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13) -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행 9:3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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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035회 작성일 18-08-22 17:42본문
사도행전 강해 (13) -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행 9:32-11:18).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 10:1-2).
사도 바울의 회심은 이방인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의 은혜를 발견한 후에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고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후에 사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했지만 다 두려워하여 그의 믿음을 의심했습니다. 이때 바나바가 사울을 제자들에게 소개하고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간증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이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제자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역할을 했습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행 9:27).
우리에게도 바나바와 같은 사역이 필요합니다. 교회에 새로우신 방문하신 분들이 교회의 지체들과 연합되도록 섬기며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사역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되는 과정에서 그를 가장 도왔던 사람은 바나바였습니다. 우리 교회에 새로운 영혼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밭이 되어서 새로 오시는 분들이 믿음 안에서 뿌리 내리도록 돕고 섬기는 바나바와 같은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담대히 복음을 전하자 예루살렘의 헬라파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갔다고 다소로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들은 하나님의 위로로 든든히 세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 9:31).
바울의 회심 이후로 성경은 베드로의 사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사역이 사도행전 9장과 10 장에서 소개된 의미는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의 사역 이후로 이방인에게도 전해지며 구원받는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의 교회들을 돌아보다가 룻다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룻다에서 베드로는 애니아를 하는 사람을 만나 주님의 이름으로 고쳐주게 됩니다. 베드로는 팔년이나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워있는 애니아를 고침으로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행 9:34).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어로 다비다라고 하고 헬라식 이름은 도르가였습니다. 그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도르가는 욥바 교회의 존경받는 제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옷을 지어서 입히는 일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룻다에 있을 때에 도르가가 병들어 죽게 되자, 사람들이 베드로를 보내오 오게 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욥바에 와서 도르가를 향하여 기도함으로 죽은 도르가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베드로를 통해서 죽은 도르가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의 사역을 인하여 많은 욥바 사람이 주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시몬이라는 피장의 집에 유하게 됩니다. 피장이라는 직업은 동물의 가죽을 가공하는 직업이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피장이라는 직업이 죽은 동물이나 부정한 동물도 상대하였기에 그들을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유대인들의 편견을 극복하고 스스로 부정하다고 여기는 사람의 집에 머물면서 복음의 능력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삶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미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지만 복음이 필요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 10:2).
가이사랴는 헤롯왕이 로마의 황제를 위하여 지은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가이사랴로 지칭했습니다. 그곳에 로마 총독부가 있었고, 가이사랴에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가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중대장 정도 되는 직책으로서 로마 군인 100 명을 통솔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이달리야대는 이탈리야 군대를 의미합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며 이방인인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성도였던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고넬료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부대의 백부장으로서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로다’ 라고 한 사람으로 추측하며, 주님의 무덤을 지키다가 부활의 주님을 본 부대의 장교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성경은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구제하는 진실된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넬료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천사가 환상 중에 고넬료를 향하여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고넬료가 경건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였지만, 그는 아직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구원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준비된 마음을 아시고 베드로를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사역을 보고하면서 고넬료의 이야기를 설명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행 11:13-14). 천사는 고넬료에게 베드로가 그의 집에 구원 얻을 말씀을 전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하며 기도하는 자였지만 아직 구원의 은혜에 이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입니다. 아무리 경건한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넬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복음을 듣게 되고 구원을 받아 성령으로 거듭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의 은혜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경건한 행위나 하나님을 찾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죄사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구원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하며 하나님 중심의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행 10:15).
하나님은 베드로를 고넬료의 집에 보내시기 위하여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에서 한 그릇이 내려오는데 그 안에는 부정한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행 10:11-12).
하늘에서 소리가 나면서 베드로를 향하여 외칩니다. “잡아 먹으라.” 그때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부정한 음식을 율법대로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니이다.” (행 10:14). 그때 소리가 나면서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베드로가 부정한 음식을 거부한 것은 레위기 11장에 언급된 부정한 짐승에 언급된 율법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음식의 정결법을 폐기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막 7:15-16, 19). 주님 안에서 모든 음식은 거룩하게 되었기에 더 이상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하여 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를 지키는 것으로 정죄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고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6-17). 주님게서는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고 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입은 우리는 음식으로 인하여 더 이상 매일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절기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에 더 이상 우리를 속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예배하며 그 분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이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오게 되어 가이사랴로 베드로가 가게 됩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대하는 것이 부정한 것으로 여겨 만나지도 않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내셔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그 사역은 사도 바울이 이방 선교로 가게 하는 첫 발을 디디게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를 만나게 되고 그 집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나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행 10:39-41).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고 고넬료는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신 소식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믿느 자들은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행 10:43).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이 임하게 되고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고넬료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고넬료는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자신의 믿음의 증거로 침례에 순종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의 집에서 식사한 것에 대하여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과 이방인에게 임한 구원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행 11:17).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사람이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적인 사고를 가지고 선민 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축복인 영생을 누리는 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넬료의 구원을 통하여 소중한 교훈을 발견합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1:18).
이방인들에게도 생명 얻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남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이방인 고넬료의 구원을 보여준 후에, 사도 바울의 사역이 이방인에게로 향하고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후원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보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의 사역을 통하여 다음의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과 구제를 기뻐하시며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도르가의 구제와 선행을 기억하심으로 그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기도로 살게 하셨습니다. 도르가는 욥바 교회의 중추적인 일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구제를 기억하셨고, 그를 위하여 베드로를 보내셔서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선행과 구제를 통하여 나타남을 보게 됩니다.
2.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셔서 영혼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보내셔서 고넬료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복음의 메신저로서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감당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합니다. 교회 안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차별이 없고 오직 하나가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큰 장벽을 복음이 허물었듯이, 사람 사이에 있는 장벽도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4. 복음은 우리를 비전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과 유대의 영혼들만 바라보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이방인에게 보내셨습니다. 이방인 한 사람의 구원은 열방의 문을 여는 첫 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전 세계를 바라보는 비전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이 목포만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선교의 비전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시각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열방을 구원하는 세계 선교의 비전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 10:1-2).
사도 바울의 회심은 이방인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의 은혜를 발견한 후에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고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후에 사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제자들과 교제하기를 원했지만 다 두려워하여 그의 믿음을 의심했습니다. 이때 바나바가 사울을 제자들에게 소개하고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간증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이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제자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역할을 했습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행 9:27).
우리에게도 바나바와 같은 사역이 필요합니다. 교회에 새로우신 방문하신 분들이 교회의 지체들과 연합되도록 섬기며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사역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되는 과정에서 그를 가장 도왔던 사람은 바나바였습니다. 우리 교회에 새로운 영혼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밭이 되어서 새로 오시는 분들이 믿음 안에서 뿌리 내리도록 돕고 섬기는 바나바와 같은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담대히 복음을 전하자 예루살렘의 헬라파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갔다고 다소로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들은 하나님의 위로로 든든히 세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 9:31).
바울의 회심 이후로 성경은 베드로의 사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사역이 사도행전 9장과 10 장에서 소개된 의미는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의 사역 이후로 이방인에게도 전해지며 구원받는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의 교회들을 돌아보다가 룻다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룻다에서 베드로는 애니아를 하는 사람을 만나 주님의 이름으로 고쳐주게 됩니다. 베드로는 팔년이나 중풍병으로 상 위에 누워있는 애니아를 고침으로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행 9:34).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어로 다비다라고 하고 헬라식 이름은 도르가였습니다. 그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도르가는 욥바 교회의 존경받는 제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옷을 지어서 입히는 일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룻다에 있을 때에 도르가가 병들어 죽게 되자, 사람들이 베드로를 보내오 오게 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욥바에 와서 도르가를 향하여 기도함으로 죽은 도르가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베드로를 통해서 죽은 도르가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의 사역을 인하여 많은 욥바 사람이 주님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시몬이라는 피장의 집에 유하게 됩니다. 피장이라는 직업은 동물의 가죽을 가공하는 직업이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피장이라는 직업이 죽은 동물이나 부정한 동물도 상대하였기에 그들을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유대인들의 편견을 극복하고 스스로 부정하다고 여기는 사람의 집에 머물면서 복음의 능력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삶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미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지만 복음이 필요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 10:2).
가이사랴는 헤롯왕이 로마의 황제를 위하여 지은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가이사랴로 지칭했습니다. 그곳에 로마 총독부가 있었고, 가이사랴에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인 고넬료가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중대장 정도 되는 직책으로서 로마 군인 100 명을 통솔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이달리야대는 이탈리야 군대를 의미합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며 이방인인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성도였던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고넬료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부대의 백부장으로서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로다’ 라고 한 사람으로 추측하며, 주님의 무덤을 지키다가 부활의 주님을 본 부대의 장교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성경은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구제하는 진실된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넬료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천사가 환상 중에 고넬료를 향하여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고넬료가 경건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였지만, 그는 아직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구원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준비된 마음을 아시고 베드로를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사역을 보고하면서 고넬료의 이야기를 설명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행 11:13-14). 천사는 고넬료에게 베드로가 그의 집에 구원 얻을 말씀을 전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하며 기도하는 자였지만 아직 구원의 은혜에 이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입니다. 아무리 경건한 삶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넬료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복음을 듣게 되고 구원을 받아 성령으로 거듭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의 은혜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경건한 행위나 하나님을 찾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죄사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구원을 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하며 하나님 중심의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행 10:15).
하나님은 베드로를 고넬료의 집에 보내시기 위하여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에서 한 그릇이 내려오는데 그 안에는 부정한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행 10:11-12).
하늘에서 소리가 나면서 베드로를 향하여 외칩니다. “잡아 먹으라.” 그때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부정한 음식을 율법대로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니이다.” (행 10:14). 그때 소리가 나면서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베드로가 부정한 음식을 거부한 것은 레위기 11장에 언급된 부정한 짐승에 언급된 율법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음식의 정결법을 폐기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막 7:15-16, 19). 주님 안에서 모든 음식은 거룩하게 되었기에 더 이상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하여 먹고 마시는 것이나 절기를 지키는 것으로 정죄받지 않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고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6-17). 주님게서는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고 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입은 우리는 음식으로 인하여 더 이상 매일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절기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에 더 이상 우리를 속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예배하며 그 분의 이름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이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오게 되어 가이사랴로 베드로가 가게 됩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대하는 것이 부정한 것으로 여겨 만나지도 않고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내셔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하셨고, 그 사역은 사도 바울이 이방 선교로 가게 하는 첫 발을 디디게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를 만나게 되고 그 집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나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행 10:39-41).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고 고넬료는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신 소식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믿느 자들은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행 10:43).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이 임하게 되고 유대인 신자들이 이방인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고넬료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습니다. 고넬료는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자신의 믿음의 증거로 침례에 순종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의 집에서 식사한 것에 대하여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과 이방인에게 임한 구원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행 11:17).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사람이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적인 사고를 가지고 선민 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축복인 영생을 누리는 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넬료의 구원을 통하여 소중한 교훈을 발견합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1:18).
이방인들에게도 생명 얻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남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이방인 고넬료의 구원을 보여준 후에, 사도 바울의 사역이 이방인에게로 향하고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후원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보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의 사역을 통하여 다음의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과 구제를 기뻐하시며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은 도르가의 구제와 선행을 기억하심으로 그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기도로 살게 하셨습니다. 도르가는 욥바 교회의 중추적인 일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의 구제를 기억하셨고, 그를 위하여 베드로를 보내셔서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선행과 구제를 통하여 나타남을 보게 됩니다.
2.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셔서 영혼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보내셔서 고넬료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복음의 메신저로서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감당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합니다. 교회 안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차별이 없고 오직 하나가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큰 장벽을 복음이 허물었듯이, 사람 사이에 있는 장벽도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4. 복음은 우리를 비전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과 유대의 영혼들만 바라보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이방인에게 보내셨습니다. 이방인 한 사람의 구원은 열방의 문을 여는 첫 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전 세계를 바라보는 비전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이 목포만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선교의 비전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시각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열방을 구원하는 세계 선교의 비전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