할 때에, 자신에게 거역하신 자를 참으신 주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 분은 사람에 대하여 인내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주님 안에서 사람에 대하여 인내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거역과 상처로 인하여 올무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피곤하며 낙심하게 됩니다.  피곤하여 낙심하게 되면 영혼을 구령하는 사역과 양들을 돌보아야 하는 사역을 포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믿음의 경주에서 이탈하게 되고 세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품고 모든 것을 이기며 지속적으로 믿음의 경주를 하게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에 대하여 인내하며 품고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사역을 포기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극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냇으며...” (고후 11:23-25).

이러한 상황에서도 사도 바울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떠한 위기에서도 주님을 바라볼 때에 희망이 생기며 열정이 다시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는 사도 바울이기에 그는 푯대를 향하여 날마다 전진할 수가 있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4).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주님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삶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삶이 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이며, 우리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분명한 목적을 발견하며,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인내로서 믿음의 경주를 경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이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