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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도행전 연구 (18) - 바울의 1차 선교 여행 II (행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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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1,979회 작성일 19-01-3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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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도행전 연구 (18) -  바울의 1차 선교 여행 II (행 14장)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을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행 14:19).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구브로 섬에서 박수 엘루마의 방해를 물리치고 총독인 서기오 바울을 구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큰 부흥이 일어났고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사도들이 이고니온에 이르게 됩니다.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사람들이 두 사도를 돌려 치려고 달려 들었습니다.  그러자, 두 사도는 이고니온을 떠나서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어두움의 땅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많은 핍박을 가져왔습니다.  복음의 프론티어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려야 하는 것이며 복음의 선포를 위해서 핍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위해서 살았던 사도 바울을 통해서 얻는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복음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행 14:6-7).

사도 바울의 부르심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은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복음에는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을 떠난 근본적인 이유는 이방인의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으로 구브로의 서기오 바울이 구원을 받았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허다한 무리가 믿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이고니온에서도 복음을 담대히 전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보낸 사도 바울의 서신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은 사도 바울이 1차 선교 여행을 위해 방문했던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의 도시들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복음을 전했고 그 후에도 말씀으로 교회를 굳게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다른 복음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강력하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갈라디아 사람들 중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향하여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참된 복음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바로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신앙 생활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복음안에서 헛된 일을 버리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행 14:12).

바울과 바나바가 핍박을 피하여 루스드라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만나게 됩니다.  바울이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그의 발을 고쳐줍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뛰어 걷게 됩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자를 고쳐주신 것과 같이, 바울이 이방인의 땅인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것입니다.  그러자, 그곳에 사람들이 놀라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고.” (행 14:11).  당시의 헬라 문화에서는 신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활동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신들이 사람들과 같이 활동하기도 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였습니다.  쓰스는 제우스 신을 의미하고, 허메는 허르메스를 의미했습니다.  제우스 신은 신들의 우두머리였고, 헤메우스는 제우스 신의 대변자로서 언어를 지배하는 신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제우신 신당의 제사장을 불러오게 됩니다.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을 가져와 소를 잡아 제사를 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무지했기에, 바나바와 바울을 신으로 차각하고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려 했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행 14:15)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했습니다.  복음의 진리는 세상의 헛된 것을 버리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합니다.

성경은 복음의 진리 안에서 세상의 헛된 것을 버리는 것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면 세상의 우상을 버리고, 세상의 쾌락을 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면 세상의 망령된 행실을 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게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전 1:9).  데살로니가 교회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베드로전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우리의 구원은 망령된 행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망령된 행실은 헛되고 열매맺지 못하는 행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후에 과거의 율법적인 삶에서 벗어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새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찾아와 돌로 바울을 치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행 14:19).  바울이 돌에 맞아 거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게 됩니다.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 섰을 때에 다시 일어나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고린도후서 12장의 셋째 하늘에 올라간 경험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3. 우리는 제자가 되어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거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행 14:22).

바울은 루스드라의 핍박을 피하여 더베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은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는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합니다.  그리고, 믿음에 거하라고 권면합니다.  많은 핍박이 찾아왔기에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하여 믿는 자들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제자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제자는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배운 말씀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믿음 안에 거하기로 결단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믿는 자의 공동체가 교회로 세워지기 위하여 장로들을 택하여 교회를 맡기게됩니다.  장로는 교회를 치리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성경은 장로와 감독을 동일한 직분으로 묘사하고 있고, 이들은 교회의 목회자들을 의미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하여 밀레도에게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장로들을 하나님께서 교회의 감독자로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행 20:28).  감독자는 지역 교회를 지키고 돌보는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디도서는 장로를 감독이라 했습니다.  “...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딛 1:5,7).  에베소서 4장은 하나님이 교회에 목사와 교사의 직분을 주셨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 4:11).  목사는 목자로서 양을 돌보는 자를 의미합니다.  즉, 목사는 교회의 장로와 감독으로도 불리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리디아 지역의 성도들이 흩어지지 않고 믿음 안에 거하도록 제자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 세상에서 부름받은 교회로 세워지도록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세우면서 영적 지도력을 세우기 위하여 장로를 세운 것입니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대로 순종하며 복음으로 교회를 세워가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버가로 와서 앗살리아에서 안디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문을 여서서 일하신 것을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복음의 프런티어인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으로 아시아 지역에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전파된 곳에 믿는 자들이 생겨나고 그 곳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되면서 하나님의 뜻이 복음의 사명자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복음의 프런티어가 되어 믿는 자들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