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연구 (22) - 바울의 데살로니가 선교 (행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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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3,275회 작성일 19-01-31 15:22본문
사도행전 연구 (22) - 바울의 데살로니가 선교 (행 17:1-9)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행 17:2-3).
사도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은 사도행전 15장 39절부터 기록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의 일로 인하여 갈라지게 됩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 제자를 삼고 선교팀에 합류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바울을 마게도냐로 인도하면서 빌립보 지역에 이르게 됩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은 자주 장사인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합니다. 그리고,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종의 주인들이 바울의 일행을 핍박하고 감옥에 넣게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으로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줍니다.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와 간수의 가족을 중심으로 세워지면서 후에 사도 바울의 사역에 큰 격려가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사도 바울의 필요를 채우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그 후에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서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바울의 사역의 사역은 큰 열매를 맺게 됩니다.
1.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 가운데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 (살 17:5).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갑니다.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내인 데살로니가의 이름을 따서 데살로니가라고 호칭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구 절반 정도가 유대인으로서 그곳에는 회당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로서 제마 제국의 상업적, 정치적 중심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그 의미를 풀어 주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설교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 을 증명하였고,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증거한 성경은 구약 성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에서 가르치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했던 것입니다.
창세가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 창세기 3장 21절의 ‘가죽옷’, 그리고,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희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근원’ 은 메시야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오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유월절에 희생된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12장의 유월절에 희생된 어린양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시고 피흘려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 12:13). 레위기 16장의 속죄일에 희생되는 수송아지와 염소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21 장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모세가 만든 놋뱀에 의하여 멈추게 됩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민 21:9). 놋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뱀의 독에서 건짐을 얻었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마다 죄의 사망에서 건짐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성경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자 적지 않는 사람들이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행 17:4). 그러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며 성을 소동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찾지 못하자 야손과 형제들을 끌고 읍장에 데리고 가서 고소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행 17:7). 그들은 마치 바울이 로마 황제를 거역하고 다른 왕을 세우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지만, 그들의 고소는 논리적으로나 이치적으로 맞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짓으로 사도 바울과 야손을 고소한 것입니다. 그리고, 읍장은 돈을 받고 그들을 놓아 주었습니다.
2. 데살로니가 교회는 본이 되는 교회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살전 1:7).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짧은 기간의 사역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사역을 하다가 유대인의 핍박으로 급히 베뢰아로 이동하였기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디모데를 보내어 그 교회에 대하여 알아보게 합니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녀온 소식을 듣고 사도 바울은 그들을 격려하며 그 교회에 있었던 종말론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바로 잡기 위하여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1)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격려하면서 이렇게 칭찬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 2:13). 데살로니가 교회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그들의 마음속에 역사하여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속에 세워진 교회였기에 교회 자체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더구나 사도 바울이 3주 동안 회당에서 가르쳤고 아마도 짧은 기간의 사역을 마감하고 떠났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게도냐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교회였기에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에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이 결코 헛되지 않고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의 삶과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바로 직전에 요시야 왕이 말씀을 찾아 회개하게 됩니다. 유월절 절기도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 지켜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가 너무나 깊이 들어가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멸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 역사함으로 그들은 주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안에 뿌리를 내리고 순종함으로 성장하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2) 데살로니가 교회는 잘못된 종말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짧았기에 종말론에 대한 혼돈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A.D. 45 년에 팔레스틴에 대흉년이 있었는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기근을 종말이 가까운 징조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칼리굴라 황제가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상을 세우려 했던 일로 인하여, 이것을 불법의 사람들의 활동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자신들이 받는 환난을 종말에 있을 믿는 자의 환난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죽음에 대하여 종말에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여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성경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주님의 재림 때에 믿는 자의 휴거가 일어납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7).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로 친히 하늘에서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됩니다. 물론,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몸의 부활시에 하늘로 휴거가 되고 주님을 만날 때에 영혼과 몸의 결합이 일어날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믿는 자는 공중으로 끌러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4,17).
우리가 주님과 함께 공중에서 만난 후에 7년이 지난 후에 지상으로 주님과 함께 내려오게 됩니다.
둘째, 주님의 재림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살전 5:2).
주님의 재림은 밤에 도적 같이 이른 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노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3). 주님의 재림은 밤에 도적같이 이르게ㅔ 되고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홀연이 임하게 됩니다. 특히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주님이 재림하시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임한 멸망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이기에 어두움에 다니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함으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은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와 같이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살전 4:4-5). 하나님의 사람은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아내를 취하고 거룩함으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셋째, 주님의 재림전에 불법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3).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강림은 지상 재림에 대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이라면, 데살로니가 후서는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임하시기 전에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는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를 불법의 사람 또는 멸망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3). 그는 멸망의 아들로서 불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높입니다. 그는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살후 2:4) 라고 했습니다. 불법의 사람은 멸망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는 자입니다. 불법의 사람에 대하여 다니엘은 ‘미운 물건’ 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다 9:27).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자신이 그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혼돈하여 일하지도 않고 방종하는 자들에 대하여 규모있게 행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살후 3:11-12).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지는 배경과 그들에게 전하는 서신을 통하여 종말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믿음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존귀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행 17:2-3).
사도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은 사도행전 15장 39절부터 기록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의 일로 인하여 갈라지게 됩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 제자를 삼고 선교팀에 합류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바울을 마게도냐로 인도하면서 빌립보 지역에 이르게 됩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은 자주 장사인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합니다. 그리고,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종의 주인들이 바울의 일행을 핍박하고 감옥에 넣게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역사 하심으로 간수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줍니다.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와 간수의 가족을 중심으로 세워지면서 후에 사도 바울의 사역에 큰 격려가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사도 바울의 필요를 채우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그 후에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서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바울의 사역의 사역은 큰 열매를 맺게 됩니다.
1.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 가운데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 (살 17:5).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갑니다.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내인 데살로니가의 이름을 따서 데살로니가라고 호칭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구 절반 정도가 유대인으로서 그곳에는 회당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로서 제마 제국의 상업적, 정치적 중심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그 의미를 풀어 주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설교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 을 증명하였고,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증거한 성경은 구약 성경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에서 가르치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했던 것입니다.
창세가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 창세기 3장 21절의 ‘가죽옷’, 그리고,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희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근원’ 은 메시야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오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유월절에 희생된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12장의 유월절에 희생된 어린양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시고 피흘려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 12:13). 레위기 16장의 속죄일에 희생되는 수송아지와 염소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21 장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모세가 만든 놋뱀에 의하여 멈추게 됩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민 21:9). 놋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뱀의 독에서 건짐을 얻었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마다 죄의 사망에서 건짐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성경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자 적지 않는 사람들이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행 17:4). 그러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며 성을 소동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찾지 못하자 야손과 형제들을 끌고 읍장에 데리고 가서 고소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행 17:7). 그들은 마치 바울이 로마 황제를 거역하고 다른 왕을 세우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지만, 그들의 고소는 논리적으로나 이치적으로 맞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짓으로 사도 바울과 야손을 고소한 것입니다. 그리고, 읍장은 돈을 받고 그들을 놓아 주었습니다.
2. 데살로니가 교회는 본이 되는 교회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살전 1:7).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짧은 기간의 사역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사역을 하다가 유대인의 핍박으로 급히 베뢰아로 이동하였기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디모데를 보내어 그 교회에 대하여 알아보게 합니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다녀온 소식을 듣고 사도 바울은 그들을 격려하며 그 교회에 있었던 종말론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바로 잡기 위하여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1)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격려하면서 이렇게 칭찬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 2:13). 데살로니가 교회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의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그들의 마음속에 역사하여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속에 세워진 교회였기에 교회 자체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더구나 사도 바울이 3주 동안 회당에서 가르쳤고 아마도 짧은 기간의 사역을 마감하고 떠났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게도냐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교회였기에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에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이 결코 헛되지 않고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의 삶과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바로 직전에 요시야 왕이 말씀을 찾아 회개하게 됩니다. 유월절 절기도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 지켜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가 너무나 깊이 들어가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멸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 역사함으로 그들은 주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안에 뿌리를 내리고 순종함으로 성장하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2) 데살로니가 교회는 잘못된 종말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짧았기에 종말론에 대한 혼돈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A.D. 45 년에 팔레스틴에 대흉년이 있었는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기근을 종말이 가까운 징조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칼리굴라 황제가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상을 세우려 했던 일로 인하여, 이것을 불법의 사람들의 활동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자신들이 받는 환난을 종말에 있을 믿는 자의 환난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죽음에 대하여 종말에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여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성경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주님의 재림 때에 믿는 자의 휴거가 일어납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7).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로 친히 하늘에서 강림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됩니다. 물론,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몸의 부활시에 하늘로 휴거가 되고 주님을 만날 때에 영혼과 몸의 결합이 일어날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믿는 자는 공중으로 끌러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4,17).
우리가 주님과 함께 공중에서 만난 후에 7년이 지난 후에 지상으로 주님과 함께 내려오게 됩니다.
둘째, 주님의 재림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살전 5:2).
주님의 재림은 밤에 도적 같이 이른 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노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3). 주님의 재림은 밤에 도적같이 이르게ㅔ 되고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홀연이 임하게 됩니다. 특히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주님이 재림하시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임한 멸망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이기에 어두움에 다니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함으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은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와 같이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살전 4:4-5). 하나님의 사람은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아내를 취하고 거룩함으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셋째, 주님의 재림전에 불법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3).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후서에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강림은 지상 재림에 대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이라면, 데살로니가 후서는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임하시기 전에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는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를 불법의 사람 또는 멸망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살후 2:3). 그는 멸망의 아들로서 불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높입니다. 그는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살후 2:4) 라고 했습니다. 불법의 사람은 멸망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는 자입니다. 불법의 사람에 대하여 다니엘은 ‘미운 물건’ 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다 9:27).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폐하고 자신이 그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혼돈하여 일하지도 않고 방종하는 자들에 대하여 규모있게 행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살후 3:11-12).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지는 배경과 그들에게 전하는 서신을 통하여 종말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믿음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존귀한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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