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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8) - 집사의 선출 (행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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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809회 작성일 18-07-1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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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8) - 집사의 선출 (행 6:1-7)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행 6:3-4).

시도 행전 6장에서 우리는 교회가 성장하면서 일어나는 분쟁이나 시련을 잘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6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행 6:1).  교회는 지속적인 부흥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핍박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행 5:41-42).  그들의 열정으로 인하여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마테테스’입니다.  이는 단순히 가르침을 받는 자가 아니라, 배우고 성장하여 남을 가르치는 자를 의미했습니다.  제자가 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배워서 다른 사람을 제자 삼는 자가 되기 위함인 것입니다.  성경학자인 렌스키는 당시에 믿는 자의 수는 20,000 - 15,000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수 만명의 사람들이 짧은 기간인 1-2년 사이에 모이게 되면서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구제에 대한 문제가 교회의 갈등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 사람을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흩어져 살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온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히브리파 사람이란 이스라엘 땅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이방 나라에 살다가 유대로 이주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본토 이스라엘 땅에 묻히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외국에 거주하던 많은 유대인이 말년을 이스라엘에서 보내기 위해 찾아왔고, 결국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과부가 되었습니다.  결국 외국 출신의 많은 유대인 과부가 예루살렘에 살게 되었고, 유대 사회는 구제 담당자를 세워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에 한계가 있었기에 예루살렘의 사회적인 문제가 교회에까지 미치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면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받는 생필품에서 푸대접을 받았거나 누락이 되어 있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원성이 교회 안에서 높아지자 사도들은 이 문제를 중재하기 위하여 나서게 됩니다.  교회는 교회 내부의 원망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함으로 인하여 교회가 크게 부흥하면서 심지어는 제사장들까지도 교회에 더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들이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는 영적인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1. 교회는 영적인 우선순위를 분명히 했습니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행 6:2).

예루살렘의 교회는 생명의 복음으로 인하여 수많은 제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었던 예수가 다시 살아나 제자들과 오백여 형제에게 나타나셨고 감람산에서 하늘로 승천하시는 모습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움추러 들었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후로 큰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하여 더욱 담대해졌고 복음을 선포했으며, 그 결과로 수많은 영혼들이 교회에 더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더해지면서 믿는 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들까지 일어나면서 교회는 칭송을 받고 있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노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곳에 묻히기를 원하는 자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배우자가 사망하면 혼자 남게 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이때 교회는 그들을 돌보는 구제를 매일 하게 되면서 분주해졌고,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헬라파 유대인들이 차별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문제 앞에 사도들은 영적인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게 됩니다.  “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행 6:2).  사도들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제와 같은 일들로 인하여 사역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도들은 주님으로부터 친히 사명을 위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그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복음의 말씀을 전하여 구원하고, 그들의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며 닮아가는 제자들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했습니다.  공궤를 일삼는다는 영어로  serve tables, wait on 로, ‘식탁을 섬기다. 식탁에서 기다리다. 또는 식탁에서 봉사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섬기다의 ‘디아코네오’는 ‘먼지가 일어날 만큼 분주히 움직이다, 열심히 일하다, 봉사하다’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탁들에서 섬기는 것이란 교회의 구제 사업이나 재정 출납 그리고 여러 가지 사역들을 감당하면서 봉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디오코니아는 봉사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집사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이는 집사의 역할이 교회에서 어떠한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즉, 교회의 행정이나 재정, 그리고 사역이 잘 감당되도록 봉사하는 업무인 것입니다.  즉,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복음 사역에 집중하도록 행정적인 업무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와같이 사도들의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면서 초대 교회는 새롭게 변화되고 더 큰 부흥의 길로 가게 됨을 보게 됩니다. 

2. 교회는 영적인 자격을 지닌 자를 집사로 선출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행 6:3-4).

사도들은 교회에서 섬기는 자인 집사를 선출하면서 영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교회의 구제의 일을 감당하는 자로 세웠지만, 세상적인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세웠습니다. 

영적인 기준의 첫 번째는 성령의 충만함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감정적인 황홀경에 빠지거나 감정적으로 복받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채움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은 성령의 충만을 가져오게 됩니다.  만일 아무리 믿음이 있다하더라도 불순종의 죄가 있거나 죄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성령으로 충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기쁨과 평안의 삶을 살아갑니다.

스데반은 집사로 선출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당하는 모습을 향하여 성경은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5) 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돌에 맞아 순교의 순간까지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였습니다.  빌립도 선출된 집사였습니다.  빌립도 성령이 충만하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우리도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은 성령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를 붙드시며 말씀에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집사는 성령으로 충만한 자를 선출했습니다. 

영적인 기준의 두 번째는 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처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과 행실이 바르게 행함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며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살아갑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올바르며 의롭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성령이 충만하다고 해도 지혜가 없다면 공동체로 모인 교회에서 덕이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교회에서 칭찬을 들을만큼 좋은 평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으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약 3:13-18).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자는 시기와 다툼의 행실을 피하게 됩니다.  시기와 다툼으로 욕심을 내는 자는 세상적이며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거룩하고 화평하며 관용하고 선한 열매가 가득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편견을 갖거나 거짓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지혜와 믿음이 가득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서 교회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곱 명의 집사를 선출하게 됩니다.  그들은 스데반과 빌립과 니골라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함으로 직분자로 세웠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집사들은 구제와 같은 행정과 봉사의 일을 담당하면서 교회의 필요를 채워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균형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디모데전서는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일을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딤전 3: 8-13).

집사는 교회의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목사의 자격과 더불어 집사의 영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믿음에 성숙한 자가 목회자의 동역자와 섬기는 자가 되어 교회를 섬기게 되면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에 큰 담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3. 교회는 지속적인 부흥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행 6:7).

성경은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언급합니다.  특히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즉, 성전에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던 자들이 자신들의 직분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남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는 예루살렘에 큰 충격적인 일이었고, 유대교 내에서는 치욕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성경학자에 따르면 예수님 당시의 일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18,000 명 가량이었고, 이중 8,000 명 정도가 제사장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한 시기는 3대 명절 기간과 연 2주 정도 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머지 10-11개월은 수입이 없어서 생계의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직업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들은 유대교 내의 부패로 인하여 많은 회의를 가지고 있었고, 교회를 통해 전해지는 복음과 그들의 삶을 보면서 살아있는 생명의 능력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허다한 제사장들도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교회의 생명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본질에서 떠나서 탁자를 섬기는 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초대 교회가 구제의 사역을 필요에 따라서 시행했지만,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교회가 말씀 외에도 구제와 같이 식탁을 섬기는 사역이 늘어날수록 영적인 기준을 갖춘 집사를 세워서 교회가 지속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말씀과 기도가 중심이 되어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의 다양한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영적인 기준을 충족되는 성도를 세워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세워지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