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장막이 주는 영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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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644회 작성일 24-02-07 16:55본문
다윗의 장막이 주는 영적 의미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행 15:16).
사도행전에는 아모서 9장 11-12절에 예언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신다고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으로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장막은 하나님을 처음으로 예배했던 거룩한 장소였으며, 솔로몬의 성전은 웅장한 건물로 세워졌던 곳입니다. 그 후에 솔로몬의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으로 재건되기도 했습니다.
아모스 9장 11장의 말씀은 마지막 때에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이 아닌 다윗의 장막을 다시 지으시겠다고 하셨을까요? 다윗의 장막이 주는 참된 의미는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반드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민수기에 나오는 번제와 화목제입니다. 번제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죄와 관련하여 드릴 때 번제는 속죄의 기능을 하며(레 1:4), 죄와 관계없이 드릴 때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을 나타냅니다(창 22장). 그리고 화목제는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된 것을 확인하는 제사입니다(레 3:5). 그래서 번제는 모든 것을 다 태우지만 화목제는 기름만 태우고 고기는 제사장과 이웃이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레 7:31-32). 이렇게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출 20:24).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성막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만든 것입니다(출 26장). 모세가 만든 성막의 특징은 지성소와 성소가 구별되어 있었습니다(출 26:33).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만 대속죄일에 들어가는 곳으로(출 30:10), 그가 지성소에 들어갈 때 반드시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만 했습니다(히 9:7). 한번은 자기 죄를 위하여 피를 가지고 들어가고 다른 한번은 백성의 죄를 위하여 피를 가지고 들어간 것입니다(레 16:14-16).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을 때마다 언약궤가 있는 성막으로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무엘 시대에 와서 하나님의 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기게 됩니다(삼상 4:11). 그리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같은 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임을 당합니다(삼상 2:34). 여기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이 먹칠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궤는 마땅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끼쳐야 하는데 제사장들의 죄로 말미암아 오히려 백성에게 재앙과 고통이 된 것입니다(삼상 4:10).
그러면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들은 이십년이 지나는 긴 세월을 동안 하나님의 궤가 없이 우상을 섬기며 살아갑니다(삼상 7:1-4).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것을 말해줍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십 년간은 고통스런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언약궤가 없이 살아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하나님의 궤를 시온산 성인 다윗성에 안치시킵니다(대상 11:5). 이때 하나님이 궤가 있는 곳의 이름을 다윗의 장막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다윗이 다윗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 (대상 15:1)
이 다윗의 장막에는 구약의 성막과 다르게 특별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성소와 성소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다윗의 장막과 모세가 만든 성막의 다른 점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법궤를 가릴 휘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법궤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장막 안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들에게 노출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 (대상 16:1). 그러므로 다윗의 장막은 더 이상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힘이 없이 그분의 영광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곳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 27:4). 다윗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평생을 예배하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시편 63편에서는,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 보았나이다.” (시 63:2)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장막은 24시간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곳입니다. 구약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하는 일들은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의식으로 매일 짐승을 죽여서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히 10:11). 그런데 다윗의 장막은 전혀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주로 피의 제사가 아닌 “찬양”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레위 사람들을 특별히 구별해서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다른 것이 아닌 찬양하는 일을 맡긴 것입니다. 그것도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해서 매일 언약궤 앞에서 찬양을 드렸습니다.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그 두목은 아삽이요 ..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머물러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고.” (역상 16:4-6, 37).
이들은 24반차로 나누어져서 순번으로 돌아가며 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하루 24시간을 끊이지 않고 계속 찬양을 했던 것입니다(대상 25:1). 다시 말해서 다윗의 장막은 하늘나라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의 모형으로서 하루 24시간 찬양과 기도가 같이 드려지는 곳입니다(사 56:7).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장막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하는 것이 너무나 큰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시 63:3-4).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다윗의 장막을 기뻐하십니까? 그것은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오직 그분의 얼굴만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좌를 상징합니다(출 25:21-22). 그런데 다윗의 장막에는 그것이 열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사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 (역상 16:1). 신약시대도 아닌 구약시대에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속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의 얼굴만을 구하며 그분의 영광을 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시 27:4). 그래서 다윗은 빼앗겼던 언약궤가 다시 돌아올 때 그렇게 기뻐했던 것입니다(삼하 6:16). 왜냐하면 그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장막은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곳입니다. 다윗의 장막은 찬양과 경배, 그리고 주의 백성들을 향한 중보기도가 있는 곳으로 24시간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의 장막은 하늘의 장막인 하나님의 보좌에서 천사들과 그룹천사들이 밤낮없이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하늘의 모형인 것입니다(계 4:8). 죄 사함을 위한 제사를 드리는 곳이 아닌 죄 사함을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들어가 구원하신 그분을 높이며 끊임없이 찬양과 경배와 기도를 드리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다윗의 장막입니다.
반면에 모세의 장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고 나머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나 영광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나 영광 속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죽음을 초래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출 19장). 하지만 다윗의 장막은 구약의 모세의 장막과 다르게 예배자가 직접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벧전 2:9). 왜냐하면 다윗의 장막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로 늘 충만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휘장이 없는 다윗의 장막은 오늘날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세우신 몸 된 교회를 말합니다(마 16:18). 주님의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만 예배를 드리는 곳이 아니라, 매일 24시간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는 삶 전체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롬 12:1). 그리고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앞으로 하늘나라에서 드려질 예배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세세토록 하나님 앞에서 예배만 드린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계 4:9-10, 5:13-14). 너무나 기쁘고 좋으며 행복할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춤추며 기뻐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의 회복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구원받은 이방인들이 휘장이 없는 장막에 모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예배를 드릴 때 이루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임재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아모스 9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회중들 앞에 서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행 15:15-17).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다 주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다 똑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받기로 작정된 이방인들도 다 주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듯이, 나라와 민족과 국경을 초월해서 주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 주님이 세우신 다윗의 장막인 교회라는 것입니다(행 20:28). 오늘날 우리는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윗의 장막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요?
첫째, 우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만남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그 분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시며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려지는 공적 예배 뿐만 아니라,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그 분을 예배하기를 기뻐하는 귀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열정은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다윗의 열정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충만이 우리의 속사람에 가득할 땡, 성령의 충만함이 가득하게 됩니다.
둘째, 우리는 찬양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다윗은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 22:3). 그는 손을 들고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 분의 임재안에서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 중에 충만하게 거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언약궤 앞에서 춤을 추며 기뻐하였습니다. 그가 춤을 춘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와 찬송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기뻐하였던 다윗이었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언약궤 앞에서 너무나 기뻐서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열정적인 예배자! 이것이 오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자!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의 영성과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던 비결도, 아마도 다윗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찬양했던 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찬양하는 영성을 가진 다윗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음을 받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줍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43:7)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삶의 분명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예배의 삶이며, 예배의 삶은 찬송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하나님께 찬송을 부리기 위하여 우리는 지음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종들을 향하여 찬양하라고 선포합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하나님의 전 정에 섰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 (시 135: 1-3) 다윗은 시편 40 편을 통하여 “...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40: 16) 라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됩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돌리도록 합시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 13: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입술의 열매가 됩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성령 충만을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 18-19) 우리의 삶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와 시로 서로의 마음이 하나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 충만과 찬양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 18-19)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자는 영적인 찬양으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행 2: 46-47a) 우리의 공동체는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영적인 공동체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자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온갖 세상적인 영을 이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성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며, 그분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찬양할 때 부흥의 은혜가 파도처럼 밀려올 것입니다. 우리는 찬양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찬양함으로 능력있는 교회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흘러나오는 찬양이,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행 15:16).
사도행전에는 아모서 9장 11-12절에 예언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신다고 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으로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장막은 하나님을 처음으로 예배했던 거룩한 장소였으며, 솔로몬의 성전은 웅장한 건물로 세워졌던 곳입니다. 그 후에 솔로몬의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으로 재건되기도 했습니다.
아모스 9장 11장의 말씀은 마지막 때에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이 아닌 다윗의 장막을 다시 지으시겠다고 하셨을까요? 다윗의 장막이 주는 참된 의미는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반드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민수기에 나오는 번제와 화목제입니다. 번제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죄와 관련하여 드릴 때 번제는 속죄의 기능을 하며(레 1:4), 죄와 관계없이 드릴 때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을 나타냅니다(창 22장). 그리고 화목제는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된 것을 확인하는 제사입니다(레 3:5). 그래서 번제는 모든 것을 다 태우지만 화목제는 기름만 태우고 고기는 제사장과 이웃이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레 7:31-32). 이렇게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출 20:24).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성막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만든 것입니다(출 26장). 모세가 만든 성막의 특징은 지성소와 성소가 구별되어 있었습니다(출 26:33).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만 대속죄일에 들어가는 곳으로(출 30:10), 그가 지성소에 들어갈 때 반드시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만 했습니다(히 9:7). 한번은 자기 죄를 위하여 피를 가지고 들어가고 다른 한번은 백성의 죄를 위하여 피를 가지고 들어간 것입니다(레 16:14-16).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을 때마다 언약궤가 있는 성막으로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무엘 시대에 와서 하나님의 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기게 됩니다(삼상 4:11). 그리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같은 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임을 당합니다(삼상 2:34). 여기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이 먹칠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궤는 마땅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끼쳐야 하는데 제사장들의 죄로 말미암아 오히려 백성에게 재앙과 고통이 된 것입니다(삼상 4:10).
그러면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들은 이십년이 지나는 긴 세월을 동안 하나님의 궤가 없이 우상을 섬기며 살아갑니다(삼상 7:1-4).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것을 말해줍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십 년간은 고통스런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언약궤가 없이 살아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하나님의 궤를 시온산 성인 다윗성에 안치시킵니다(대상 11:5). 이때 하나님이 궤가 있는 곳의 이름을 다윗의 장막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다윗이 다윗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궐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 (대상 15:1)
이 다윗의 장막에는 구약의 성막과 다르게 특별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성소와 성소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다윗의 장막과 모세가 만든 성막의 다른 점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법궤를 가릴 휘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법궤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장막 안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들에게 노출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 (대상 16:1). 그러므로 다윗의 장막은 더 이상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힘이 없이 그분의 영광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곳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 27:4). 다윗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평생을 예배하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시편 63편에서는,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 보았나이다.” (시 63:2)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장막은 24시간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곳입니다. 구약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하는 일들은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의식으로 매일 짐승을 죽여서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히 10:11). 그런데 다윗의 장막은 전혀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주로 피의 제사가 아닌 “찬양”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레위 사람들을 특별히 구별해서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다른 것이 아닌 찬양하는 일을 맡긴 것입니다. 그것도 여러 가지 악기를 사용해서 매일 언약궤 앞에서 찬양을 드렸습니다.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그 두목은 아삽이요 ..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머물러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그 일대로 하게 하였고.” (역상 16:4-6, 37).
이들은 24반차로 나누어져서 순번으로 돌아가며 하나님을 찬양함으로써 하루 24시간을 끊이지 않고 계속 찬양을 했던 것입니다(대상 25:1). 다시 말해서 다윗의 장막은 하늘나라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의 모형으로서 하루 24시간 찬양과 기도가 같이 드려지는 곳입니다(사 56:7).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장막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하는 것이 너무나 큰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시 63:3-4).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다윗의 장막을 기뻐하십니까? 그것은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오직 그분의 얼굴만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보좌를 상징합니다(출 25:21-22). 그런데 다윗의 장막에는 그것이 열려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사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 (역상 16:1). 신약시대도 아닌 구약시대에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속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의 얼굴만을 구하며 그분의 영광을 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시 27:4). 그래서 다윗은 빼앗겼던 언약궤가 다시 돌아올 때 그렇게 기뻐했던 것입니다(삼하 6:16). 왜냐하면 그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장막은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곳입니다. 다윗의 장막은 찬양과 경배, 그리고 주의 백성들을 향한 중보기도가 있는 곳으로 24시간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의 장막은 하늘의 장막인 하나님의 보좌에서 천사들과 그룹천사들이 밤낮없이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하늘의 모형인 것입니다(계 4:8). 죄 사함을 위한 제사를 드리는 곳이 아닌 죄 사함을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들어가 구원하신 그분을 높이며 끊임없이 찬양과 경배와 기도를 드리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다윗의 장막입니다.
반면에 모세의 장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고 나머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나 영광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나 영광 속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죽음을 초래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출 19장). 하지만 다윗의 장막은 구약의 모세의 장막과 다르게 예배자가 직접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벧전 2:9). 왜냐하면 다윗의 장막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로 늘 충만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휘장이 없는 다윗의 장막은 오늘날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세우신 몸 된 교회를 말합니다(마 16:18). 주님의 교회는 일주일에 한 번만 예배를 드리는 곳이 아니라, 매일 24시간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는 삶 전체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롬 12:1). 그리고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앞으로 하늘나라에서 드려질 예배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세세토록 하나님 앞에서 예배만 드린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습니까?(계 4:9-10, 5:13-14). 너무나 기쁘고 좋으며 행복할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춤추며 기뻐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의 회복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구원받은 이방인들이 휘장이 없는 장막에 모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예배를 드릴 때 이루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임재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아모스 9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회중들 앞에 서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행 15:15-17).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다 주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다 똑같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받기로 작정된 이방인들도 다 주를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듯이, 나라와 민족과 국경을 초월해서 주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 주님이 세우신 다윗의 장막인 교회라는 것입니다(행 20:28). 오늘날 우리는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윗의 장막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요?
첫째, 우리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만남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그 분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시며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려지는 공적 예배 뿐만 아니라,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그 분을 예배하기를 기뻐하는 귀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열정은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다윗의 열정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충만이 우리의 속사람에 가득할 땡, 성령의 충만함이 가득하게 됩니다.
둘째, 우리는 찬양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다윗은 찬양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 22:3). 그는 손을 들고 여호와를 찬양하며, 그 분의 임재안에서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 중에 충만하게 거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언약궤 앞에서 춤을 추며 기뻐하였습니다. 그가 춤을 춘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와 찬송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기뻐하였던 다윗이었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언약궤 앞에서 너무나 기뻐서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열정적인 예배자! 이것이 오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자!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의 영성과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던 비결도, 아마도 다윗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찬양했던 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찬양하는 영성을 가진 다윗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음을 받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줍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43:7)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삶의 분명한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예배의 삶이며, 예배의 삶은 찬송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하나님께 찬송을 부리기 위하여 우리는 지음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종들을 향하여 찬양하라고 선포합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하나님의 전 정에 섰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 (시 135: 1-3) 다윗은 시편 40 편을 통하여 “...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40: 16) 라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됩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돌리도록 합시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 13: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입술의 열매가 됩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성령 충만을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 18-19) 우리의 삶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와 시로 서로의 마음이 하나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 충만과 찬양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엡 5: 18-19)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자는 영적인 찬양으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행 2: 46-47a) 우리의 공동체는 영적인 공동체입니다. 영적인 공동체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자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온갖 세상적인 영을 이기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성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며, 그분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찬양할 때 부흥의 은혜가 파도처럼 밀려올 것입니다. 우리는 찬양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찬양함으로 능력있는 교회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흘러나오는 찬양이,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