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 - 안디옥 교회의 교훈 (행 11: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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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4,270회 작성일 18-08-29 15:46본문
사도행전 (14) - 안디옥 교회의 교훈 (행 11:19-30).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행 11:24).
사도행전 11장에는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로 예루살렘 교회가 큰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믿는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안디옥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곳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베니게는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는 두로와 시돈이라는 도시가 위치해 있습니다. 구브로는 지중해에 위치한 섬으로서 바나바가 이 섬의 출신입니다. 오늘날에는 키프러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여행을 시작하면서 이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디옥은 수리아 지역으로서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480 km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안디옥은 로마 제국의 3대 도시로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인구 70만의 큰 도시였고 유대인들은 약 오만명 가량이었습니다. 안디옥은 로마 제국의 폼페이에 의해 기원후 64년에 흡수되었습니다. 그 도시는 헬라 문명화된 곳으로서 자유 분방한 성문화로 유명했습니다. 그 곳의 신전의 여사제들은 매춘부들이었고 우상 숭배자들이 신전에서 여사제들과 방탕한 성적 문란한 행위를 했습니다.
이곳에 믿는 성도들이 핍박을 피하여 이르렀다가, 이곳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얻는 영적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1. 안디옥 교회는 복음으로 세워진 이방인의 교회입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행 11:20).
안디옥 교회는 바울이나 바나바와 같은 영적 지도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흩어진 무명의 성도들에 의하여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안디옥에까지 이르러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직 그들 안에는 하나님은 유대인만을 택한 백성으로 세우신다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브로는 지중해의 섬으로서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그리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의 중심 도시입니다. 이곳 출신들은 헬라파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자,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애쓰고 있을 때에,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성도 몇 명이 이방인인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시며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큰 그림을 보고 계셨지만, 당시의 대부분은 자기 민족에게만 사역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의 위대함은 너무나 커서 온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행 1:16) 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선교의 열정이 무명의 몇 사람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디옥 교회는 세계 선교의 전초 기지로 쓰임받았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도 다른 민족에 대한 비전을 품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이미 우리 나라도 다문화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들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사랑으로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교회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아직 우리는 다문화 가정을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가을에 아반떼 목사님이 오실 때에 가능하면 필리핀 가정들을 초청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수년 전에 저희 교회에 필리핀 지체들이 오셔서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큰 기쁨이 되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의 타문화의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더 나아가 다른 나라를 품고 기도하며 지속적으로 선교의 열정을 품고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한 비전을 품고 나아가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일하신다고 믿습니다.
2.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제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5-26).
수많은 무리가 주께 돌아오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을 안디옥에 보내게 됩니다. 그때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했습니다. 교회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이방인에게도 임한 복음의 역사였습니다. 복음은 유대인에게만 역사되어진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역사되어 진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바나바도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오는 모습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바나바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굳은 마음은 목적이 분명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주님께 붙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은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며, 주님의 교회의몸된 지체로서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이때 바나바의 사역으로 인하여 큰 무리가 주께 더해 졌습니다. 바나바에 대하여 성경은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 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착한 마음을 가진 착한 사람이어야 하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면서 다소에 있는 사울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바울을 찾게 됩니다. 많은 수고를 한 후에 사울을 만나게 되고 사울을 설득하여 안디옥에 와서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안디옥 성도들은 주님을 믿고 말씀을 배우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주님의 제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따르며 배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안디옥에서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뜻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안디옥에 우상 숭배자들도 있었고, 유대인들도 있었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기에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얻었습니다. 오늘날 믿는 자들을 향하여 그리스챤 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배우며 주님안에서의 정체성을 형성해 갔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주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며 섬기는 자로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안에서 정체성을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정체성을 확신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배우는 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3. 안디옥 교회는 구제 사역에 힘을 쏟았습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행 11:29-30).
예루살렘에서 온 선지자들이 안디옥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는 예언을 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가보를 통하여 하신 그 말씀을 듣고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구제 헌금을 보내게 됩니다.
글라우디오 때에 큰 흉년이 들자 안디옥 교회는 각각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부조는 디아코니아 라는 헬라어에서 온 단어입니다. 이는 봉사라는 의미로서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의미합니다. 사울의 사역에서도 이방 교회들이 종종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했습니다. 갈리디아 교회와 고린도 교회, 그릴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을 위해서 구제 헌금을 한 것입니다. 이는 영적인 공급을 받은 이방 교회들이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성경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며, 더 나아가 이방인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와 동일한 위치의 교회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자신들 안에도 어려운 성도들도 있었지만, 더 큰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물질로 헌신했습니다. 우리도 안디옥 교회와 같이 다른 교회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로 해외 선교 사역을 후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국내 개척 교회의 필요를 알고 초청해서 물질로 돕고 후원하는 것은 귀한 사역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원리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면 넘치도록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풍성한 삶과 사역이 되기 위해서는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안디옥과 같이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행 11:24).
사도행전 11장에는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로 예루살렘 교회가 큰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믿는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안디옥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곳곳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베니게는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는 두로와 시돈이라는 도시가 위치해 있습니다. 구브로는 지중해에 위치한 섬으로서 바나바가 이 섬의 출신입니다. 오늘날에는 키프러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여행을 시작하면서 이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디옥은 수리아 지역으로서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480 km 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안디옥은 로마 제국의 3대 도시로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인구 70만의 큰 도시였고 유대인들은 약 오만명 가량이었습니다. 안디옥은 로마 제국의 폼페이에 의해 기원후 64년에 흡수되었습니다. 그 도시는 헬라 문명화된 곳으로서 자유 분방한 성문화로 유명했습니다. 그 곳의 신전의 여사제들은 매춘부들이었고 우상 숭배자들이 신전에서 여사제들과 방탕한 성적 문란한 행위를 했습니다.
이곳에 믿는 성도들이 핍박을 피하여 이르렀다가, 이곳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얻는 영적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1. 안디옥 교회는 복음으로 세워진 이방인의 교회입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행 11:20).
안디옥 교회는 바울이나 바나바와 같은 영적 지도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흩어진 무명의 성도들에 의하여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안디옥에까지 이르러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직 그들 안에는 하나님은 유대인만을 택한 백성으로 세우신다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구브로는 지중해의 섬으로서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그리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의 중심 도시입니다. 이곳 출신들은 헬라파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자,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애쓰고 있을 때에,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성도 몇 명이 이방인인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시며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큰 그림을 보고 계셨지만, 당시의 대부분은 자기 민족에게만 사역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의 위대함은 너무나 커서 온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행 1:16) 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선교의 열정이 무명의 몇 사람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디옥 교회는 세계 선교의 전초 기지로 쓰임받았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도 다른 민족에 대한 비전을 품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이미 우리 나라도 다문화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들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사랑으로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교회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아직 우리는 다문화 가정을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가을에 아반떼 목사님이 오실 때에 가능하면 필리핀 가정들을 초청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수년 전에 저희 교회에 필리핀 지체들이 오셔서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큰 기쁨이 되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의 타문화의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더 나아가 다른 나라를 품고 기도하며 지속적으로 선교의 열정을 품고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한 비전을 품고 나아가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일하신다고 믿습니다.
2. 안디옥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제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5-26).
수많은 무리가 주께 돌아오게 되자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을 안디옥에 보내게 됩니다. 그때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했습니다. 교회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이방인에게도 임한 복음의 역사였습니다. 복음은 유대인에게만 역사되어진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역사되어 진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바나바도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오는 모습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바나바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굳은 마음은 목적이 분명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주님께 붙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은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며, 주님의 교회의몸된 지체로서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이때 바나바의 사역으로 인하여 큰 무리가 주께 더해 졌습니다. 바나바에 대하여 성경은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 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착한 마음을 가진 착한 사람이어야 하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면서 다소에 있는 사울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바울을 찾게 됩니다. 많은 수고를 한 후에 사울을 만나게 되고 사울을 설득하여 안디옥에 와서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안디옥 성도들은 주님을 믿고 말씀을 배우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주님의 제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따르며 배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안디옥에서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뜻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안디옥에 우상 숭배자들도 있었고, 유대인들도 있었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기에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얻었습니다. 오늘날 믿는 자들을 향하여 그리스챤 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배우며 주님안에서의 정체성을 형성해 갔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도 주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며 섬기는 자로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안에서 정체성을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정체성을 확신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배우는 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3. 안디옥 교회는 구제 사역에 힘을 쏟았습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행 11:29-30).
예루살렘에서 온 선지자들이 안디옥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는 예언을 하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가보를 통하여 하신 그 말씀을 듣고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구제 헌금을 보내게 됩니다.
글라우디오 때에 큰 흉년이 들자 안디옥 교회는 각각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부조는 디아코니아 라는 헬라어에서 온 단어입니다. 이는 봉사라는 의미로서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의미합니다. 사울의 사역에서도 이방 교회들이 종종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했습니다. 갈리디아 교회와 고린도 교회, 그릴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을 위해서 구제 헌금을 한 것입니다. 이는 영적인 공급을 받은 이방 교회들이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성경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며, 더 나아가 이방인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와 동일한 위치의 교회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전달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자신들 안에도 어려운 성도들도 있었지만, 더 큰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물질로 헌신했습니다. 우리도 안디옥 교회와 같이 다른 교회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선교로 해외 선교 사역을 후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국내 개척 교회의 필요를 알고 초청해서 물질로 돕고 후원하는 것은 귀한 사역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원리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면 넘치도록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풍성한 삶과 사역이 되기 위해서는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안디옥과 같이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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