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강해(10) - 지혜를 무너트리는 네 가지(잠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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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진 댓글 0건 조회 5회 작성일 26-04-22 16:34본문
잠언 강해(10) - 지혜를 무너트리는 네 가지(잠 6장)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잠언 6장은 삶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며, 이러한 작은 선택들이 삶에서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경고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지혜를 무너트리는 네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보증서는 것, 게으름, 그리고 악한 마음 음행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삶은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이지만, 이러한 지혜를 무시하는 삶은 어리석음의 길로 향하는 것입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결국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지만, 지혜는 삶을 든든하게 하고 생명을 지키게 합니다.
다음은 지혜의 삶을 무너트리는 4 가지에 대하여 함께 나누며 어리석은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1. 경솔하게 보증을 서지 말아야 합니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 6:1-2).
잠언은 보증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보증이란 타인의 빚에 대해 연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즉 내 삶을 타인의 선택에 맡기는 것입니다.
보증을 올무와 덫에 걸린 상태로 표현합니다.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잠 6:5).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증하는 자는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새가 그물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즉 속히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보증이란 자신이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보증선 사람이 무너지면 같이 무너지는 구조입니다. 상대의 무책임이 나에게 짐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사랑이나 희생으로 보지 않고 지혜 없는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규정합니다.
보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복잡해지고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미 잘못 들어갔다면, 자존심을 내려놓고라도 즉시 정리하라고 가르칩니다.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잠 6:3).
그리고 속히 벗어나서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구원하라고 가르칩니다.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잠 6:4-5). 이 말씀은 내일로 미루거나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까지 미루지 말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보증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증을 현대에서는 단순한 금전 보증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과 무리하게 사업상 동업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감정에 이끌려 자신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 경제적 지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삶까지 책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떠안는 것을 포함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는 무조건 선한 마음이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니라 분별 있는 책임과 사랑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2. 게으름을 피해야 합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다음으로 지혜를 무력화 시키는 행동은 게으름입니다. 잠언 기자는 게으른 사람에게 개미에게서 배우라고 권면합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사람과 개미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지능이나 능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개미는 사람에 비해 너무나 작고 미미한 곤충에 불과 합니다.
사람이 더 뛰어난 존재이지만 개미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개미의 부지런함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개미의 부지런한 지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 6:7-8).
개미는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개미는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합니다. 여름에는 먹을 것이 풍부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을 다 소비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남겨두는 것입니다. 즉 기회가 있을 때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사용해 버리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위기가 찾아오면 후회하는 것입니다. 추수 때에도 양식을 모아서 겨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준비하는 자입니다. 재정도 미래를 위하여 다 사용하지 않고 저축해야 합니다. 시간도 남은 시간에 미래를 위하여 책도 읽으며 지적인 자산을 남겨야 합니다. 시간도 남은 시간을 활용하며 미래를 위한 영성을 쌓아야 합니다. 체력도 건강할 때 운동하여 튼튼한 근육과 건강한 혈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미는 스스로 움직이는 지혜가 있습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잠 6:7). 개미는 시키는 자도 없고 감시하거나 강제하는 권위도 없지만 스스로 움직입니다. 이는 사람과의 강한 대비입니다. 잠언 기자는 “너는 왜 누가 시켜야만 움직이느냐” 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누가 봐야 일하고, 압박이 있거나 보상이 있어야 노력합니다.
이것은 참된 성숙이 아닌 것입니다. 지혜는 보이지 않아도 바르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바르게 하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게으름의 본질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항상 미루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좀더 자자, 졸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 6:10-11). 게으름은 지속적으로 일들을 미루는 태도입니다.
게으름의 모습은 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미루거나, 일보다는 당장의 편안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곤핍이 강도처럼, 군사처럼 이르게 됩니다. 강도처럼 온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삶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사처럼 오는 것은 가난을 피할 수 없고 한 번 오면 피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즉 게으름의 결과는 반드시 찾아오며, 피할 수 없고, 생각보다 빨리 찾아옵니다.
게으름을 피하는 길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일을 오늘 마쳐야 합니다. 오늘 운동할 일을 오늘 마쳐야 합니다. 오늘 경건의 시간을 오늘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게으름의 결과는 영적인 빈곤과 삶의 무너짐으로 이어지기에, 부지런히 오늘 일을 마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관계를 파괴하는 악을 멀리해야 합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는 그 행동에 궤휼한 입을 벌리며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로 알게 하며”(잠 6:12-13).
잠언 6장 12-19장은 개인의 도덕을 넘어 공동체를 무너트리는 악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악한 사람의 삶의 방식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의 본질을 함께 보여줍니다.
악인의 특징은 관계를 파괴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먼저 비뚤어진 말과 삶을 살아갑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는 그 행동에 궤휼한 입을 벌리며”(잠 6:12). 불량한 자는 공동체에 해가 되는 사람으로서 왜곡된 말을 통하여 진실을 왜곡하는 자입니다. 이는 사실을 교묘하게 바꾸어, 듣는 사람이 오해하도록 만들고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조작합니다.
악한 자는 또한 행동에서도 교묘한 신호를 보냅니다. “눈짓을 하며 바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로 알게 하며”(잠 6:13). 이 말씀은 단순한 제스처가 아니라, 눈짓과 손가락질로 은밀한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잠 6:14)자입니다.
마음에 패역이 있는 것은 마음에 나쁜 생각을 하며 악을 꾀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다툼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갑자기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재앙이 갑자기 임한즉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당장에 패망하리라”(잠 6:15).
이러한 악한 자는 재앙이 갑자기 찾아와 삶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과의 신뢰가 깨어짐으로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힘들 때에 도움을 얻지 못하고 결국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악한 자는 왜곡된 말을 함으로 교묘한 행동을 하고 려국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에 결국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우리에게 관계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관계를 무너트리는 행동은 결국 자기 자신을 무너트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직과 성실함으로 행하는 삶은 결국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견고한 관계를 통하여 관계가 굳건히 세워지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다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가르치며 우리의 말과 성품이 바르게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잠 6:16-19).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첫 번째는 교만한 눈입니다. 교만한 눈은 자신을 높이고 타인을 낮추는 것입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교만한 눈입니다. 그리고 거짓된 혀는 진리를 왜곡하는 죄입니다. 거짓은 사실을 바꾸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관계의 신뢰가 무너집니다.
세 번째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입니다. 이는 약자를 해치거나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행동입니다. 자신의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입니다. 이는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악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입니다. 이는 죄를 즐기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거짓 증인은 거짓말로 공동체를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를 무너트리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코이노니아의 관계 속에서 살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공동체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계를 이간질하거나 무너트리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날마다 삶의 방향을 바르게 결정하며 살아감을 배웁니다. 하루의 작은 선택이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증을 하지 말아야 하고, 개미와 같이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말과 행동과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우리를 지켜주는 지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잠언 6장은 삶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며, 이러한 작은 선택들이 삶에서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경고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지혜를 무너트리는 네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보증서는 것, 게으름, 그리고 악한 마음 음행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삶은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이지만, 이러한 지혜를 무시하는 삶은 어리석음의 길로 향하는 것입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결국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지만, 지혜는 삶을 든든하게 하고 생명을 지키게 합니다.
다음은 지혜의 삶을 무너트리는 4 가지에 대하여 함께 나누며 어리석은 길이 아닌, 생명의 길을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1. 경솔하게 보증을 서지 말아야 합니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 6:1-2).
잠언은 보증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보증이란 타인의 빚에 대해 연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즉 내 삶을 타인의 선택에 맡기는 것입니다.
보증을 올무와 덫에 걸린 상태로 표현합니다.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잠 6:5).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증하는 자는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새가 그물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고 했습니다. 즉 속히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보증이란 자신이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보증선 사람이 무너지면 같이 무너지는 구조입니다. 상대의 무책임이 나에게 짐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사랑이나 희생으로 보지 않고 지혜 없는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규정합니다.
보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복잡해지고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미 잘못 들어갔다면, 자존심을 내려놓고라도 즉시 정리하라고 가르칩니다.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잠 6:3).
그리고 속히 벗어나서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구원하라고 가르칩니다.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잠 6:4-5). 이 말씀은 내일로 미루거나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까지 미루지 말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보증의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증을 현대에서는 단순한 금전 보증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과 무리하게 사업상 동업을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감정에 이끌려 자신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 경제적 지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삶까지 책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떠안는 것을 포함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는 무조건 선한 마음이 아니라,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니라 분별 있는 책임과 사랑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2. 게으름을 피해야 합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다음으로 지혜를 무력화 시키는 행동은 게으름입니다. 잠언 기자는 게으른 사람에게 개미에게서 배우라고 권면합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사람과 개미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지능이나 능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개미는 사람에 비해 너무나 작고 미미한 곤충에 불과 합니다.
사람이 더 뛰어난 존재이지만 개미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개미의 부지런함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개미의 부지런한 지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 6:7-8).
개미는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개미는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합니다. 여름에는 먹을 것이 풍부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을 다 소비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남겨두는 것입니다. 즉 기회가 있을 때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사용해 버리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위기가 찾아오면 후회하는 것입니다. 추수 때에도 양식을 모아서 겨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준비하는 자입니다. 재정도 미래를 위하여 다 사용하지 않고 저축해야 합니다. 시간도 남은 시간에 미래를 위하여 책도 읽으며 지적인 자산을 남겨야 합니다. 시간도 남은 시간을 활용하며 미래를 위한 영성을 쌓아야 합니다. 체력도 건강할 때 운동하여 튼튼한 근육과 건강한 혈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개미는 스스로 움직이는 지혜가 있습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잠 6:7). 개미는 시키는 자도 없고 감시하거나 강제하는 권위도 없지만 스스로 움직입니다. 이는 사람과의 강한 대비입니다. 잠언 기자는 “너는 왜 누가 시켜야만 움직이느냐” 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누가 봐야 일하고, 압박이 있거나 보상이 있어야 노력합니다.
이것은 참된 성숙이 아닌 것입니다. 지혜는 보이지 않아도 바르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바르게 하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게으름의 본질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항상 미루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좀더 자자, 졸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 6:10-11). 게으름은 지속적으로 일들을 미루는 태도입니다.
게으름의 모습은 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미루거나, 일보다는 당장의 편안함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곤핍이 강도처럼, 군사처럼 이르게 됩니다. 강도처럼 온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삶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사처럼 오는 것은 가난을 피할 수 없고 한 번 오면 피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즉 게으름의 결과는 반드시 찾아오며, 피할 수 없고, 생각보다 빨리 찾아옵니다.
게으름을 피하는 길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일을 오늘 마쳐야 합니다. 오늘 운동할 일을 오늘 마쳐야 합니다. 오늘 경건의 시간을 오늘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게으름의 결과는 영적인 빈곤과 삶의 무너짐으로 이어지기에, 부지런히 오늘 일을 마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관계를 파괴하는 악을 멀리해야 합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는 그 행동에 궤휼한 입을 벌리며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로 알게 하며”(잠 6:12-13).
잠언 6장 12-19장은 개인의 도덕을 넘어 공동체를 무너트리는 악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악한 사람의 삶의 방식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의 본질을 함께 보여줍니다.
악인의 특징은 관계를 파괴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먼저 비뚤어진 말과 삶을 살아갑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는 그 행동에 궤휼한 입을 벌리며”(잠 6:12). 불량한 자는 공동체에 해가 되는 사람으로서 왜곡된 말을 통하여 진실을 왜곡하는 자입니다. 이는 사실을 교묘하게 바꾸어, 듣는 사람이 오해하도록 만들고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조작합니다.
악한 자는 또한 행동에서도 교묘한 신호를 보냅니다. “눈짓을 하며 바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로 알게 하며”(잠 6:13). 이 말씀은 단순한 제스처가 아니라, 눈짓과 손가락질로 은밀한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잠 6:14)자입니다.
마음에 패역이 있는 것은 마음에 나쁜 생각을 하며 악을 꾀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다툼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갑자기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재앙이 갑자기 임한즉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당장에 패망하리라”(잠 6:15).
이러한 악한 자는 재앙이 갑자기 찾아와 삶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과의 신뢰가 깨어짐으로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힘들 때에 도움을 얻지 못하고 결국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악한 자는 왜곡된 말을 함으로 교묘한 행동을 하고 려국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에 결국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우리에게 관계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관계를 무너트리는 행동은 결국 자기 자신을 무너트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직과 성실함으로 행하는 삶은 결국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견고한 관계를 통하여 관계가 굳건히 세워지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다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가르치며 우리의 말과 성품이 바르게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잠 6:16-19).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첫 번째는 교만한 눈입니다. 교만한 눈은 자신을 높이고 타인을 낮추는 것입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교만한 눈입니다. 그리고 거짓된 혀는 진리를 왜곡하는 죄입니다. 거짓은 사실을 바꾸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관계의 신뢰가 무너집니다.
세 번째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입니다. 이는 약자를 해치거나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행동입니다. 자신의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입니다. 이는 우연한 실수가 아니라 악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입니다. 이는 죄를 즐기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거짓 증인은 거짓말로 공동체를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를 무너트리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코이노니아의 관계 속에서 살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공동체 안에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계를 이간질하거나 무너트리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날마다 삶의 방향을 바르게 결정하며 살아감을 배웁니다. 하루의 작은 선택이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증을 하지 말아야 하고, 개미와 같이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말과 행동과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우리를 지켜주는 지혜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