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중보기도 (요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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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776회 작성일 24-07-03 17:20본문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오늘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중보기도자의 말씀을 전하면서 예수님의 중보 기도에 대하여 함께 나눈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시며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주의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본을 보여주시기도 하셨고,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순종하기 위한 기도의 본을 보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앞으로 세워질 성도들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에 하나님께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는 장면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소중한 삶의 원리를 배울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배워야 할 영적인 삶의 원리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기도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 17: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를 하시면서 때가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때는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하는 고난과 죽음의 때를 의미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기를 간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언급하신 ‘아들의 영화’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세상이 추구하는 영화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화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임을 당하시는 것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영화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며, 아들이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4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하라고 부탁하신 일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특히 세상에 방황하는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했던 영광을 다시 회복하기를 갈망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 17:5).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후에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을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심으로 모든 무릎이 그 분 앞에 꿇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요 17:10). 주님은 구원받은 성도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간절한 소망은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이와같이 오늘 우리의 삶의 이유와 목적이 주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의 영광은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였던 캠벨 모건은 “예수님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열망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즉, 인생의 목표이자 방향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근본에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구원받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다 행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관심과 목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한 부분인지요? 우리가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사랑하는 가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세워져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재능, 더 나아가 물질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을 양육하고 큰 대가를 지불하면서 교육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고백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미래에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헌신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꾼으로 쓰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사역을 하는 이유도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꾼이 되기 위함인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시고 인도하셨듯이, 이제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도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인 것이며, 우리의 전도와 기도와 섬김의 궁극적인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임을 선포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되기를 기도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 17:11).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남아서 주님이 맡기신 지상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염려하시면서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간절한 마음은 제자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같이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 17:11). 예수님께서는 이제 아버지께로 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제자들이 염려가 되셨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핍박과 유혹들이 제자들의 삶을 위협하게 될 것이고 자치하면 교회가 이 땅에서 자취가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라고 간구하며 제자들을 지켜주시기를 간구하셨습니다. 주님도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제자들을 지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멸망의 자식인 가룟 유다만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사람들을 지키시며 보호하셨습니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 17:12).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하나님이 보전하시며 지키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남겨진 11명의 제자뿐이 아니라, 앞으로 세워질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간구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영광을 앞두고 기도하셨지만,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5)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로 주님의 몸된 교회는 지난 이천년간의 수많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시련을 이기며 보존되어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사람들을 보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훈련한 11명의 제자들이 주님의 십자가 사건 후에 흩어진다면 교회를 세우시고자 하는 주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신 이후에는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전하지 않으신다면 세상의 강력한 영향력 앞에서 제자들과 교회는 무릎을 꿇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연약한 육신의 한계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보전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제자들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하나가 되었고, 교회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을 때에 교회는 세상을 이기며 보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안에서의 하나됨은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존재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12지파로 존재했으며 그 안에서 부족을 이루며 존재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개인으로 부르시지만 열두 제자의 공동체에서 하나됨으로 성장하며 주님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부름을 받아 세상과 구별되게 됩니다.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로 모여서 함께 예배하며 성장함으로 하나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된 교회는 예배로만 세상을 이길 수 없기에, 초대교회와 같이 가정에서 모이는 소그룹 공동체로 하나가 되며 제자훈련과 같은 성경 공부를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교회가 같은 마음과 뜻을 가지고 하나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지체들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먼 외딴섬과 같이 홀로 있다면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섭리에서 떠나있는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 유혹도 더 크게 느껴지고, 시험도 더 크게 받아들임으로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나요?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서와 같이,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분열은 세상에서 무너지는 원인입니다.
우리가 교회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주님을 떠나는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교회와 하나가 되는 것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예배에 참여함으로 하나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기쁨으로 하나님을 진리와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하나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믿음의 하나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는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목장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목장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되는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됩니다. 성도의 하나됨의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14) 와 같이 목장의 공동체에서 주님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는 시간이 하나됨의 시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와 목장에서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우리는 제자훈련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훈련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배우며 성장해가는 과정입니다. 지체들과 하나가 되어 참여함으로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간절한 소망은 세상에서 보전되기 위하여 하나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마음을 합하고 지체들과 하나됨으로 주님안에서 승리하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3. 예수님은 우리가 거룩하기를 기도하십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저들이 악에 뻐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 17:15).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과 교회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제자와 교회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거룩함과 같이 거룩하기를 기도하십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6,17). 주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는 제자들이 보전되는 비결은 거룩을 지키는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는 주님을 따르며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본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은 거룩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속적인 가치가 다스리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교회는 소중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거룩을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가 거룩하다는 의미는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을 날마다 지키기 위해서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함을 얻어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거룩을 지켜야 합니다. 그 거룩을 지키며 마음과 육신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비결이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말씀은 생명의 양식인 것입니다. 생명의 양식은 우리의 새 생명을 날마다 새롭게 하며 영적인 힘을 공급하며 죄를 이기는 힘을 가져다 줍니다.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는 유혹은 세상의 가치에 동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세속화라고 부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은 교회가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세상적인 것만을 추구할 때에 세속화가 일어나고 마침내는 세상의 죄를 이길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훈련을 통해서 경건의 시간에 집중하고 성경을 배우며 양육과 훈련을 받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묵상하며 적용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은 우리가 지상사명을 감당하시기를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요 17:17).
아버지께서 세상에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주님은 사명을 감당하시고 다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이제 제자들을 훈련하심으로 세상으로 보내셨고, 지금도 보내시고 계십니다. 주님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시는 이유는 지상사명을 감당함으로 세상을 제자삼기 위해서 보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지상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현제 지국 인구의 사분의 일이 이슬람이며 그 수는 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슬람의 숫자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 일어나 복음을 전파하고 한 영혼 한 가정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세상으로 보내신 제자임을 확신하며 지상사명을 잘 감당하고자 날마다 달려가는 주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재생산의 명령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자삼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게 되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자로 삼으며 지속적인 재생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 (딤후 2:2). 바울이 디모데를 제자로 삼아 양육하게 됩니다. 이제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을 가르쳐서 리더로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충성된 사람은 제자가 되어서 또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는 사역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중보기도자의 말씀을 전하면서 예수님의 중보 기도에 대하여 함께 나눈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의 본을 보이시며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 주의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본을 보여주시기도 하셨고,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순종하기 위한 기도의 본을 보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앞으로 세워질 성도들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에 하나님께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는 장면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소중한 삶의 원리를 배울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배워야 할 영적인 삶의 원리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기도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요 17: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제자들을 위한 중보기를 하시면서 때가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때는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하는 고난과 죽음의 때를 의미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기를 간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언급하신 ‘아들의 영화’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세상이 추구하는 영화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화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임을 당하시는 것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영화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며, 아들이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4절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하라고 부탁하신 일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은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특히 세상에 방황하는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영생을 얻게 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했던 영광을 다시 회복하기를 갈망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 17:5).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후에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을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심으로 모든 무릎이 그 분 앞에 꿇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요 17:10). 주님은 구원받은 성도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간절한 소망은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이와같이 오늘 우리의 삶의 이유와 목적이 주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의 영광은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였던 캠벨 모건은 “예수님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열망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즉, 인생의 목표이자 방향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근본에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구원받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다 행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관심과 목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한 부분인지요? 우리가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사랑하는 가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세워져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재능, 더 나아가 물질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을 양육하고 큰 대가를 지불하면서 교육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고백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미래에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헌신하며 교회를 세우는 일꾼으로 쓰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사역을 하는 이유도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꾼이 되기 위함인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시고 인도하셨듯이, 이제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도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인 것이며, 우리의 전도와 기도와 섬김의 궁극적인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임을 선포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되기를 기도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 17:11).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남아서 주님이 맡기신 지상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염려하시면서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간절한 마음은 제자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과 같이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 17:11). 예수님께서는 이제 아버지께로 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제자들이 염려가 되셨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핍박과 유혹들이 제자들의 삶을 위협하게 될 것이고 자치하면 교회가 이 땅에서 자취가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라고 간구하며 제자들을 지켜주시기를 간구하셨습니다. 주님도 제자들과 함께 하면서 제자들을 지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멸망의 자식인 가룟 유다만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사람들을 지키시며 보호하셨습니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 17:12).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하나님이 보전하시며 지키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남겨진 11명의 제자뿐이 아니라, 앞으로 세워질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간구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영광을 앞두고 기도하셨지만,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5)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로 주님의 몸된 교회는 지난 이천년간의 수많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시련을 이기며 보존되어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사람들을 보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훈련한 11명의 제자들이 주님의 십자가 사건 후에 흩어진다면 교회를 세우시고자 하는 주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신 이후에는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전하지 않으신다면 세상의 강력한 영향력 앞에서 제자들과 교회는 무릎을 꿇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연약한 육신의 한계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보전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제자들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하나가 되었고, 교회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을 때에 교회는 세상을 이기며 보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안에서의 하나됨은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존재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12지파로 존재했으며 그 안에서 부족을 이루며 존재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개인으로 부르시지만 열두 제자의 공동체에서 하나됨으로 성장하며 주님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부름을 받아 세상과 구별되게 됩니다.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로 모여서 함께 예배하며 성장함으로 하나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된 교회는 예배로만 세상을 이길 수 없기에, 초대교회와 같이 가정에서 모이는 소그룹 공동체로 하나가 되며 제자훈련과 같은 성경 공부를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교회가 같은 마음과 뜻을 가지고 하나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지체들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먼 외딴섬과 같이 홀로 있다면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섭리에서 떠나있는 것입니다. 혼자 있으면 유혹도 더 크게 느껴지고, 시험도 더 크게 받아들임으로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나요?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서와 같이,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분열은 세상에서 무너지는 원인입니다.
우리가 교회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주님을 떠나는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교회와 하나가 되는 것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예배에 참여함으로 하나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기쁨으로 하나님을 진리와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하나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믿음의 하나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는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목장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목장의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되는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됩니다. 성도의 하나됨의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14) 와 같이 목장의 공동체에서 주님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는 시간이 하나됨의 시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와 목장에서 하나가 될 수 있으며, 우리는 제자훈련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훈련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배우며 성장해가는 과정입니다. 지체들과 하나가 되어 참여함으로 주님의 기쁨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간절한 소망은 세상에서 보전되기 위하여 하나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마음을 합하고 지체들과 하나됨으로 주님안에서 승리하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3. 예수님은 우리가 거룩하기를 기도하십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저들이 악에 뻐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요 17:15).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과 교회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제자와 교회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거룩함과 같이 거룩하기를 기도하십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6,17). 주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는 제자들이 보전되는 비결은 거룩을 지키는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는 주님을 따르며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본질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은 거룩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속적인 가치가 다스리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교회는 소중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거룩을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가 거룩하다는 의미는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을 날마다 지키기 위해서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함을 얻어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거룩을 지켜야 합니다. 그 거룩을 지키며 마음과 육신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비결이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말씀은 생명의 양식인 것입니다. 생명의 양식은 우리의 새 생명을 날마다 새롭게 하며 영적인 힘을 공급하며 죄를 이기는 힘을 가져다 줍니다.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는 유혹은 세상의 가치에 동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세속화라고 부릅니다. 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은 교회가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세상적인 것만을 추구할 때에 세속화가 일어나고 마침내는 세상의 죄를 이길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훈련을 통해서 경건의 시간에 집중하고 성경을 배우며 양육과 훈련을 받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묵상하며 적용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은 우리가 지상사명을 감당하시기를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요 17:17).
아버지께서 세상에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주님은 사명을 감당하시고 다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이제 제자들을 훈련하심으로 세상으로 보내셨고, 지금도 보내시고 계십니다. 주님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시는 이유는 지상사명을 감당함으로 세상을 제자삼기 위해서 보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지상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현제 지국 인구의 사분의 일이 이슬람이며 그 수는 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슬람의 숫자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 일어나 복음을 전파하고 한 영혼 한 가정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세상으로 보내신 제자임을 확신하며 지상사명을 잘 감당하고자 날마다 달려가는 주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재생산의 명령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자삼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게 되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자로 삼으며 지속적인 재생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 (딤후 2:2). 바울이 디모데를 제자로 삼아 양육하게 됩니다. 이제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을 가르쳐서 리더로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충성된 사람은 제자가 되어서 또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는 사역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