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하게 세워지는 하나님의 가족 (살전 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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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380회 작성일 25-07-09 14:20본문
견고하게 세워지는 하나님의 가족 (살전 5: 12-28)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살전 5: 12).
V자 편대로 날아가는 캐나다기러기 이야기입니다. 가을이 되면 약 4,000 km를 이동하는 캐나다기러기(Canada goose)들은 항상 하늘에 V자 편대를 그리며 날아갑니다. 과학자들은 이 편대 비행에 네 가지 특징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기러기들은 상승 기류의 시너지를 활용합니다. 맨 앞 기러기가 날갯짓을 하면 뒤쪽 새들이 받는 공기 저항이 30 % 이상 줄어듭니다. 덕분에 전체 편대는 혼자 날아갈 때보다 70%가량 더 멀리 힘 덜 들이고 비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리더십이 지치면 힘들지 않도록 다른 기러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선두 기러기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므로 일정 거리를 가면 뒤로 빠지고 다른 기러기가 자리를 대신합니다. 앞장섰다고 지치면, 뒤로 물러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섬깁니다. 그들은 서로를 응원합니다. 뒤에 있는 기러기들은 ‘빵빵’ 소리를 내며 앞선 리더를 격려합니다. 학자들은 이 소리가 “조금만 더!” 하는 격려의 메시지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낙오자가 생기면 누군가가 돌보아 줍니다. 한 마리가 병이 들어 내려앉으면 두 마리가 함께 내려가 보호하고, 회복되거나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킵니다. 그리고 다시 다른 편대를 찾아 합류합니다.
편대가 멀리 가려면 선두를 존중하고 필요할 때 기꺼이 교대해야 합니다. 교회도 목양적 리더를 귀히 여기며, 섬김의 자리에서 짐을 함께 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기러기들이 뒤에서 ‘응원’ 소리를 내듯, 우리는 연약한 지체를 훈계하고 격려하며 오래 참아야 합니다. 낙오한 기러기 곁을 지키는 모습은 약한 자를 붙드는 교회의 사명을 보여 줍니다.
편대 전체가 한 박자, 한 방향으로 날아갈 때 목적지에 이르듯, 교회도 기도·감사·말씀 안에서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세상을 향해 긴 여정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름받은 우리는 기러기 편대처럼 리더를 존중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한 방향(예배)으로 날아가야 합니다. 그때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완주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회에서 영적으로 어떻게 서로를 돌아보며 세워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이 믿는 자들을 위하여 사용한 호칭은 '형제 (brethren)' 였습니다. 바울은 주님 안에서의 지체를 형제로 불렀고, 지역 교회를 가족으로 보았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born again), 하나님의 성품 (God's Nature) 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벧전 1: 22-25, 벧후 1: 3-4).
하나님의 가족은 교회를 통하여 성장하고, 자라가며,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가 더욱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우리의 지역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서 어떠한 모습을 갖추어야 할 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가족은 영적 리더십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 12-13).
어떠한 조직이든 리더십이 없으면, 그 조직은 무너지게 됩니다. 가정에서의 리더십이 없다면, 그 가족은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머리입니다. 어머니는 사랑과 협력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리인 것입니다.
자녀들이 삶에서 문제가 있으면,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고 가르침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문제는 문제 해결을 친구들이나 선배에게서 찾으려고 합니다. 자녀의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인 것입니다. 아버지를 무시하고 머리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녀는 큰 혼란과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은 리더십을 세우셨습니다.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하듯이 (벧전 5: 1-5), 교회에서도 리더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목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목사를 조력하여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조력자 (사역자) 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목사를 도와 행정적인 사역을 감당하도록 집사들을 세우셨습니다. 또한 사역을 잘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에서는 총목자와 목자를 세워서 사역을 감당하도록 했습니다. 이 분들은 모두가 교회를 함께 세워나가는 영적인 리더인 것입니다. 교회는 리더의 가르침과 사역에 마음을 같이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가질 때에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영혼 구령과 세계 선교 비전을 감당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족은 그들의 영적인 리더들을 향하여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할까요?
1. 그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Accept Them.
영적인 리더들은 교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영적인 권위를 부여받았기에, 우리는 그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은 독재자와 같이 주장하는 자가 아니고, 본을 보이며 섬기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따르며 섬기는 모슴을 보면서, 우리도 그들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들을 감사해야 합니다. Appreciate Them.
성경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살전 5: 12). 성도들 가운데서 수고하며 다스리는 자들이 영적인 리더들입니다. 그들은 목사와 사역자, 그리고, 집사, 목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존중하는 것은,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영적인 리더십을 행사하는 것은 위대한 큰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며, 어려운 직무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들이 감당하는 무거운 짐만큼이나, 격려는 부족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인 리더들의 사역을 당연시하고, 심지어는 비판적인 눈으로 보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것입니다. 교회는 리더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동역하며, 격려하는 공동체의 문화를 세워나가도록 합시다.
3. 그들은 사랑해야 합니다. Love Them.
교회는 리더를 사랑해야 합니다. 리더는 형제로서 우리 안에 있으며 among us, 리더로서 우리 위에 over us,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형제이며 리더라는 독특한 위치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그 분들을 귀히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4. 그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Obey Them.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히 13: 17).
하나님의 종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할 때에,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리더들이 범사에 맞게 결정하고 인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진흙으로 만들어 졌기에 늘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성경속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결점과 허물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사역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비록 그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벗어나지 않을 때에 그들은 사랑과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인 리더들이 함께 만나, 계획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며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영적 리더십을 존중했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내가 어찌 해하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울 왕은 시기심에 사로잡혀 다윗을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엔게디 동굴로 몸을 숨긴 다윗에게 절호의 기회가 옵니다. 지친 사울이 동굴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다 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하들은 “지금이야말로 원수를 제압할 때”라며 흥분했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살짝 잘랐을 뿐 그를 해치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다윗의 ‘양심이 찌르는 듯’(24:5) 하여 자신의 행동을 후회합니다.
다윗은 선언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라.” 다윗은 사울이 불완전하고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 드는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라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기 생명을 건질 뿐만 아니라, 훗날 이스라엘 왕권을 맡길 수 있는 도덕적 권위를 스스로 확립했습니다. 사울도 그의 고결함을 보고 “네가 나보다 의롭다”라고 고백합니다(24:17).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자를 알고…” 다윗이 기회를 얻고도 칼을 거둔 이유는 ‘사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리더를 존중하는 이유가 ‘그 사람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임을 기억할 때, 교회는 비로소 가족 같은 평안과 영적 권위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리더들과 마음을 함께 하게 될 때에, 교회는 평안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고,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다음은 사도 바울이 교회의 리더들만이 사역의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가 없기에, 서로를 돌보아야 하는 두 번째의 부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가족은 서로를 돌보아야 합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살전 5: 14-16).
교회는 몸이기도 합니다. 몸된 삶 Body Life 은 서로를 섬기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목장의 공동체에서 서로를 섬기는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가족 공동체는 서로에게 사역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성숙한 성도는 미성숙한 성도를 격려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 격려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사나 사역자만이 성도를 돌보는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사역을 통하여 돌보고 세워주는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서로의 영적인 삶을 책임지게 될 때에, 그 공동체는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2 절에서는 교회의 영적인 중요한 직무가 성도들을 준비시켜 사역을 감당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 12). 성도가 양육과 훈련을 통하여 사역자로 준비되면, 그 교회는 더욱 건강하고 강력한 교회로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개인적인 도움이 필요한 가족의 구성원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1) 규모 없는 자. Unruly. 이는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군인이 행군에서 이탈하여 자신의 마음대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도 규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는데,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고 말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는 사랑의 마음으로 훈계하여 질서에 순복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용납이 되면 이는 논쟁과 분열의 불씨가 되는 것입니다.
2) 마음이 약한 자. Feebleminded. 마음이 약한 자는 누구입니까? 이는 어려움이 찾아오게 되면 포기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포기하여 세상으로 돌아가거나, 사역의 현장에서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격려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약하여 힘들어 하는 자들을 향하여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격려하여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격려를 받음으로 인하여, 그 영혼은 믿음 안에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힘이 없는 자. Weak. 힘이 없는 자는 육체적으로 약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믿음이 연역하여 쉽게 넘어지는 자입니다. 교회에는 믿음이 강한 자가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각자 인격으로 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을 수 있기에,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축복하고 강한 믿음으로 붙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에는 레드우드 거목들이 있는 레드우드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이 국립공원에는 높이 90-100 m 가 넘는 나무들이 거대한 군집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레드우드(세쿼이아) 거목들은 평균 높이가 90 m, 오래된 개체는 천 살이 넘지만, 그 땅속을 파 내려가 보면 의외로 뿌리 깊이가 겨우 사람 키 두세 배(2–4 m 남짓)에 불과합니다. 거대한 몸집에 비해 터무니없이 얕은 뿌리를 가진 나무가 어떻게 태풍과 지진에도 꿋꿋이 서 있을까요?
비밀은 ‘깊이’가 아니라 ‘연결’에 있습니다. 레드우드의 뿌리는 깊이는 2-4 m에 불과하지만, 땅속에서 사방으로 30 m 이상 옆으로 뻗어가며, 이웃 나무의 뿌리와 수없이 맞물려 서로를 감싸 안습니다. 마치 숲속 모든 나무가 손을 맞잡고 둥근 원을 그리듯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거대한 지지망(매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폭풍이 불어와도 힘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네트워크 전체에 고르게 분산됩니다. 한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도 옆 나무들이 “괜찮아, 내가 잡아 줄게” 하듯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이 연결은 단순히 넘어지지 않기 위한 장치에 그치지 않습니다. 숲속 연구자들은 레드우드 뿌리 사이를 오가는 수분과 양분, 심지어 ‘경고 신호’까지 관측했습니다. 가뭄에 시달리는 나무가 있으면 주변 나무가 물을 나눠 주고, 병충해가 침입하면 화학 신호를 퍼뜨려 숲 전체가 대비태세를 갖추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심지어 거목 하나가 나이가 들어 쓰러지더라도 뿌리는 여전히 그 네트워크 안에 남아 있으면서, 썩어 가는 동안에도 양분을 방출해 어린 묘목들이 자라도록 돕습니다. 죽어서도 ‘돌봄’을 멈추지 않는 셈입니다.
결국 레드우드는 “혼자 서는 나무”가 아니라 “함께 버티는 숲”으로 존재합니다.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약점을 ‘서로 얕지만 넓게’ 손을 맞잡음으로 극복했기에, 천 년 넘는 세월도 견디는 장엄한 숲이 된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당부한 “규율 없는 자를 권면하고, 약한 자를 붙들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는 말씀도 이와 닮았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면, 우리는 레드우드 뿌리처럼 서로의 연약함을 감싸고, 쓰러질 위기에 놓인 지체를 붙들며, 때로는 나의 ‘양분’을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 얽혀 있을 때 외부의 거센 바람, 시험·삶의 풍랑 속에서도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높고 든든한 ‘믿음의 숲’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이러한 사역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효율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도록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1) 인내하라.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살전 5: 14). 자녀를 양육함에도 큰 인내가 필요하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는 데도 큰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권면하고 사랑하며 용기를 주게 되면, 하나님의 때에 큰 일꾼으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2) 동기를 점검하라. (살전 5: 15). 우리가 다른 사람을 순수한 마음으로 섬긴다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를 거절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적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조금도 수고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오히려 거칠게 비판과 대적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사랑으로 섬기며,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롬 12: 17-21).
우리가 섬기는 동기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이라면,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낙심하고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동기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섬기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3)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살전 5: 16).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동역하며 마음으로 함께할 때에 동역의 기쁨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역의 현장에는 항상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는 이러한 것을 초월하여 복음과 성령 안에서 순종하며 기뻐함을 통하여 교회가 더욱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능력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가족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할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7-18).
예배는 지역 교회의 가장 중요한 활동입니다. 사역은 예배로부터 흘러나와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며, 그 분이 공급하시는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예배 사역에서 중요한 몇 가지 요소들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기도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 17). 기도는 초대 교회의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고전 11: 1-6, 행 1: 13-14). 기도를 통하여 교회는 연합을 경험하게 되기에, 기도는 교회의 거룩한 활동인 것입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을 계발하고, 교회도 연합하여 함께 기도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릴레이 중보기도 와 예배 중보기도를 통하여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찬양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 18). 감사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엡 5: 19) 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갈수록 찬양을 통하여 마음의 감사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무시한 예배는 영적이지 않는 예배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분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더욱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치 말고 귀하게 여기고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넷째, 경건한 삶입니다. (22-24).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주님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갈 수록, 우리는 악의 모든 모양을 버리고, 더욱 경건에 이르는 삶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다섯째, 그리스도인의 교제입니다. (25-28). “형제들아 우리를 우하여 기도하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살전 5:25-26).
교회가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는, 성도들은 서로에게 사역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서로 격려하는 시간은 교제의 시간입니다. 우리도 예배 후에 주일과 수요 예배 후에 교제를 나눕니다. 특히, 우리의 교제는 새로운 영혼을 중심으로 교제를 나누며 함께 관계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교제도 사역과 영적인 삶의 소중한 일부분이기에, 우리는 더욱 힘써 교제의 삶을 힘써야 합니다.
안개 낀 캘리포니아 해안에 우뚝 선 레드우드 숲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높이 100 m를 넘나드는 거목들이 태풍과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깊은 뿌리가 아니라 얕지만 넓게 뻗은 뿌리들이 서로를 꼭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나무가 흔들리면 옆 나무가 잡아 주고, 쓰러진 거목의 뿌리조차 양분을 흘려보내 새순을 키워 냅니다. 그 덕분에 레드우드들은 “혼자가 아닌, 서로 기대어 숲이 되는 힘”으로 천 년을 버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십을 존중할 때(12-13절) 우리는 방향과 질서를 얻고, 서로 돌보고 오래 참을 때(14-16절) 약한 지체가 다시 일어서며, 기도와 감사의 예배로 한마음이 될 때(17-28절) 성령의 생명이 흐릅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가 레드우드 숲처럼 뿌리를 서로 얽어맬 때, 세찬 바람도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가족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내가 붙들어 줄 사람은 누구인가?” 이 질문을 가슴에 새기고, 이번 주 한 사람에게 격려의 말 한마디·기도 한 줄·섬김 한 조각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흠 없이 보존하실 것이며(살전 5:23-24), 레드우드보다 높고 든든한 믿음의 숲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이 올려질 것입니다.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살전 5: 12).
V자 편대로 날아가는 캐나다기러기 이야기입니다. 가을이 되면 약 4,000 km를 이동하는 캐나다기러기(Canada goose)들은 항상 하늘에 V자 편대를 그리며 날아갑니다. 과학자들은 이 편대 비행에 네 가지 특징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기러기들은 상승 기류의 시너지를 활용합니다. 맨 앞 기러기가 날갯짓을 하면 뒤쪽 새들이 받는 공기 저항이 30 % 이상 줄어듭니다. 덕분에 전체 편대는 혼자 날아갈 때보다 70%가량 더 멀리 힘 덜 들이고 비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리더십이 지치면 힘들지 않도록 다른 기러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선두 기러기는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므로 일정 거리를 가면 뒤로 빠지고 다른 기러기가 자리를 대신합니다. 앞장섰다고 지치면, 뒤로 물러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섬깁니다. 그들은 서로를 응원합니다. 뒤에 있는 기러기들은 ‘빵빵’ 소리를 내며 앞선 리더를 격려합니다. 학자들은 이 소리가 “조금만 더!” 하는 격려의 메시지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낙오자가 생기면 누군가가 돌보아 줍니다. 한 마리가 병이 들어 내려앉으면 두 마리가 함께 내려가 보호하고, 회복되거나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킵니다. 그리고 다시 다른 편대를 찾아 합류합니다.
편대가 멀리 가려면 선두를 존중하고 필요할 때 기꺼이 교대해야 합니다. 교회도 목양적 리더를 귀히 여기며, 섬김의 자리에서 짐을 함께 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기러기들이 뒤에서 ‘응원’ 소리를 내듯, 우리는 연약한 지체를 훈계하고 격려하며 오래 참아야 합니다. 낙오한 기러기 곁을 지키는 모습은 약한 자를 붙드는 교회의 사명을 보여 줍니다.
편대 전체가 한 박자, 한 방향으로 날아갈 때 목적지에 이르듯, 교회도 기도·감사·말씀 안에서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세상을 향해 긴 여정을 완주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름받은 우리는 기러기 편대처럼 리더를 존중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한 방향(예배)으로 날아가야 합니다. 그때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완주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회에서 영적으로 어떻게 서로를 돌아보며 세워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이 믿는 자들을 위하여 사용한 호칭은 '형제 (brethren)' 였습니다. 바울은 주님 안에서의 지체를 형제로 불렀고, 지역 교회를 가족으로 보았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born again), 하나님의 성품 (God's Nature) 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벧전 1: 22-25, 벧후 1: 3-4).
하나님의 가족은 교회를 통하여 성장하고, 자라가며,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가 더욱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우리의 지역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서 어떠한 모습을 갖추어야 할 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가족은 영적 리더십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 12-13).
어떠한 조직이든 리더십이 없으면, 그 조직은 무너지게 됩니다. 가정에서의 리더십이 없다면, 그 가족은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머리입니다. 어머니는 사랑과 협력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리인 것입니다.
자녀들이 삶에서 문제가 있으면, 아버지에게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고 가르침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문제는 문제 해결을 친구들이나 선배에게서 찾으려고 합니다. 자녀의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인 것입니다. 아버지를 무시하고 머리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녀는 큰 혼란과 어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은 리더십을 세우셨습니다.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하듯이 (벧전 5: 1-5), 교회에서도 리더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목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목사를 조력하여 사역을 잘 감당하도록 조력자 (사역자) 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목사를 도와 행정적인 사역을 감당하도록 집사들을 세우셨습니다. 또한 사역을 잘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에서는 총목자와 목자를 세워서 사역을 감당하도록 했습니다. 이 분들은 모두가 교회를 함께 세워나가는 영적인 리더인 것입니다. 교회는 리더의 가르침과 사역에 마음을 같이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가질 때에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영혼 구령과 세계 선교 비전을 감당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족은 그들의 영적인 리더들을 향하여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할까요?
1. 그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Accept Them.
영적인 리더들은 교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영적인 권위를 부여받았기에, 우리는 그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은 독재자와 같이 주장하는 자가 아니고, 본을 보이며 섬기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따르며 섬기는 모슴을 보면서, 우리도 그들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들을 감사해야 합니다. Appreciate Them.
성경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살전 5: 12). 성도들 가운데서 수고하며 다스리는 자들이 영적인 리더들입니다. 그들은 목사와 사역자, 그리고, 집사, 목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존중하는 것은,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영적인 리더십을 행사하는 것은 위대한 큰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며, 어려운 직무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들이 감당하는 무거운 짐만큼이나, 격려는 부족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인 리더들의 사역을 당연시하고, 심지어는 비판적인 눈으로 보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것입니다. 교회는 리더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동역하며, 격려하는 공동체의 문화를 세워나가도록 합시다.
3. 그들은 사랑해야 합니다. Love Them.
교회는 리더를 사랑해야 합니다. 리더는 형제로서 우리 안에 있으며 among us, 리더로서 우리 위에 over us,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형제이며 리더라는 독특한 위치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그 분들을 귀히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4. 그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Obey Them.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히 13: 17).
하나님의 종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를 인도할 때에,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리더들이 범사에 맞게 결정하고 인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진흙으로 만들어 졌기에 늘 실수가 있고 허물이 있습니다. 성경속에 있는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결점과 허물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사역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비록 그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벗어나지 않을 때에 그들은 사랑과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인 리더들이 함께 만나, 계획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며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영적 리더십을 존중했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내가 어찌 해하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울 왕은 시기심에 사로잡혀 다윗을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엔게디 동굴로 몸을 숨긴 다윗에게 절호의 기회가 옵니다. 지친 사울이 동굴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다 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하들은 “지금이야말로 원수를 제압할 때”라며 흥분했지만,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살짝 잘랐을 뿐 그를 해치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다윗의 ‘양심이 찌르는 듯’(24:5) 하여 자신의 행동을 후회합니다.
다윗은 선언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라.” 다윗은 사울이 불완전하고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 드는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라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기 생명을 건질 뿐만 아니라, 훗날 이스라엘 왕권을 맡길 수 있는 도덕적 권위를 스스로 확립했습니다. 사울도 그의 고결함을 보고 “네가 나보다 의롭다”라고 고백합니다(24:17).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자를 알고…” 다윗이 기회를 얻고도 칼을 거둔 이유는 ‘사울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리더를 존중하는 이유가 ‘그 사람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임을 기억할 때, 교회는 비로소 가족 같은 평안과 영적 권위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리더들과 마음을 함께 하게 될 때에, 교회는 평안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고,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다음은 사도 바울이 교회의 리더들만이 사역의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가 없기에, 서로를 돌보아야 하는 두 번째의 부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가족은 서로를 돌보아야 합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살전 5: 14-16).
교회는 몸이기도 합니다. 몸된 삶 Body Life 은 서로를 섬기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목장의 공동체에서 서로를 섬기는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가족 공동체는 서로에게 사역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성숙한 성도는 미성숙한 성도를 격려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 격려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사나 사역자만이 성도를 돌보는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사역을 통하여 돌보고 세워주는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서로의 영적인 삶을 책임지게 될 때에, 그 공동체는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2 절에서는 교회의 영적인 중요한 직무가 성도들을 준비시켜 사역을 감당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 12). 성도가 양육과 훈련을 통하여 사역자로 준비되면, 그 교회는 더욱 건강하고 강력한 교회로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개인적인 도움이 필요한 가족의 구성원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1) 규모 없는 자. Unruly. 이는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군인이 행군에서 이탈하여 자신의 마음대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도 규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는데,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고 말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는 사랑의 마음으로 훈계하여 질서에 순복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가 용납이 되면 이는 논쟁과 분열의 불씨가 되는 것입니다.
2) 마음이 약한 자. Feebleminded. 마음이 약한 자는 누구입니까? 이는 어려움이 찾아오게 되면 포기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포기하여 세상으로 돌아가거나, 사역의 현장에서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포기하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격려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약하여 힘들어 하는 자들을 향하여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격려하여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격려를 받음으로 인하여, 그 영혼은 믿음 안에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힘이 없는 자. Weak. 힘이 없는 자는 육체적으로 약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믿음이 연역하여 쉽게 넘어지는 자입니다. 교회에는 믿음이 강한 자가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각자 인격으로 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을 수 있기에,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축복하고 강한 믿음으로 붙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에는 레드우드 거목들이 있는 레드우드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이 국립공원에는 높이 90-100 m 가 넘는 나무들이 거대한 군집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레드우드(세쿼이아) 거목들은 평균 높이가 90 m, 오래된 개체는 천 살이 넘지만, 그 땅속을 파 내려가 보면 의외로 뿌리 깊이가 겨우 사람 키 두세 배(2–4 m 남짓)에 불과합니다. 거대한 몸집에 비해 터무니없이 얕은 뿌리를 가진 나무가 어떻게 태풍과 지진에도 꿋꿋이 서 있을까요?
비밀은 ‘깊이’가 아니라 ‘연결’에 있습니다. 레드우드의 뿌리는 깊이는 2-4 m에 불과하지만, 땅속에서 사방으로 30 m 이상 옆으로 뻗어가며, 이웃 나무의 뿌리와 수없이 맞물려 서로를 감싸 안습니다. 마치 숲속 모든 나무가 손을 맞잡고 둥근 원을 그리듯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거대한 지지망(매트)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폭풍이 불어와도 힘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네트워크 전체에 고르게 분산됩니다. 한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도 옆 나무들이 “괜찮아, 내가 잡아 줄게” 하듯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이 연결은 단순히 넘어지지 않기 위한 장치에 그치지 않습니다. 숲속 연구자들은 레드우드 뿌리 사이를 오가는 수분과 양분, 심지어 ‘경고 신호’까지 관측했습니다. 가뭄에 시달리는 나무가 있으면 주변 나무가 물을 나눠 주고, 병충해가 침입하면 화학 신호를 퍼뜨려 숲 전체가 대비태세를 갖추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심지어 거목 하나가 나이가 들어 쓰러지더라도 뿌리는 여전히 그 네트워크 안에 남아 있으면서, 썩어 가는 동안에도 양분을 방출해 어린 묘목들이 자라도록 돕습니다. 죽어서도 ‘돌봄’을 멈추지 않는 셈입니다.
결국 레드우드는 “혼자 서는 나무”가 아니라 “함께 버티는 숲”으로 존재합니다.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약점을 ‘서로 얕지만 넓게’ 손을 맞잡음으로 극복했기에, 천 년 넘는 세월도 견디는 장엄한 숲이 된 것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당부한 “규율 없는 자를 권면하고, 약한 자를 붙들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는 말씀도 이와 닮았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면, 우리는 레드우드 뿌리처럼 서로의 연약함을 감싸고, 쓰러질 위기에 놓인 지체를 붙들며, 때로는 나의 ‘양분’을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 얽혀 있을 때 외부의 거센 바람, 시험·삶의 풍랑 속에서도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높고 든든한 ‘믿음의 숲’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이러한 사역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효율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도록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1) 인내하라.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살전 5: 14). 자녀를 양육함에도 큰 인내가 필요하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는 데도 큰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권면하고 사랑하며 용기를 주게 되면, 하나님의 때에 큰 일꾼으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2) 동기를 점검하라. (살전 5: 15). 우리가 다른 사람을 순수한 마음으로 섬긴다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를 거절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대적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조금도 수고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오히려 거칠게 비판과 대적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사랑으로 섬기며,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롬 12: 17-21).
우리가 섬기는 동기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이라면,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낙심하고 포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동기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섬기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3)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살전 5: 16).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동역하며 마음으로 함께할 때에 동역의 기쁨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역의 현장에는 항상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는 이러한 것을 초월하여 복음과 성령 안에서 순종하며 기뻐함을 통하여 교회가 더욱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능력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가족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할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7-18).
예배는 지역 교회의 가장 중요한 활동입니다. 사역은 예배로부터 흘러나와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며, 그 분이 공급하시는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예배 사역에서 중요한 몇 가지 요소들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기도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 17). 기도는 초대 교회의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고전 11: 1-6, 행 1: 13-14). 기도를 통하여 교회는 연합을 경험하게 되기에, 기도는 교회의 거룩한 활동인 것입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을 계발하고, 교회도 연합하여 함께 기도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릴레이 중보기도 와 예배 중보기도를 통하여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찬양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 18). 감사는 예배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엡 5: 19) 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더욱 깊이 알아 갈수록 찬양을 통하여 마음의 감사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무시한 예배는 영적이지 않는 예배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분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더욱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치 말고 귀하게 여기고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넷째, 경건한 삶입니다. (22-24).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주님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갈 수록, 우리는 악의 모든 모양을 버리고, 더욱 경건에 이르는 삶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다섯째, 그리스도인의 교제입니다. (25-28). “형제들아 우리를 우하여 기도하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살전 5:25-26).
교회가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는, 성도들은 서로에게 사역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서로 격려하는 시간은 교제의 시간입니다. 우리도 예배 후에 주일과 수요 예배 후에 교제를 나눕니다. 특히, 우리의 교제는 새로운 영혼을 중심으로 교제를 나누며 함께 관계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교제도 사역과 영적인 삶의 소중한 일부분이기에, 우리는 더욱 힘써 교제의 삶을 힘써야 합니다.
안개 낀 캘리포니아 해안에 우뚝 선 레드우드 숲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높이 100 m를 넘나드는 거목들이 태풍과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까닭은, 깊은 뿌리가 아니라 얕지만 넓게 뻗은 뿌리들이 서로를 꼭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나무가 흔들리면 옆 나무가 잡아 주고, 쓰러진 거목의 뿌리조차 양분을 흘려보내 새순을 키워 냅니다. 그 덕분에 레드우드들은 “혼자가 아닌, 서로 기대어 숲이 되는 힘”으로 천 년을 버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더십을 존중할 때(12-13절) 우리는 방향과 질서를 얻고, 서로 돌보고 오래 참을 때(14-16절) 약한 지체가 다시 일어서며, 기도와 감사의 예배로 한마음이 될 때(17-28절) 성령의 생명이 흐릅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가 레드우드 숲처럼 뿌리를 서로 얽어맬 때, 세찬 바람도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가족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내가 붙들어 줄 사람은 누구인가?” 이 질문을 가슴에 새기고, 이번 주 한 사람에게 격려의 말 한마디·기도 한 줄·섬김 한 조각을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을 흠 없이 보존하실 것이며(살전 5:23-24), 레드우드보다 높고 든든한 믿음의 숲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이 올려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