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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18) -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야 합니다. (행 1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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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2,500회 작성일 19-01-3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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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강해 (18) -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야 합니다. (행 15:1-35).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 15:11).

사도행전 13장과 14장은 사도 바울이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1차 선교 사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1차 선교 여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의 문을 여셔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이르러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은 유대로부터 사람들이 내려와서 안디옥 교회를 근심되게 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행 15:1).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험난한 산악 지형을 극복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로 비시디아 안디옥을 비롯한 갈라디아 지역에 큰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에서 바리새파 그리스도인들이 찾아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무지한 주장으로 인하여 안디옥 교회는 큰 근심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주장은 비성경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큰 다툼과 변련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행 15:2).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지키는 일에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에, 유대인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지키려는 바울의 열정을 통하여 다음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우리는 복음의 진리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유대로부터 온 성도들 중에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고 한 주장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중에도 바리새파 중에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행 15:5).  바리새파 중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 중에서도 아직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안디옥에서 있었던 사건을 설명하면서 복음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외식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간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을 비롯한 바나바 까지도 베드로의 외식에 유혹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의 사건이 갈라디아서 2장에서 언급한 사건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베드로의 외식에 대하여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갈 2:14).  베드로는 복음의 진리에서 떠나 바로 행하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사고에 이방인과 함께 먹는 것을 부정하게 여겼기에 그들을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진리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이제 복음 안에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교회가 된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우리가 의롭게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어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 15:10-11).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유대인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문제를 해결하고자 결정합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및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에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행 15:5) 라고 했습니다.  바리새파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일어나 복음은 율법으로 자유하게 함을 주장합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과 같이 이방인에게도 믿음으로 주셔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메지 못하는 율법의 멍에를 이방인들에게 매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는 이방인들도 자신들과 같이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 15:10-11).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구원을 통하여 믿음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임하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도 지키지 못하는 율법의 멍에를 이방인들에게 부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입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의 영적인 지도자로서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가 일어나 결론을 맺습니다.  야고보는 아모서 9장 11,12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였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행 15:16-18).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장막을 다시 지으시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회복시키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야고보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를 괴롭게 말고 대신에 다음의 것들을 지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행 15:19-20).  야고보는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교회의 지체가 되어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때 교회에는 유대인들도 있어 서로의 배경에 큰 차이가 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행 15:21).  각 도시에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기에 회당에 모여서 모세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아직까지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며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의 믿음이 유대인들에게 거침이 되지 않도록 다음의 것을 삼가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의 더러운 것, 즉 우상에게 드려졌던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였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피를 마시는 것이 금하여 졌습니다.  그러므로, 목매어 죽인 음식은 피가 고여 있었기에 금한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서로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지혜였던 것입니다. 

물론 음행은 성경에서 금하는 죄입니다.  그러나, 음식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을 통하여 우상에게 드린 제물에 대하여 자유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상의 제물을 먹으므로 믿음이 약한 자를 실족하게 하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는 자유함으로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음식 자체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고전 10:27-28).  만일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이라고 말을 한다면,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든 것이 가하다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고전 10:23).  야고보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네 가지를 멀리 하라고 한 것입니다. 

교회가 이슈로 인하여 논쟁이 일어날 때에 그 논쟁에 대한 결론을 영적 지도자인 야고보가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그 결정에 승복하게 됩니다.  교회는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 위에 세워진 교회는 진리 안에서 덕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의 의견에 대하여 바리새파 유대인들이 굴복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교회는 큰 분쟁에 휩싸이게 되면서 교회가 세상에 덕을 세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의 의견을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야고보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문화적인 차이를 최소화하도록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만 절제하도록 했습니다. 

교회는 복음의 진리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수가 있지만 교회가 연합하고 하나가 되도록 의견을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 지혜 가운데 교회는 영적 지도력의 교훈을 받아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주님의 뜻을 이루어갑니다.  함께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으로 마음이 나뉠수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지혜를 구해야 하며 교회가 하나가 되고 덕을 세워서 모드가 기뻐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야고보의 결정에 따랐듯이, 교회는 영적 지도력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초대 교회는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유대를 넘어 이방인에게로 향하면서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져 갔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의 비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2-15).

이방인과 유대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비밀이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하나님의 비밀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엡 3:4-6).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과 함께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다른 세대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신 하나님의 비밀인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가 주는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순수한 복음을 사랑하며 전파하며 지켜가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