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 (20) - 빌립보의 사역 (행 16: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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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3,034회 작성일 19-01-31 15:21본문
사도행전 강해 (20) - 빌립보의 사역 (행 16:16-40)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6:31).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마게도냐의 빌립보에 이르게 됩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퇴역한 군인들이 정착하던 도시였습니다. 이곳은 마게도냐의 빌립왕이 금광을 발굴하기 위하여 도시를 건설한 이후에 로마가 정복하여 식민지로 세운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지방 총독의 통치를 받지 않고 로마의 특별구역으로서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사도 바울과 선교팀은 이곳에 복음을 전한 후에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가 세운 교회는 빌립보 교회였고 그 후에 사도 바울의 후원자 역할을 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물질을 후원하며 바울을 위로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자주 장사인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여셔서 바울의 말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루디아가 마음을 열어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온 집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후에 루디아와 그 집의 사람들 모두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의 사역을 인도하시는 귀한 모습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자신의 집에 선교팀을 초청하여 거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빌립보 교회가 루디아의 가정에서 세워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이 처음에는 순탄한 것 같았지만 곧 거대한 폭풍을 만나며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역의 현장에서 극복해야 할 시련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편견의 시련을 극복해야 합니다.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행 16:20).
사도 바울이 루디아와 그의 가정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후에 귀신들린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점을 치면서 그 주인에게 막대한 이익을 주고 있었습니다. 여종이 사도 바울과 선교팀을 따라오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행 16:17). 여종은 여러 날을 선교팀을 따라 다니며 괴롭게 하자,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행 16:18). 그러자, 귀신이 즉시 나오면서 고침을 입게 됩니다. 에베소에서도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복음으로 부흥이 일어나자 그들의 사업에 큰 타격을 입은 것과 같았습니다. 이와같이 빌립보 에서도 점을 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이 나오게 됩니다. 이때 종의 주인들이 자기의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그 원인을 바울과 실라를 지목합니다. 그리고, 빌립보의 관원에게 끌고가 모함을 합니다. 그의 모함은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하다.’ (행 16:20-21) 고 했습니다.
그들의 모함은 먼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편견으로 공격합니다. 일년 전에 글라우디오 황제의 명으로 모든 유대인들은 로마에서 떠나라는 명을 내린적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특별행정구역이었기에 유대인들에 대한 감정은 이유없이 좋지 않았습니다. 종의 주인들은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로마의 관원들을 동요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유대인들이라는 좋지 않는 이미지로 사도 바울에게 편견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을 심히 요란케 하고 우리가 받지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성을 요란케 한 적도 없었고 다른 풍속을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진 것에 대한 복수로 사도 바울과 선교팀을 거짓으로 공격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많은 편견을 받게 합니다. 사람들은 면전에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온라인에서의 글들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대한 많은 편견을 갖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전하는 복음마저도 외면 당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초기 역사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편견으로 큰 어려움을 당한적이 많았습니다. 네로 황제는 로마 시내에 불을 지른 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범인이라고 지목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형장에서 십자가의 화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침례교도들은 카톨릭의 부패한 교리에 맞서 싸우고 믿는 자에게 침례를 주면서 종교 재판에서 큰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한 핍박에서도 침례교인들은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 나갔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감추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며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우리는 핍박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행 16:22).
사도 바울은 거짓으로 고소를 당한 뒤에 갑작스러운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행 16:22-23). 군인들이 사도 바울의 옷을 벗기고 매로 쳤습니다. 그들이 치는 매는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매질이었습니다. 그리고, 재판이나 심문도 없이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옥에 가둔 후에 발을 착고에 채워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음에 이른 경험이 있었기에 이러한 시련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역사하는 사단의 강한 반대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는 당시에 부패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반대가 있었고, 그들의 시기와 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했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쳐서 스데반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헤롯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침례요한은 헤롯 안디바에 의하여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당한 핍박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현장에서 나타나는 영적 전쟁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비록 세상은 사도 바울의 몸에 채찍을 가하고 발에 착고를 채워 가두었지만, 그의 영혼은 가둘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얻은 후에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들의 찬양은 절망을 뛰어넘은 자가 누리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사 44:1-4)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확신은 우리를 지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굳게 선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두려워 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절망의 순간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경험되어지는 잘망의 순간은 우리에게 더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절망의 순간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며 그 분의 강한 손을 펼치시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합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 16:26).
하나님은 그 분의 때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매를 맺고 옥에 갇혀 있을 때에 능력으로 나타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고난 당할 때에 침묵하시다가 그들이 절망과 고통의 순간을 이기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찬양할 때에 능력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고난의 순간에 침묵하실까요?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 고난의 시련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며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 남기신 주님의 뜻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고난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우리가 고난 당하는 것은 우리의 부르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위에 계심이라.” (벧전 4:14)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은 복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식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알았기에 사도 바울은 고난후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과 실라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능력으로 임한 것입니다. 간수는 잠을 자다가 깨어 일어난 것을 보고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죄수가 도망가면 자신이 그 대가를 받아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간수의 자결을 막고 은혜를 끼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시련을 믿음으로 극복한 자에게 은혜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더 큰 은혜는 간수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라고 합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가장 전하고 싶은 복음을 크게 외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사도 바울은 주의 말씀을 그 사람에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파했습니다. 그러자, 그 가족이 모두가 주님을 믿게 되고 침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간수의 가족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복음을 전할때에 많은 핍박이 일어났지만,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했던 바울과 실라의 믿음의 고백은 간수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은혜의 찬양과 간증은 간수의 가족을 구원하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련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주님을 찬양했던 바울과 실라와 같이 시련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의 고백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6:31).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마게도냐의 빌립보에 이르게 됩니다.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퇴역한 군인들이 정착하던 도시였습니다. 이곳은 마게도냐의 빌립왕이 금광을 발굴하기 위하여 도시를 건설한 이후에 로마가 정복하여 식민지로 세운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지방 총독의 통치를 받지 않고 로마의 특별구역으로서의 지위를 누렸습니다.
사도 바울과 선교팀은 이곳에 복음을 전한 후에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가 세운 교회는 빌립보 교회였고 그 후에 사도 바울의 후원자 역할을 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물질을 후원하며 바울을 위로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서 자주 장사인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여셔서 바울의 말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루디아가 마음을 열어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온 집의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후에 루디아와 그 집의 사람들 모두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립보의 사역을 인도하시는 귀한 모습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자신의 집에 선교팀을 초청하여 거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빌립보 교회가 루디아의 가정에서 세워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이 처음에는 순탄한 것 같았지만 곧 거대한 폭풍을 만나며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역의 현장에서 극복해야 할 시련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편견의 시련을 극복해야 합니다.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행 16:20).
사도 바울이 루디아와 그의 가정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후에 귀신들린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점을 치면서 그 주인에게 막대한 이익을 주고 있었습니다. 여종이 사도 바울과 선교팀을 따라오면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행 16:17). 여종은 여러 날을 선교팀을 따라 다니며 괴롭게 하자,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행 16:18). 그러자, 귀신이 즉시 나오면서 고침을 입게 됩니다. 에베소에서도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복음으로 부흥이 일어나자 그들의 사업에 큰 타격을 입은 것과 같았습니다. 이와같이 빌립보 에서도 점을 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이 나오게 됩니다. 이때 종의 주인들이 자기의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그 원인을 바울과 실라를 지목합니다. 그리고, 빌립보의 관원에게 끌고가 모함을 합니다. 그의 모함은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하다.’ (행 16:20-21) 고 했습니다.
그들의 모함은 먼저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편견으로 공격합니다. 일년 전에 글라우디오 황제의 명으로 모든 유대인들은 로마에서 떠나라는 명을 내린적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특별행정구역이었기에 유대인들에 대한 감정은 이유없이 좋지 않았습니다. 종의 주인들은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로마의 관원들을 동요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유대인들이라는 좋지 않는 이미지로 사도 바울에게 편견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을 심히 요란케 하고 우리가 받지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성을 요란케 한 적도 없었고 다른 풍속을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기만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진 것에 대한 복수로 사도 바울과 선교팀을 거짓으로 공격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많은 편견을 받게 합니다. 사람들은 면전에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온라인에서의 글들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대한 많은 편견을 갖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전하는 복음마저도 외면 당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초기 역사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편견으로 큰 어려움을 당한적이 많았습니다. 네로 황제는 로마 시내에 불을 지른 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범인이라고 지목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형장에서 십자가의 화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침례교도들은 카톨릭의 부패한 교리에 맞서 싸우고 믿는 자에게 침례를 주면서 종교 재판에서 큰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한 핍박에서도 침례교인들은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 나갔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감추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며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우리는 핍박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행 16:22).
사도 바울은 거짓으로 고소를 당한 뒤에 갑작스러운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행 16:22-23). 군인들이 사도 바울의 옷을 벗기고 매로 쳤습니다. 그들이 치는 매는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매질이었습니다. 그리고, 재판이나 심문도 없이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옥에 가둔 후에 발을 착고에 채워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음에 이른 경험이 있었기에 이러한 시련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역사하는 사단의 강한 반대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는 당시에 부패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반대가 있었고, 그들의 시기와 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했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쳐서 스데반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헤롯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침례요한은 헤롯 안디바에 의하여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당한 핍박은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현장에서 나타나는 영적 전쟁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비록 세상은 사도 바울의 몸에 채찍을 가하고 발에 착고를 채워 가두었지만, 그의 영혼은 가둘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얻은 후에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들의 찬양은 절망을 뛰어넘은 자가 누리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사 44:1-4)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확신은 우리를 지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굳게 선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두려워 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절망의 순간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경험되어지는 잘망의 순간은 우리에게 더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절망의 순간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며 그 분의 강한 손을 펼치시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합니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 16:26).
하나님은 그 분의 때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매를 맺고 옥에 갇혀 있을 때에 능력으로 나타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고난 당할 때에 침묵하시다가 그들이 절망과 고통의 순간을 이기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찬양할 때에 능력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고난의 순간에 침묵하실까요?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필요한 것이 고난의 시련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며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 남기신 주님의 뜻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고난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1). 우리가 고난 당하는 것은 우리의 부르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위에 계심이라.” (벧전 4:14)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은 복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식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알았기에 사도 바울은 고난후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과 실라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능력으로 임한 것입니다. 간수는 잠을 자다가 깨어 일어난 것을 보고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죄수가 도망가면 자신이 그 대가를 받아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간수의 자결을 막고 은혜를 끼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시련을 믿음으로 극복한 자에게 은혜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더 큰 은혜는 간수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라고 합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가장 전하고 싶은 복음을 크게 외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사도 바울은 주의 말씀을 그 사람에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파했습니다. 그러자, 그 가족이 모두가 주님을 믿게 되고 침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간수의 가족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복음을 전할때에 많은 핍박이 일어났지만,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했던 바울과 실라의 믿음의 고백은 간수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은혜의 찬양과 간증은 간수의 가족을 구원하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련속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주님을 찬양했던 바울과 실라와 같이 시련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의 고백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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