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중보기도자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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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341회 작성일 24-07-10 16:32본문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중보기도자 V,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엡 1:15-16).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중보 기도자 네 번째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을 통하여 예수님의 중보 기도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대제사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말씀으로 거룩해 지기를 기도하시며 세상에 우리를 보내셔서 지상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가 되기를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항상 교회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네 가지의 기도 제목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가 사도 바울의 중보 기도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현재 터기 지역의 다소에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로마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여 바리새파의 학자인 가마리엘 아래에서 율법을 배웠습니다. 그가 어릴 때부터 배운 율법으로 인하여 그는 열성적인 바리새인이 되었고, 유대교 율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에 대한 열심히 바울은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러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헌신하게 됩니다. 그는 안디옥에서 시작된 사역의 열매로 사역자로 검증이 되었고, 안디옥 교회의 파송으로 세 차례의 선교 여행으로 소아시아, 그리스도, 로마 등에 복음을 전하며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고, 3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3년간 복음을 전하면서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에베소는 아데미 신전이 있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지만, 강력한 복음의 능력으로 그곳에 귀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과 선교에서 귀하게 쓰임받았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하여 남긴 서신서의 저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신약 성경의 약 반을 기록할 만큼 로마서에서 빌레몬서 까지 많은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정립했고,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은혜를 강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도 여러 차례 투옥되었지만,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고, 네로 황제 시기에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부르심은 이방 교회를 위한 선교였습니다. 그는 이방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가 세운 교회들은 갈리디아 지역의 교회들과, 소아시아의 에베소 교회, 그리고 마케도냐 지역의 빌립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고린도 교회 등 수많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운 교회들을 통하여 또 다른 교회들이 세워지며 복음의 놀라운 역사는 이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던 기도를 통하여 영적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영적으로 눈이 열리도록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 1:17-18).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의미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란 다른 말로 하면 영적인 분별력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영을 갖는 것은 범사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의 영이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적인 안목을 의미합니다. 계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계시로서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특별계시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그 분의 뜻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얻게 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밝아지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는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하심이라.”(고전 2:12)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시기에 우리가 세상에서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면 마음의 눈이 밝아지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눈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은 세상 사람이나 우리나 모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뉴스나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며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볼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인 눈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며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
우리의 영적인 눈은 마음의 눈입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육체의 눈이나 귀나 마음이 아니라, 성령께서 마음에서 깨닫게 하시고 보여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혜와 계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영적으로 밝아지면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자신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게하시를 위해서 그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했습니다. 열왕기하 6장에서 아람 군대가 엘리사 선지자가 있는 도단성을 에워싸자 게하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 선지자는 게하시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열하 6:16)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게하시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했습니다.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열하 6:17).
영적인 눈이 열리자 하나님께서 엘리사와 게하시를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손길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엘리사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보호하셨듯이,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항상 도우십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이 열려서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리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기도와 말씀, 그리고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 채워져서 날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인 안목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씀 속에 감추인 보배를 발견하며, 환경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가 부르심의 소망에 대하여 알기를 원했습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엡 1:1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눈인 영적인 눈이 밝아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세상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에게는 영광스러운 소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부르심의 소망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소망 1호는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천국에 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천국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천국을 예비하셨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디도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중에 나타나시는 것을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복된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은 예수님이 영광 중에 이 땅에 재림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는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에서 강림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 남은 자들은 구름속으로 끌어 열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인 바로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보아야 할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의 몸은 어떻게 되는가요? 우리의 몸은 속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처럼, 우리의 몸도 부활하신 주님과 같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우리의 몸이 주님과 같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으로 휴거되는 사건은 우리가 간직해야 할 복된 소망입니다.
소망이 있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산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자는 절망감과 상실감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기에 점점 믿음에서 퇴보하고 삶에서도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열정을 품고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산 소망이 있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 즉 영원한 상속을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적인 복을 바라보며 기뻐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날 때에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부요함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 영적인 실체는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이르렀을 때에 보게 될 것입니다.
3.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기업임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 1:18).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영적인 눈이 밝아져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기도했습니다. 성도 안에서의 기업이란 우리가 얻게 될 기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기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보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우리를 바닷가의 모래 중의 하나로 취급하시면서 무관심하실까요? 우리의 삶에 대하여 무관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과연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실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보다 소중한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도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며 돌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모든 존재들보다 소중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2-3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기에 우리가 주님의 일을 기뻐하며 힘쓸 때에 우리의 모든 필요를 더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셔서 아시는 분이십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30-3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기에 우리를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신다고 고백했습니다(시편 121편). 우리는 하나님이 아들의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소중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소중한 보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기에 세상가 구별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값진 보물로서 자신의 마음과 말, 행실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은 주님과 같이 덕을 세우는 진리의 말을 해야 하고, 우리의 마음은 주님과 같이 온유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실은 주님과 같이 섬기며 희생하는 선한 삶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사 43:3-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발견해야 할 영적인 통찰력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영적인 통찰력을 키워가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주시는 소망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소중한 기업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와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이러한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중보하기를 소망합니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엡 1:15-16).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중보 기도자 네 번째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을 통하여 예수님의 중보 기도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대제사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말씀으로 거룩해 지기를 기도하시며 세상에 우리를 보내셔서 지상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가 되기를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항상 교회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네 가지의 기도 제목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가 사도 바울의 중보 기도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현재 터기 지역의 다소에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로마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여 바리새파의 학자인 가마리엘 아래에서 율법을 배웠습니다. 그가 어릴 때부터 배운 율법으로 인하여 그는 열성적인 바리새인이 되었고, 유대교 율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에 대한 열심히 바울은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러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헌신하게 됩니다. 그는 안디옥에서 시작된 사역의 열매로 사역자로 검증이 되었고, 안디옥 교회의 파송으로 세 차례의 선교 여행으로 소아시아, 그리스도, 로마 등에 복음을 전하며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고, 3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3년간 복음을 전하면서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에베소는 아데미 신전이 있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지만, 강력한 복음의 능력으로 그곳에 귀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과 선교에서 귀하게 쓰임받았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하여 남긴 서신서의 저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신약 성경의 약 반을 기록할 만큼 로마서에서 빌레몬서 까지 많은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정립했고,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은혜를 강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도 여러 차례 투옥되었지만,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고, 네로 황제 시기에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부르심은 이방 교회를 위한 선교였습니다. 그는 이방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가 세운 교회들은 갈리디아 지역의 교회들과, 소아시아의 에베소 교회, 그리고 마케도냐 지역의 빌립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고린도 교회 등 수많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운 교회들을 통하여 또 다른 교회들이 세워지며 복음의 놀라운 역사는 이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던 기도를 통하여 영적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영적으로 눈이 열리도록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 1:17-18).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의미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란 다른 말로 하면 영적인 분별력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영을 갖는 것은 범사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의 영이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적인 안목을 의미합니다. 계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계시로서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서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특별계시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그 분의 뜻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얻게 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눈이 밝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밝아지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는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하심이라.”(고전 2:12)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아시기에 우리가 세상에서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면 마음의 눈이 밝아지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눈이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육신의 눈은 세상 사람이나 우리나 모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뉴스나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접하며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볼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적인 눈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며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
우리의 영적인 눈은 마음의 눈입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육체의 눈이나 귀나 마음이 아니라, 성령께서 마음에서 깨닫게 하시고 보여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혜와 계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영적으로 밝아지면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자신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게하시를 위해서 그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했습니다. 열왕기하 6장에서 아람 군대가 엘리사 선지자가 있는 도단성을 에워싸자 게하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 선지자는 게하시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열하 6:16)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게하시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했습니다.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열하 6:17).
영적인 눈이 열리자 하나님께서 엘리사와 게하시를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손길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엘리사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보호하셨듯이,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항상 도우십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이 열려서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리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기도와 말씀, 그리고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 채워져서 날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인 안목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씀 속에 감추인 보배를 발견하며, 환경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가 부르심의 소망에 대하여 알기를 원했습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엡 1:1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눈인 영적인 눈이 밝아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은 세상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에게는 영광스러운 소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부르심의 소망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소망 1호는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천국에 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천국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천국을 예비하셨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디도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 중에 나타나시는 것을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복된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은 예수님이 영광 중에 이 땅에 재림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는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에서 강림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 남은 자들은 구름속으로 끌어 열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인 바로 우리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보아야 할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의 몸은 어떻게 되는가요? 우리의 몸은 속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처럼, 우리의 몸도 부활하신 주님과 같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우리의 몸이 주님과 같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으로 휴거되는 사건은 우리가 간직해야 할 복된 소망입니다.
소망이 있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산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자는 절망감과 상실감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기에 점점 믿음에서 퇴보하고 삶에서도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열정을 품고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으로 산 소망이 있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 즉 영원한 상속을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적인 복을 바라보며 기뻐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날 때에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부요함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 영적인 실체는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이르렀을 때에 보게 될 것입니다.
3.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기업임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 1:18).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영적인 눈이 밝아져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기도했습니다. 성도 안에서의 기업이란 우리가 얻게 될 기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기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러운 보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우리를 바닷가의 모래 중의 하나로 취급하시면서 무관심하실까요? 우리의 삶에 대하여 무관심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과연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실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보다 소중한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도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며 돌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모든 존재들보다 소중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2-3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기에 우리가 주님의 일을 기뻐하며 힘쓸 때에 우리의 모든 필요를 더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셔서 아시는 분이십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30-3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기에 우리를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신다고 고백했습니다(시편 121편). 우리는 하나님이 아들의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소중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소중한 보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기에 세상가 구별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값진 보물로서 자신의 마음과 말, 행실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은 주님과 같이 덕을 세우는 진리의 말을 해야 하고, 우리의 마음은 주님과 같이 온유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실은 주님과 같이 섬기며 희생하는 선한 삶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사 43:3-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바울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발견해야 할 영적인 통찰력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영적인 통찰력을 키워가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주시는 소망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소중한 기업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와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이러한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중보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