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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삶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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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896회 작성일 24-11-1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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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삶의 습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

빌립보서는 우리에게 기뻐하는 삶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뻐함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겨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 1:8).

우리가 행복한 삶을 향하여 소망한다면 우리는 어느 곳에서 시작해야 할까요?  바울은 관계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가 불행하면서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많은 돈을 소유하고, 명예와 지위를 얻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에서 소중한 관계가 무너진다면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관계가 불행하다면, 우리의 삶도 불행해질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를 시작하면서 건강한 관계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하는 사람들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 1:3).  감사와 행복이 연관되었다는 연구는 자주 보고되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들은 감사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행복하다는 것을 자주 증명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감사가 없는 인생일수록 더욱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3절은,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고난 중에 있었고, 빌립보 성도들은 빌립보 지역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난 중에 있는 중에 빌립보 성도들이 보내어준 사랑의 선물을 생각하면서 빌립보 성도들과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 1:4).  사도 바울은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할 때에 사도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의 내용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 1:9-11).

우리는 사도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가족이나 자녀들, 그리고 믿음의 친구들을 위한 내용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리는 그들이 사랑안에서 자라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 1:9).  둘째는 그들이 선한 것을 분별하여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빌 1:10).  셋째, 우리는 그들이 진실하도록 기도합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 1:10).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 1:11).  특히 의의 열매가 가득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 1:8).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인생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사랑한다고 할 때는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필요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섬기는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2. 다른 사람이 나의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1)

우리의 삶에서 행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행복에 대하여 결정하도록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잭 하일스 목사님은 “행하라, 그러나 반응하지 말라!(Act, don’t react!) 라고 자주 언급하셨습니다.  우리의 태도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의하여 반응하게 되면 음악에 맞추어서 춤을 추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굳게 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정에 이끌리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행하며 겸손을 지켜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네 사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을 동안에 자신의 사역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험담하였고, 정죄하거나 비판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에 대하여 비방하며 공격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과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경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돕지 않고 오히려 비방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사역을 무너트리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그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5-17절에서 바울은 몇몇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에 네 종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언급합니다.  그 중의 하나는 사도 바울에게 친절하였지만, 세 부류는 기쁨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빌 1:15).  사도 바울은 먼저 자신의 사역을 비판하는 자들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분쟁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분쟁은 싸우기를 좋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소한 일이라도 싸우거나 다투기를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판적이고 나누기를 좋아하며 다투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시기와 다툼이 동기가 되어 사역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경 학자는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55 명의 남자와 17 명의 여성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사역을 하면서 사도 바울은 기쁨을 누리고도 했지만 서로간의 갈등으로 헤어져야 하는 아픔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가의 문제로 인하여 동역자인 바나바와 이별해야 했고, 데마는 함께 사역을 하다가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선교사들이 선교 사역에서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교사들간의 갈등이라고 합니다.  함께 사역을 하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아 사역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사역에 참여한다고 해도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사역에 대하여 비판하며 다투고자 한다면 사역에서 누리던 기쁨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친구들이나 가족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면, 우리의 머리가 아프고 또는 심장에서 통증을 느끼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사역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 사람들의 인정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거나 만족을 주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사시며 인도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간증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 1:18).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역에 대하여 비판하기도 하고, 분쟁을 일으켜 다투기도 하며, 심지어 자신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할지라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전파되기 때문에 기뻐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주님을 섬기는 것이 가장 소중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겸손의 마음을 배운다.  (빌 2:1-11)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지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2-3).

성경은 겸손의 습관은 삶에서 갈등을 피하는 열쇠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13장은,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잠 13:10)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언은 서로 다툼을 하는 원인은 교만이라고 합니다.  교만에서 다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마음에 이끌리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고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2-3).

우리는 관계에서 자신의 교만한 마음이 앞서지 않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뿌리인 이유는, 사탄이 교만으로 하늘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갈등에는 교만한 마음이 중심에 있습니다.  영어로 교만(pride)이나 범죄(crime)이나 죄(sin)에는 나(I) 가 중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아라는 에고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3) 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하시고 순종의 마음이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주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주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큰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잔을 마시며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다.  주님을 닮는 것은 고통의 순간이라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옳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  주님은 겸손의 본이 되십니다.  겸손하게 순종하신 주님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이름을 높여 주셨습니다. 

4.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라.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빌 2:14).

사소한 것으로 인한 다툼은 기쁨과 행복을 잃게 합니다.  만일 가정에서 부부 싸움을 하고 난 후에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직장에서 누군가와 다투거나 교회에서 누군가와 언쟁을 했다면 한동안 마음에서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이선복 교수가 뇌와 성경의 세미나에서 사람은 70%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성향이 더 큰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반항적이며 부정적인 문화의 영향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의 시작은 아담과 하와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실수에 대하여 변명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고소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삶의 문제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문제에 대하여 누군가를 원망하는 습관을 가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선택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다툼이나 원망의 길을 갈수도 있고, 서로 사랑하며 축복하는 길을 갈수도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4-15절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빌 2:14-15).

우리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는 것은, 이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이 우리를 향하여 비난을 할 수 있는 구실을 피하는 길인 것입니다.  원망과 시비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이 세대는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입니다.  이러한 세대에서 원망과 시비가 없이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승리하는 삶의 비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망이나 시비가 아니라 감사의 마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하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불평하거나 원망하기가 쉽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어려운 환경에도 감사하고, 자신의 삶에 어려운 사람을 만나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5.  소중한 가치를 위해서 헌신하라.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빌 2:27, 30).

우리는 생명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영원하지 않는 일시적인 것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올라가다 정상에 올랐지만, 자신의 목표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영원한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소중한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삶을 최대한 잘 살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빌 2:27, 30).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때 빌립보 교회는 로마로부터 약 1000 km 이상 떨어져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감옥에 있는 바울을 격려하기 위하여 구호 물품과 헌물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비행기나 열차나 차량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갈수 있는 길은 걸어가는 것입니다.  약 천 km 이상되는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강도나 도둑을 만날 수도 있고 질병에 걸려서 죽을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미션을 위해서 에바브로디도가 헌신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다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미션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할 만큰 헌신적이었습니다.  그는 로마로 가는 과정에서 질병에 걸려 거의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미션을 마치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서 여러분은 헌신하고 있는지요?  에바브로디도는 로마로 가는 과정에서 많이 아팠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소중한 미션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헌신이 목숨을 잃을수 있는 위험한 미션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도 바울을 위한 헌신이 그리스도의 일임을 알고 자신의 생명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한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헌신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를 붙들고 함께 헌신하는 삶이 된다면, 우리는 모두가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 될 것입니다.

6.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아간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7-8).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하기 전까지 그에게 소중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자신의 베냐민 지파로서의 혈통이 소중했고, 바리새인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중요했고, 팔일만에 할례를 받은 자신의 육체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소중한 것은 결국은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 살았고, 자신의 탁월한 업적과 능력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주와 구세주로 영접한 후에 그의 삶에는 가치의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사도 바울의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것을 해로 여기며 심지어는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그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주시며, 생명이 되셔서 그의 삶에서 살아가신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인생의 참된 가치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때 그 전의 모든 소중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배설물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물질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자신의 쾌락이나 세상 친구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 소중한 분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역과 헌신으로 섬기는 그 섬김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며, 천국에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짐 엘리엇과 같이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라는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소중하지 않는 것을 더 소중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포기하는 삶을 살게 되면, 우리가 천국에 이르게 되면 더욱 큰 영광과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잊지 말고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7. 염려하지 않고 기도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우리가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비결은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은 염려입니다.  그러기에, 빌립보서 기자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염려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으로 염려를 이기고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산상 수훈을 통해서 우리에게 염려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5).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것으로 인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됩니다.  우리가 염려를 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문제로 인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기 보다는 문제를 묵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간구하기 보다는, 눈을 감고 문제를 생각하다가 더 큰 무거운 짐을 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문제에 대하여 염려하면 문제가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걱정하다가 염려하면서 그 문제에 빠지게 되다보니 마음의 기쁨과 행복이 뒷문으로 나가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주님은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34)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염려는 우리가 스스로 배워가는 학습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우리는 염려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삶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염려 대신에 감사함으로 기도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찾아오는 순간에 염려나 좌절하지 말고 오직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염려를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하늘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2)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한 큰 사랑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와 문제에도 관심이 있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삶에서 문제를 극복하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은혜로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 숫자까지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머리카락 숫자를 모르지만 하나님은 머리의 숫자까지 세시는 분이시니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게 우리를 도우시며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스트레스를 이기는 비결은 염려를 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